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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Mar 06. 2022

저는 대한민국 사람이에요. 아.시.겠.어.요?

21. 헝가리 여행기

  몰타에 오기 전, 1년 동안 유럽에서 살게 되었으니 KTX 가격으로 다른 유럽 지역을 맘껏 여행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관광객이 많이 없을 때 유럽 여행을 할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을 담아 차곡차곡 분기별 여행 계획을 세웠더랬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다른 나라에 맘대로 가는 것이 불가능해졌고 그 대신 몰타 곳곳을 돌아다니며 봄을 보냈다. 그리고 한 여름을 즐기던 어느 날, 드디어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헝가리를 목적지로 정하고 옐루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여권을 보여주자마자 승무원은 우리에게 비행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오늘만을 기다렸는데 비행기를 탈 수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헝가리로의 여행이 불가능한 나라를 레드존으로 구분해놓았는데 그곳에 ‘Korea’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Republic of Korea’가 아니라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인데 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우리가 해당되는지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북한과 우리나라는 분리된 지 7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게 무슨 어이없는 소리인가 싶었다. 황당한 우리는 대사관 공문서와 부다페스트 공항 공지문을 내밀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일단 체크인을 해주지만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는 말이었다.

  가까스로 게이트 앞으로 간 우리는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결국 탑승구를 통과하지 못한 채 직원들과 함께 출국 수속장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우리는 곧바로 항의를 했고, 담당자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의 요청에 처음에는 담당자가 재택근무라고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참, 설명을 덧붙이자면 코로나 상황에서 각 국가들을 3단계인 그린존, 옐로우존, 레드존으로 나누었는데 이 중 그린존에 속하는 나라의 국적을 가진 자만이 자유롭게 여행이 가능했다. 그린존에 200여 개가 되는 나라명을 다 적을 수 없기에 ‘옐로우존, 레드존에 명시되지 않은 그 외의 국가는 그린존에 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는데 해당 항공사는 우리나라의 이름이 그린존에 없으니 탑승 불가라고 해석을 했고 항공 가능 국가 리스트에 우리나라를 업데이트해놓지 않은 것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억울해서 손짓, 발짓을 사용하며 항의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단순히 여행 일정을 어긋나게 해서라기보다는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된다던 항공사 직원들의 태도에 화가 났다. 해당 항공사 직원들은 이미 떠난 비행기이니 자신들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기 바란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억울했던 우리는 다른 항공사(모항공사는 같은)의 다음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헝가리에 도착했다.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일에 진을 그렇게 뺐다니 안타까웠다.

  하지만, 어쨌든 헝가리에 도착했으니 야경을 즐기며 숙소로 향했다. 그리고 날씨 요정(?) 답게 3일 내내 비가 내린다던 일기 예보와 달리 우산을 쓰지 않았던 2박 3일이었다. 작은 나라인 몰타에서 와서 그런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는 모든 것이 큼직 막 해 보였다.

  여행을 준비하며 코로나로 인해 친절하지 않으면 어쩌나, 괜히 인종차별을 당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헝가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짧은 여행기간 동안 헝가리의 전통 음식이라는 굴라쉬와 동유럽의 돈가스 정도 되려나 싶은 슈니첼도 먹고 트램을 타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야경이었다. 국회의사당의 불빛은 괜히 사람을 설레게 만들었다.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고 가까이 다가가서 한번 더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불빛이 마음을 몽글하게 만들었던 한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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