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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Jan 16. 2022

여유로움이 한가한 걸 뜻한 건 아니었는데요.

02. 슬기로운 자가격리 생활

  학원에서 귀가 통보를 받은 뒤, 몇 시간이 지나 어학원 스텝으로부터 2주 뒤에 학교에 다시 나오라는 공지사항을 전해받았다. 다시 말해, bts덕분에 한류 열풍이 돌풍이 된 유럽에서 한류 특혜의 꿈은 코로나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는 소리다.

  에너지가 밖으로 향해있는 나에게 새로운 환경을 맘껏 탐색하지 못하고 집순이로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 이상의 큰 벌이다.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도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행동으로 옮겨보려 했다. 먼저 영어 공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 멀리까지 날아왔으니 영국 드라마인 ‘셜록’을 영어 자막으로 보며 실용적인 영어 회화 구문들을 익혔다. 하지만, 역시 공부는 힘들다. 금세 영어 공부는 앞으로 많이 할 테니 다른 것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예술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첫 번째로 한국에서 가져온 휴대용 피아노인 롤링 피아노를 활용해서 어플로 피아노를 배워보기로 했다. 먼저 호기롭게 피아노 학습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1년 학습권 결제를 했다. 피아노 소리를 인식해서 실제 피아노 선생님이 피드백을 주는 것처럼 설계된 어플이었는데 체르니 30에서 멈췄던 나의 피아노 연주 실력에 딱 맞는 단계를 제공해준 덕분에 꾸준히 배웠다. 다음으로는 한국에서 가져온 휴대용 고체 물감과 붓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집 테라스에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그리기도 하고, 햇빛이 따사로운 날은 멀리 보이는 바닷가까지 걸어가서 반짝이는 물결을 화폭에 고이 담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지루할 때쯤, 컬러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는 24시간이다. 더 이상 잠을 원하지 않을 정도로 침대에서 뒹굴어도 10시간이 남는다. 그래서 생긴 새로운 취미가 바로 요리였다. 때문에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마트는 방앗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식품 위주로 구매를 하였다. 그래놀라, 요거트, 과일, 훈제연어, 고기 같은 것들 말이다. 참고로  몰타는 빵, 우유나 치즈와 같은 유제품, 파스타, 고기류 등이 아주 저렴하다. 빵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모차렐라 치즈와 파스타는 주식이 된 것처럼 많이 먹었다. 또한 한국 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비싼 가격에 볼 법한 식재료들도 굉장히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어서 다양

한 제품들을 부담 없이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하루는 서서히 채워졌다. 충분히 자고 일어나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테라스에 나가 햇빛을 쐬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책이나 영어공부를 하고 마트에 들러 신선한 식재료를 구매하고 정성 들여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넷플릭스를 보고 산책을 다녀왔다. 그 이후에는 이탈리아어 공부도 하고 플랫 메이트들과 수다를 떨며 저녁 준비를 하고 먹고 정리하고 홈트를 했다. 여유롭게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너무 건강해졌다. 잘 부러지던 손톱도 길게 자랐고, 아침잠이 많던 내가 아침형 인간이 되었으며 외부에서 할 일을 찾던 과거와 달리 내면에 집중하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한국에 살면서 그래도 타 직종에 비해 비교적 여유롭게 하고 싶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모든 시간이 온전히 나의 의지대로 쓸 수 있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막상 흘러넘치는 여유를 가지다 보니 처음에는 무료한 느낌의 한가로움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를 발견했다.(너 너무 간사한 거 아니니?)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다. 2주가 지나 나의 일상에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바로 어학원에 가는 일! 긴장과 설렘 사이 어디쯤의 감정을 느끼며 학원 공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네…? 온라인 강의요?” “인터넷 강국에서 14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화면 속에서만 영어를 배운다고요?” 나의 인생은 어디로 흐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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