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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신 Jan 10. 2022

사랑, 재채기 외의 숨길 수 없는 사투리

01. 유학휴직의 준비 과정

  초등학교 교사로서 휴직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내가 선택한 방법은 바로 유학휴직이다. 유학휴직은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석사나 박사 등의 학위를 얻기 위한 것, 나머지 하나는 어학연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후자의 어학연수휴직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모든 사람이 아무런 조건 없이 다 휴직계를 낼 수 있나? 안타깝게도 그건 아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구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어학연수휴직을 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근무기간이 만 3년을 넘어야 한다. 둘째, 해당 국가가 영어권 국가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토익, 아이 텝스 등의 공인 영어점수가 기준점을 넘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교육경력 3년을 훌쩍 넘겼고, 가고자 하는 몰타는 다행히도 영어권 국가였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공인 영어점수는 내 발목을 여러 번 잡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공교육, 사교육을 통해 영어 공부를 하고, 대학교를 거쳐 사회인이 된 후에도 영어 스터디를 취미 생활로 삼으며 영어 공부와의 인연을 지속했으나 수치화된 점수는 숨바꼭질하듯 나를 약 올리곤 하였다.

  ‘이번에 점수를 받지 못하면 깔끔하게 포기하겠어!’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마지막 시험을 치러 가는 날 왠지 모르게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생각은 듣기 시험 내내 울리는 매미 소리에 무너졌다. 집으로 돌아와 가채점을 하며 내게 허락되지 않을 휴직을 아쉬워했었는데 웬걸 기대를 뛰어넘는 높은 점수가 나왔다. 덕분에 토익 점수가 상대 평가라는 지나칠 수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했으니 이제 학교에 알리고 휴직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학원 선택을 위해 어학원 상담을 받을 차례이기도 했다. 나는 가고자 하는 나라가 확고한 상태라서 여러 나라를 담당하는 유학원보다 몰타의 어학원과 생활에 대한 전문성 있는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유학원이 필요했다. 다행히 좋은 유학원 팀장님을 만나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유학휴직으로 외국에 가게 되면 사설 어학원에는 등록이 불가능하고 반드시 대학 부설 어학원을 등록해야 한다.

  몰타에는 ‘몰타대학교 부설 어학원’과 영국대학교인 ‘LSC부설 어학원’ 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나는 LSC에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는 몰타대학교 부설 어학원과 달리 LSC부설 어학원은 수도에 위치해있고 번가화로의 이동이 아주 편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정하고 학비를 납부하고 나니 나의 휴직이 비로소 실감 났다.

  단꿈에 젖어 하루하루 보내던 어느 날, 휴직에 필요한 서류 중 하나인 ‘아포스티유 발급’에 문제가 생겼다. 유학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는 영국이나 미국 같은 경우 ‘아포스티유’를 대리로 발급해주는 업체가 많은데 몰타는 유학원조차 처음 해당서류를 발급받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유학의 꿈은 도루묵이 되는 건가?’싶어 유학원 팀장님과 함께 며칠을 고민하며 방법을 찾았고 결국에는 잘 해결이 되었다.

  모든 형식적인 절차가 완료되고 이제 개인적으로 짐만 챙기는 일만 남았다. 의식주에 필요한 것부터 한국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야무지게 짐을 챙겼다. 한편, 방학 때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한 달 동안 집을 비운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장기간 가족의 품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라 정서적인 이별의 시간 또한 필요했다. 독립심은 강하지만 자립심은 약한, 생활력을 발휘한 경험이 현저히 적은 인생을 살아온 나에게 1년의 유학생활은 인생공부의 현장이기도 했다.



  가까운 지인들과 몇 번의 송별회를 거치고 떠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19’가 우리 생활을 서서히 바꿔가고 있었다. 특히 나의 도시, 대구는 그 피해가 특히나 커서 출국을 몇 주 앞두고는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혹시나 밖에 나갈 때는 완전 무장을 하고 볼일만 보고 집으로 복귀하였다. 그렇게 출국일이 되었고, 나는 이탈리아를 경유하여 몰타로 무사히 입국을 하였다.

  몰타에서 유학원 원장님 커플을 만났는데 몰타 뉴스에서도 떠들썩하게 한국 특히 대구에 대해 보도가 되었나 보다. 한국에 있는 지인들이 떠나기 전, “대구 사람인 걸 묻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마!”라고 했지만, “입만 열어도 경상도 사투리가 나오는데 그게 말처럼 쉽나요?” 혹시나 내가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까 봐 플랫 메이트들과 짧은 시간 인사 후, 한동안은 식사 시간도 피하고 접촉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몰타는 코로나 확진자가 전혀 없을 때라서 자가격리라는 말 자체가 없을 때지만, 자체적으로 한동안 숙소에서 지내다가 학원에 가서 입학시험도 치고 등록도 마치고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려던 찰나에 어학원장님께서 오시길래 환영의 인사라도 하시려나 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다시 집으로 돌아가란 말을 하러 나온 거다. “세상에 엄마, 나 다시 대구로 돌아가야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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