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대학교시절 방학 때 빵집 알바를 하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아빠가 들어와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곰보빵 하나랑 우유 하나 주세요. 그 뒤로 아빠는 매일 같이 엄마를 보러 찾아왔다. 옛날 사진을 보니 엄마는 하얗고 키가 커닿란 단발머리 아가씨였다. 아빠는 키가 크고 길쭉하고 엄청 잘생긴 청년이었다. 그렇다. 내가 보기엔 엄마는 얼빠에 금사빠였다. 아빠가 너무도 잘생겼다.
둘은 간간히 전화로 만나는 장소를 정해서 데이트를 했는데, 그때부터 엄마는 아빠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돈이 없다고 하질 않나,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고 잠수를 타지 않나 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한날은 엄마가 친구들에게 아빠를 소개해줬다.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빠와 헤어지라고 했단다.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고 너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결혼을 생각할 때쯤 고모가 엄마를 따로 불렀다고 한다. 고모가 "결혼은 정말 다시 생각해 봐, 우리 집에 시집오면 큰일 나. 쟤도 제정신은 아니고, 네가 친 여동생 같아서 하는 말이야." 엄마는 고모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단다. 어떻게 누나라는 사람이 자기 집과 동생을 까내릴까. 게다가 외할아버지는 아빠를 굉장히 마음에 안 들어했다고 한다. 결혼을 극구 반대했을 정도라고 한다. 남자는 남자가 보면 안다고. 시집가면 고생은 정해졌을 것이라고.
사랑을 누가 막을쏘냐. 지팔지꼰(자기 팔자 자기가 꼰다.)이라고 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누구의 말도 안 들린다. 이렇게 수많은 시그널이 존재했음에도 엄마는 결혼을 단행했다. 엄마는 빨리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고 했다. 엄마가 없는 환경에서 큰 엄마는 온전한 가정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내조하는 아내, 따듯한 엄마가 되는 것이 큰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역회사에 일하던 엄마는 냉큼 전공을 버리고 결혼을 도피처로 선택했다. 그 시절 여자가 대학교를 나왔다는 것은 큰 일이었는데, 사회생활을 조금 맛보기도 전에 가정을 선택했다.
집을 다 구해놨다는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결혼식을 올렸다. 엄마의 짐을 챙겨 집으로 들어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그 집은 시댁이 전부 모여사는 개미굴이었다. 작은 아파트에 큰방은 할머니 할아버지, 둘째 방은 아빠 엄마, 작은 방은 둘째 작은 아빠 둘째 작은엄마 자녀 1, 창고에는 셋째 작은 아빠 셋째 작은 엄마 자녀 2. 이미 이렇게 살고 있었다. 방이 3개에 창고를 개조한 방 1개 화장실 1개인 아파트에 무려 4가구가 모여 사는 것이다. 4가구 8명에 자녀가 3까지 총 11명이 살아야 했다. 이것이 닭장의 닭인가, 벌집의 벌인가.
엄마와 할머니가 같이 고른 혼수들은 큰 방에 욱여넣어야만 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당시 유행하던 장롱을 엄마가 구해서 계약을 걸어놨는데, 큰 방에 들어오니 자개장이 떡 하니 놓여있더란다. 할머니가 몰래 매장에 전화해 자개장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엄마는 충격에 휩싸였지만 이미 배송 온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자개장은 얼마나 휘황찬란한지 번쩍번쩍 눈이 부셨다. 내가 클 때까지도 그 자개장은 늘 우리 집 한편에서 빛이 났다.
서프라이즈는 더 있었다. 내가 태어난 지 100일도 채 되지 않아서 아빠는 군대를 가야 한다고 했다. 분명 군대를 다녀왔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일인가. 애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게다가 이런 개미굴에 엄마를 혼자 두고 군대를 가버린다니. 당시 군대는 기간도 길었고, 연락이라고는 공중전화가 고작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빠의 군대를 빼기 위한 노력을 다 했다. 덕분에 아빠는 민방위로 빠져서 출퇴근을 하는 신의 은총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 말이 안 되는 일들이 많았다. 지금 시대에는 당장이라도 파혼하고, 이혼하고 했을 문제들이 그 시절에는 괜찮았던 걸까. 아니면 엄마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왜 저런 것들을 참고 살았을까? 엄마의 푸념을 들어주는 일이 나의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엄마의 성토를 묵묵히 듣고 있는데, 한날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너를 지울까도 생각했어." 그 당시에는 낙태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일이었다. 물론 시집살이 상황이 힘들어서 그런 생각도 했다는 맥락에서 이해 가는 문장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상처로 남았다. 역시 나는 태어나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까. 나도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 나를 태어나게 한 사람이 누군데 나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건가.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살고 싶지 않은데 그때부터 죽지 못해 산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