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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Sep 29. 2023

12. 폭력을 쓴 아빠

"리모컨 당장 안 가져와?" 


'말이 많아 실수가 많습니다. 가정에서 특별한 지도가 필요합니다.' 막냇동생의 초등학교 1학년때의 생활기록부에 적힌 말이었다. 그렇다. 남동생은 태어나서부터 말을 굉장히 빨리 시작했다. 게다가 성격도 어찌나 날 것인지 클수록 남동생의 말은 거침없는 야생마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담배냄새가 나면 아저씨를 쫙 째려보고는 '엄마, 저 아저씨 담배 피우나 봐 담배냄새나!!'하고 아주 당돌하게 이야기했다. 그때마다 진땀을 빼면서 죄송합니다를 연신 내뱉었다. 그렇게 남동생은 미운 4살을 지나 미운 7살이 되었다. 자아가 형성될 때의 시기인 만큼 자신의 주장도 날이 갈수록 강해졌다. 


이 무렵 아빠는 정신과를 꾸준히 다닌 덕에 일상생활이 어느 정도는 가능해졌다. 환청 환시는 잡힌 듯했고, 무엇보다 불안해하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가끔 슈퍼에서 장을 보기도 하고 요리를 한 번씩 해보기도 했다. 아빠의 대부분의 일과는 tv 보기 었다. 티비를 보는 아빠의 표정은 늘 무표정하고 멍하긴 했으나 우리에게 딱히 해가 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아빠가 티비를 보는 것을 말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남동생은 아빠가 티비를 보는 것이 퍽 마음에 안 들었다. 자신은 만화가 너무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비디오테이프로 만화를 보던 시기였는데, 우리 집에는 만화비디오가 몇 가지가 있었다. 그중에 톰과 제리가 굉장히 인기 있는 만화였다. 그 만화를 남동생은 매우 좋아했다. 똑같은 비디오테이프를 몇 번이고 재생하고 재생하였다. 나중에는 하도 틀어서 테이프가 늘어졌는지 특정 부분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남동생의 못된 버릇이 아빠가 티비를 보려고만 하면 리모컨을 탁 뺏어서 숨겨놓고는 저 멀리서 비디오버전으로 바꿔버렸다. 정말 만화에 나오는 톰과 제리 같이 행동했다. 남동생은 자신이 꼭 제리가 된 듯이 아빠를 약 올리고 얄밉게 굴었다. 마침내 아빠는 참았던 화가 터졌는지, 분노를 표출했다. 예전에 엄마에게 드러냈던 분노보다는 훨씬 약한 정도였으나 처음 보는 동생들은 그 장면에 꽤나 놀랐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당장 가져와! 를 외쳤고, 남동생은 아빠 손에 들려있었다. 남동생은 충격을 먹었는지 벌벌 떨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그 뒤로 남동생은 멈출 줄 몰랐다. 오히려 반항심이 생겼는지 아빠에게 더욱 심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빠는 더욱 강한 손지검을 했다. 둘의 싸움은 거의 난투극이었다. 남동생은 아빠를 발로 찼고, 맞은 아빠는 더 이상 아들로 보지 않는 눈빛으로 상대했다. 아빠는 남동생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뺨을 때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똑같이 발로 차기도 했다. 피해가 심한 쪽은 당연히 남동생이었다. 


눈이 좋지 않았던 남동생은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안경테가 늘 삐뚤어져있었다. 코받침이 나가는 것은 일상이었고, 안경테에 볼이 찢기기도 했다. 시퍼런 멍자국이 온몸에 군데군데 있었다. 남동생의 처참한 상처를 치료해 주는 건 나였다. 둘의 싸움을 어느 순간 말릴 수가 없었고, 싸움이 끝나고 난 뒤에 남동생을 수습해야 했다. 아빠에게 매번 남동생을 이렇게는 때리지 말아 달라고 했으나 화가 나면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남동생에게도 제발 아빠에게 대들지 말라고 이야기했으나 날로 갈수록 심해졌다. 



이 싸움의 결말은 늘 늦은 저녁 엄마와의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늦은 밤 일을 마치고 들어온 엄마는 자신의 아들의 멍과 상처를 마주해야겠다. 내가 발라놓은 후시딘은 참으로 번쩍거렸다. 꼭 이것 봐라 하는 것처럼. 이런 생활이 일 년이 넘게 지속되자 엄마는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아빠에게 고향으로 가라고 했다. '당신도 나도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 특히 막내를 키우는데 이렇게 키울 수 없다. 대물림시키지 말아라. 혼자 살아라. 더 이상 나는 당신을 돌봐줄 수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라. 당신의 엄마 아빠에게 돌아가라.' 아빠는 조금 모아둔 돈을 가지고 고향으로 갔다. 이것이 아빠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때의 사건에 대해서는 엄마는 여전히 잘한 일이라고 했다. 나 또한 계속 남동생이 맞았다면 폭력성은 대물림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참 재밌는 일은 남동생은 다르게 말했다. '엄마가 집에서 아빠를 쫓아냈다. 나는 아빠와 같이 장을 보러 갈 때 보름달 빵을 사주던 것이 좋았다. 내가 아빠가 없는 것은 전부 엄마 탓'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이 된 남동생의 발언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맞았던 기억은 사라진 것인지, 그때 맞았던 일로 뇌가 어떻게 돼버린 것인지. 한 동안 엄마와 나는 충격이 휩싸였다. 


좀 더 어른의 나이에 가까워진 후에는 남동생을 이해하게 됐다. 엄마도 없는 상황에서 남동생에게 보호자란 아빠가 전부였다. 남동생은 아빠의 심각한 상태를 보지도 못하고 컸고, 정신적으로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운 나이었다. 남동생에게 아빠는 그저 친구들 아빠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기랑 놀아주지 않고 티비만 보니 심술이 났던 게다. 아빠와 몸싸움도 하고 공도 차면서 놀고 싶은데 관심조차 주지 않으니 화가 났던 것이다. 동성인 아빠의 관심과 사랑이 많이 필요했던 아이다. 그 사랑은 이성인 엄마나 누나들이 채워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남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참으로 마음 아픈 일이다.


자신의 아빠에게 맞았던 폭력을 자신의 아들에게 그대로 표출하며 눈빛은 살의로 가득 차 있던 아빠. 반항심과 그렇게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다리를 붙들고 끝까지 싸웠던 남동생. 둘이 엉켜있는 싸움의 한가운데서 나의 심정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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