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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Sep 22. 2023

4. 다방 아가씨와 입학식을 간 나

"이모 손 잡아야지, 뭐 하고 있어."


동생들이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엄마는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일하러 나갔다. 집에는 아빠라는 존재가 간헐적으로 있다가 없다가 했는데, 괜찮은 날도 안 괜찮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집에 어른이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에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8살이 되었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초등학교까지 걸어가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일부러 장을 보러 나갈 때면 초등학교까지 걸어갔다가 오곤 했다. 유치원보다는 가는 길이 어렵지 않았고 차도가 넓지 않아 위험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초등학교는 걸어 다닐만하겠다고 생각했다. 


3월 입학식이 다가왔다. 큰 이모는 입학 선물로 핑크색 가방과 빨간색 실내화 가방을 사주었다. 큰 토끼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는데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문제는 입학식을 같이 가줄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갔어야 했고, 아빠는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어디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엄마는 가까이 살던 할머니에게 나를 맡겼다. 



그 당시 할머니는 지역의 터미널 앞에서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기억하고 있는 다방의 이름은 새 서울다방이었다. 엄마가 일을 나가면 할머니는 이따금씩 나를 다방에 데려가곤 했다. 지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쾌쾌한 곰팡이내가 올라왔다. 검은색 흰색 회색 자잘한 돌들이 섞여있는 돌바닥에 얼룩 덜룩한 무늬가 있는 소파들이 5개쯤 있었던 것 같다. 오른쪽 모서리 쪽에는 할머니와 아가씨들이 쉴 수 있는 평상 공간이 있었는데 커튼을 둘러쳐놓고 고스톱이나 잡담을 했다. 날계란이 올려져 있는 쌍화탕을 주시고는 했는데 계란 노른자가 목에 좋다며 꿀떡 삼키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박카스에 날계란은 덤이었다. 


입학식 당일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다방으로 출근을 하였다. 그리고는 다방아가씨에게 나를 넘겼다. 그곳에서 오래 일한 아가씨의 이름이 정향인가 정양인가 이런 비슷한 류였다.  그 아가씨는 할머니의 말에 바로 나의 손을 잡더니 택시를 타러 나갔다. 



이모가 사준 분홍색 가방을 등에 매고  빨간 실내화 주머니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다방 아가씨 손을 잡고 초등학교로 향했다. 그 시절 초등학교 입학식은 허허벌판인 운동장에서 단상을 하나 두고 진행했다. 3월이라 아직 추웠고, 다리를 베베 꼬았던 기억이 난다. 짧은 치마의 다방아가씨도 추운지 다리를 손으로 쓸어내리곤 했다. 


'1학년 8반 학생들 일렬로 서세요'하는 소리에 나는 다방아가씨에게 저기에 줄을 서야 한다고 했다. 줄을 일렬로 서있는데 모두가 엄마 손을 잡고 나란히 서있었다. 다방아가씨와 나란히 줄을 서있는데 '이모 손을 잡아야지 뭐 하고 있어'라고 하더니 손을 낚아채듯이 잡았다. 이제 와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그 시절 엄마들의 나이는 꽤나 젊었다. 많아야 30대 초 중반이었으니, 다방아가씨의 나이가 비슷해 그렇게 튀는 외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생판 남이요 알리는 닮지 않은 외모와 망사스타킹에 짧은 치마는 그 누가 봐도 엄마는 아니었다. 처음으로 창피하다는 감정을 강렬하게 느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정말 피치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에 출장이 잡혀있거나 중요한 미팅이 있다면 그날에는 어떤 경우가 있더라도 회사를 나가야한다. 분명 엄마가 그런 날 중에 하나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할머니도 자기보다는 젊은 아가씨가 가는 것이 엄마처럼 보이니 내가 덜 창피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사실 내가 믿고 싶은대로 믿어서 나는 나를 보호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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