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정시에 회사에 출근해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탕비실에서 차를 한잔 가져와서 자리에 앉는다. 사적인 생활에서는 아빠의 집을 천천히 정리하고, 그의 행적을 쫓고 있었지만 공적인 사회생활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잘 해내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힘든지 몸이 자꾸 야위어갔다. 주변 동료들이 얼굴이 자꾸 하얗게 질리는 것 같다, 살이 빠진 것 같다, 초췌한 것 같다고 했다. 애써 요즘 빠진 드라마가 있다, 미드를 정주행 중이다 등으로 나의 몸상태를 대변해 주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잘 먹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업무를 보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엑셀을 여는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이것은 아빠의 방에 들어갔을 때보다 더한 상태였다. 흡사 어떠했는가 하면 누가 한 손으로는 내 심장을 쥐어짜고 한 손으로는 기도를 막고 있는 듯했다. 숨이 안 쉬어지니 너무 놀랐다. 조용히 책상 앞으로 엎드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두려움이 엄습하였다. 이러다 죽는 걸까.
그 무렵 공황장애에 대한 이슈들이 연예인들 사이에서 빈번히 언급되었다. 때문에 나는 '아 이것이 공황장애이구나, 조금 있으면 지나갈 테니까 기다려보자.'생각했다. 공황장애는 대부분 30분 이내에 좋아진다고 칼럼에서 읽었기 때문에 버텨보았다. 다행히도 숨이 조금씩 쉬어졌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재빨리 화장실로 가 세수를 하고 변기칸으로 들어가 얼굴을 닦았다. 회사에서 이런 꼴을 보일 수는 없었다.
너무도 무서웠기 때문에 자리에 돌아와서 회사와 가장 가까운 정신과병원을 찾았다. 삶에서 아빠에게 감사한 점이 있다면 정신과는 무서운 곳이 아니며, 증상이 일어났을 때 빨리 찾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 점이다. 나는 사수에게 병가를 쓰겠다고 이야기하고 조퇴를 했다. 그길로 핸들을 간신히 붙들고 병원으로 갔다. 정신과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아니,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진료를 받으러 온다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심지어 국적도 다른 분도 있었다. 아빠 덕분에 항상 대학병원같이 큰 병원의 정신과만 접수를 해보았다. 대학병원이야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는 정신과병원에 처음 가보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으니 새삼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나 말고도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곳은 예약제가 아니어서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게다가 초진이면 검사도 받아야만 했다. 검사는 손, 발, 머리 양쪽에 집게 같은 것을 꽂고 5분 동안 있으면 된다. 거의 한 시간 반을 멍하게 기다렸나. 내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의사의 컴퓨터 책상과 환자 의자가 하나 마련되어 있었다.
40대 중반의 여성 의사였다. 따듯한 말투로 앉으라고 권했다. 그리고 어디가 안 좋으셔서 오셨냐 물었다. 이상하게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5분 넘게 울었나. 휴지를 주시며 괜찮다고 이야기해 보라고 했지만 계속 울기만 했다. 나의 첫 진료는 아무 말이 없이 울다가 끝났다.
그리고 3일 뒤에 오라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약이 맞지 않아 갖은 부작용을 겪었다. 3일 뒤에 내원을 했다. 선생님하고 마주 앉기만 하면 이상하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서. 겨우 약의 부작용에 대해 말을 했다. 다른 약으로 바꾸었고 이 약이 아니면 안 된다는 말에 작은 부작용쯤은 적응하기로 했다. 일주일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그래프는 정상범위에서 심각하게 벗어나 있었고, 분포도로 보아 우울증이 굉장히 오래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우울증으로 진단받았다.
맞다. 증상으로 나타난 것은 지금이 처음이지만 나의 우울증은 아주 어릴 때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프의 수치로 보니 다시 한번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프를 들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저 깊숙하게 넣어두고 모른척했던 자기 연민이 불쑥하고 튀어나왔다.
전부 가족 때문인 것 같았다. 나의 우울증은 아빠 때문이고, 엄마 때문이고, 동생들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원치 않았는데,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는가. 이런 가정에서 키울 거면 낳지를 말지. 게다가 왜 동생들은 둘이나 낳았는가. 엄마로서 아빠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동생들을 낳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줄줄이 사탕으로 낳아서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했는가. 그리고 지독한 혈육의 끈 때문에 아빠라는 알아내는 것이 지옥 같은 일이라면 적어도 나에게 선택권을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 말고 동생들이 할 수는 없는 걸까. 왜 나만 이런 병에 걸린 걸까.
너무도 특별한 가족에서 유달리 자란 것 같아 한없이 내가 안쓰럽고 불쌍했다.
근데, 아빠도 이렇게 마음이 힘들었던 거야? 고등학교시절 우울증 약을 먹었다고 했었잖아. 아빠도 참 힘들었겠다. 아빠도 가족 탓을 했었어? 아빠를 때린 할아버지가 미웠나 아님 너무도 무기력해져서 그럴 힘도 없었나. 대체 그 시절에는 누가 정신과를 데려간 거야? 나는 그래도 아빠덕에 정신과를 내 발로 잘 찾아갔어. 아빠 때문에 내가 병에 걸린 건지, 아빠 덕분에 내가 병을 빨리 알아챈 건지. 아빤 참 내게 많은 것을 줬구나. 이런 건 안 줘도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