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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로 Oct 06. 2023

19. 아빠의 삶을 알게 된 나

"꼭 기억해야 된다.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아빠는 어눌하게 말을 조금 할 수 있었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일반병실에서 정신과 입원동으로 옮겨졌다. 어릴 때 보았던 정신과 입원동보다는 훨씬 쾌적해 보였고, 프로그램도 잘되어있었다. 아빠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 이름을 수차례 반복했고, 오늘이 며칠인지 수십 번 물어봤다. 같은 이야기를 무수히 반복했지만 똑같이 계속 대답을 해주었다. 아빠는 3세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었다. 


한날은 아빠 손톱깎이를 가지고 면회를 갔다. 간호사는 손톱깎이는 손톱을 깎은 뒤 반납하라고 했다. 환자는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는 간호사에게 알겠다고 얼굴을 딱 바라보는데 순간 흠칫했다. 고등학교 시절 옆반 친구였다. 정말 아는 척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필 정신과 입원동 간호사라였다니. 고개를 푹 숙이고 모른 척했다. 그 친구도 나를 알아본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척해준 것이 티가 났다. 그날은 참으로 괴로운 날이었다. 



아빠가 쓰던 물건을 병원으로 옮겨야만 했다. 물건을 가지러 아빠의 집으로 갔다. 사실 그 집은 개미굴 같은 할머니 집에서 독립하여 엄마 아빠가 처음 산 집이었다. 빌라였는데, 옹기종기 살기에 나쁘지 않았다. 다만 그 집에서 갖은 풍파를 겪었던 지라 나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서울로 이사를 갔고, 얼마 뒤 아빠는 지방의 그 집으로 돌아갔다. 그 집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가 함께 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마음의 각오를 하고 집으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깨끗해서 놀랐다. 물건이 거의 없었고, 청소가 된 상태였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니, 참 이상했다. 물은 끊긴 지 오래되었고, 냉장고의 코드는 빠져있었다. 우선 요리를 해 먹거나 씻는 것은 불가능한 집이었다. 안방에는 할머니가 몰래 바꿔치기한 자개농이 그대로 있었다. 아무래도 안방에서 생활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문이 조금 열려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어릴 적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온갖 신에게 빌며 아빠를 낫게 해 달라고 울면서 빌었던 공간이다. 여전히 천장에는 야광별 몇 개가 붙어 있었다. 속이 답답해져 오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작은 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악취가 났다. 마스크를 재빨리 썼다. 아빠가 누워있던 자리는 매트가 하나 깔려 있었고 그 주위로 동그랗게 두유팩들이 수백 개 쌓여있었다. 단백질이 썩어서 나는 악취와 함께 둥그렇게 쌓여있는 무덤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두유팩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100l 쓰레기 봉지로 4개가 나왔다. 두유팩을 걷어내자 수많은 동전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동전은 너무 낡고 낡아서 쇠독이 오를 것만 같았다. 장갑을 끼고 하나씩 주워 담았다. 이쯤 되니까 허리가 끊어질 것같이 아팠다. 곳곳에 라이터가 나오고 담배꽁초와 껍질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는 구석에 있는 곰팡이로 엉킨 틀니를 겨우 찾아 칫솔로 수십 번 씻었다. 



아빠가 이가 없으니, 두유를 마셨구나. 그리고는 자기 주위로 이렇게나 쌓아놓았구나. 두유를 쌓아 놓은 이유는 그 밑에 돈을 숨기기 위함이었구나. 정말 그 동전의 개수는 백만 원에 가까운 수였다. 아. 지옥이 있다면 이런 곳일까. 대체 이런 곳에 왜 이렇게까지 돈을 악착같이 모아놨지. 정리하다 보니 아빠의 일지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아빠가 비뇨기 쪽에 문제가 생긴 날부터 소변을 언제 언제 누었는지 약은 언제 먹었는지 기록한 것이었다. 소변을 너무 자주 보고 있었고, 약을 먹는 시간이 점점 빨라졌다. 아빠가 실려간 그날에도 기록이 되어있었는데 소변을 30분 간격으로 보고 있었으며, 약은 1시간마다 먹고 있었다. 결국 아빠의 혼수상태의 원인은 약물로 인한 쇼크였다. 


아빠의 핸드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조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007 가방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 가방의 비밀번호는 나에게만 알려줬었다. 아빠의 통장이 들어있었고, 고모가 대학교시절 써주었던 편지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 통장을 가져가니 아빠는 나에게만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이상하게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데, 비밀번호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하는 듯했다. 나는 잊지 않고 폰에 저장을 해두었다. 




처음 요양보호사라고 연락온 사람부터 아빠의 행적을 쫒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빠에게 배정된 요양업체의 사람이었다. 매일 아빠집을 방문했고 찾아왔는데 자신은 배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처음부터 아빠의 상태를 알고 있지 않다고 했다. 집에 와서 보면 항상 누워있었고, 작은 방에는 절대 들어오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그냥 앉아있다가 가라고 했다고 한다. 집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고 이미 먹을 것도 없어서 자신은 바나나를 사두고 갔다고 했다. 


결국 요양업체의 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아빠에게는 늘 방문했으며 청소를 깨끗하게 해 놓았고,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대답만 돌아왔다. 아빠의 상태에 대해서는 언급하기를 꺼려했다. 아무래도 일이 커질까 봐 최대한 말을 아끼는 듯했다. 주변 이웃들의 말에 의하면 아빠가 있는 방에는 들어가지 않고 거실에서 핸드폰만 하다가 갔다는 증언들이 있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대체 아빠가 언제부터 이런 상태가 되었는가가 중요했는데,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아빠 병의 진행과정에 대한 것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몇 해가 안되었고, 할아버지와는 싸워 따로 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아마도 주변에 챙겨주는 이가 없으니 아빠의 병이 빠르게 악화된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뿐이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이 되어있었고, 동사무소에서 관리하는 대상이었다. 아빠는 나랏돈으로 요양업체에 맡겨져 있는 상태였다. 아마도 케어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던 것 같다. 그들은 청소는 해주었지만 아빠에 대한 케어는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질 않나. 사람과의 단절이, 소통의 단절이 가져온 대가는 무서운 것이었다. 꽁꽁 숨겨놓은 가방도 바닥에 깔린 동전들도 그토록 아빠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신을 잃고나서도  기억하고 있는 비밀번호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들릴까 나지막히 속삭힌 그 심정도. 엄마도 동생도 아닌 나에게만 알려주고 모른척했던건 왜였을까. 도무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아빠의 삶의 흔적을 치우는 과정에서 알게된 것들도, 그동안 살아온 행적을 알아낸 것도 모두가 나는 왜이리도 한켠이 아린지. 그도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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