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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은 Aug 02. 2024

투병생활의 유전과 사랑의 고통

마음의 산책

누구나 아프다. 아픔이 없이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다.

나의 시간이 오롯이 인생이지만 내 시간 안에 아내의 시간이 녹아 있다.

아내는 나의 동반자요, 나의 짝사랑이다.

객지에서 아침 식사를 할 때 종종 아내의 도시락 반찬(오징어 조림, 오이, 호박나물 등)

엄마처럼 눈물 나게 한다.  

   

오래전에 나는 골수섬유증, 백혈병의 일종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임상약과

녹즙(엔젤녹즙기로 아내 직접제조), 어씽(맨발 걷기) 등으로 일상이 회복되어 통원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고 있던 선물 같은 아이에게

갑자기 이석증과 전정기능저하증이 찾아와 어지러움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이의 아픔에 여러모로 달래며 함께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어쩌면 공부를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수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수술로 치료하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줄 알고 원망스럽고 배신감도 느꼈다.

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이 아프다.  '무지개를 보려면 비를 견더라.'는 속담처럼

아이의 미소에서 희망의 무지개를 본다.    


나의 부자 조건 3가지는

가족의 집이 있고, 건강이 있고,  자유가 있는 것이다.

집은 남녀가 공존하는 삶의 공간이면 족하고,

건강은 스스로 걷고 의사소통 가능 정도면 되고,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양심에 따른 적극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예전에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 도피’를 읽고

자유란 최상인데 왜 도피를 할까 궁금했다.

우리 영혼이 천사의 인도를 받아

신의 품에 도달하기 전에는 진정한 자유란 없지만

철학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소극적 자유에서 도피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느 방송에서 3번째 남편을 만나는 여인에게

왜 또 재혼을 하느냐고 물으니까

그녀 왈 "하나는 외롭고 둘은 괴롭다"

참 아이러니 하다

스스로 '홀로 서지 못하고'

'구속으로부터 도피' 하지 못하면서

삶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중요하다.

양자역학이나 끌어당김의 법칙에서도

자연의 법칙은 적용된다.

말은 씨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 자신이 하는 말이 현실이 된다는 뜻이다.  


지난주 주말 저녁에 공원에서 아이랑 맨발 걷기를 함께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아빠, 스위스처럼 ○○○를 허락해 주면 좋겠다"

나도 생각 없이 "아마 나중에 ○○○ 캡슐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했다.

요즈음 비요일이 많아지면서 아이가 ○○ 싫다는 말을 종종 한다.

청년들이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은 짠하다. 

자식이란 부모가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지만 부모의 삶을 이어주는 희망이다.

그래서 내 신앙심이 약해져서 하나님께서 나를 시험하시나 생각도 해보고,

간절하게 기도를 한다. 일종의 사랑의 고통이다.     

삶이란 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태양과 달의 정성스러운 운행에 감사한다.

인문학의 감성으로 지적인 기쁨을 누리고

푸르고 푸른 자연과 눈 맞추며

정감 어린 마음의 산책을 하면서

내가 가진 것, 해빙(having)을 향유한다. 

    

각설하고,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일부러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

삶은 파도와 바람이 주인공 같지만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마음에는 시와 음악이 있고

간절한 사랑의 그리움이 있으니

선한 영향력과 절대긍정, 삶을 이끄는 힘이 소중한 것 아닐까.

     

날이 야한 날에는

땅과 하늘에 키스하며

파란 하늘과 신록을 바라보면서

가족들과 함께 시공간을 살아간다는 것이 행복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나의 긍정에너지가 무의식 중에 아이에게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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