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제주도의 해변가를 에너지 넘치는 청소년 강아지와 함께 걷는 하얀 패딩의 숏컷 롱다리 연예인의 제주도 여행을 보고 싶었었다. 제주도 해변가를 따라 걷다가 만난 한치와 오징어 파는 길가 가게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너무 부러웠다. 근데 막상 내 생활에서 써먹는 건 희극인보다 더 큰 웃음을 주었던 웹툰 작가의 닭갈비 볶음밥이다.
명절 음식이 넘나리 느끼했고, 다음날이 휴무일인 마트의 마감 세일에서는 닭갈비 2팩과 돼지불고기 1팩을 1만 5천 원에 팔고 있었다. 1팩에 오천원씩 떨이였다. 손님이 다 빠지고 계산대에서 줄을 서던 순간 들인 떨이 판매 방송에 잠시 들러 흥정을 하고 다시 계산대로 돌아왔다. 차가 다 빠진 듬성듬성한 주차장에서 엄마는 왜 그렇게 딸내미가 야밤에 마트를 다니는지 알겠다며 웃었다. 가성비 인생에서 가장 가성비가 좋은 장보기는 마감 세일일 수밖에. 마침 그날따라 한강 앞쪽으로 심부름을 가게 되었고, 그래서 한강 앞에 간 김에 한강 너머 바로의 마트에 들렀다 집으로 복귀했다. 모두의 냉장고에 먹을 게 그득그득한 명절 다음날, 코로나로 9시에 문을 닫는 마트에서 그렇게 세일에 세일을 더한 양념육과, 참치회를 사 왔더랬다. 그리고 참치회는 그 당일의 첫 끼니로, 닭갈비는 며칠 뒤 시어머니표 전과 잡채와 함께 먹고 1/3이 남았다.
또다시 남편이 야근을 하는 어느 날, 눈뜨자 출근을 하고 6시 땡 퇴근을 한 뒤 남은 잔업을 하다 보니 저녁 8시 반이 넘었다. 배고프긴 한데 무얼 먹고 싶진 않고, 우유나 두유로 한 끼를 때우기엔 좀 허기가 지는데 그렇다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요리를 하긴 싫을 때였다. 10분, 20분 고민을 하는 사이 시간만 흐르다 매콤한 닭갈비 볶음밥이, 냄새 풀풀 날 매운 양념 요리가, 배고픔이 이상한 깔끔 병을 이겨냈다.
맵고 짠데 햇반을 하나밖에 안 넣어서, 맛있게 먹겠다고 조미 김자반을 더 넣었더니 엄청 짜게 되어서, 어째야 하나 고민하다가 계란 프라이를 더하고 참기름을 더했다. 약한 불로 오래오래, 닭고기가 익을 때까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누룽지가 생겼다. 반숙의 계란을 휘적휘적, 1팩에 오천원을 주고 산 빨간 닭갈비를 두 끼로 소분해서 이렇게 맛있게 먹고 있다니. 자꾸 혼자 맛있는 걸 먹어서 남편에게 미안했다.
먹다 보니 20대 초반 친구와 사 먹은 강남역 닭갈비 볶음밥이 생각난다.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닭갈비는 못 먹고 점심 메뉴로 사 먹은 닭갈비 볶음밥. 강남 8 학군에서 만나서 알게 된 그때의 친구는 닭갈비 집에서 닭갈비도 아닌 닭갈비 볶음밥을 먹어서 어이없어 했었더랬고, 그때의 나는 안 그런 척했는지는 몰라도 속으로는 주눅이 들었더랬다. 늘상 피부과에 다니고, 하나 둘 명품을 장만하고, 틈이 나면 여행을 떠나고 먹고 싶은 걸 척척 사 먹고 돈 쓰는 걸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그게 좋아 보이고 부럽다고 여기며 십여 년을 보냈다.
다시 십 년이 더 흐른 지금의 나는 이제 철판 닭갈비도- 닭갈비 볶음밥조차도 사 먹지 못하게 되었다. 못하는 일이 늘어났는데도 오히려 주눅이 드는 순간은 줄어들고 있다. 내가 바뀌었다기보다는 나를 주눅 들게 하는 커뮤니티의 기준에서 벗어나서, 알게 모르게 주눅 들게 만드는 관계와 멀어져서 내 마음이 편한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들만의 리그에 나도 그 일원 인양 pretending하는 노력을 그만두고, 스스로 아웃사이더인 걸 인정해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물론 숯불 닭갈비야 밖에서 누가 숯도 준비해주고 연기도 내주고 하니까 사 먹을 용의가 있는데, 철판의 양념 닭갈비는 이제 더 이상 안 사 먹게 되었다. 대신 마트의 세일 타이밍이 맞으면 바깥 음식만큼 맛있는 외식 메뉴를 사들고 와서 집에서 간단히 해 먹곤 한다. 그리고 이렇게 오늘도 밖에서 못 사 먹는 음식이 하나 더 생겨서, 너무 맛있어서, 혼자여도 행복한 맛이어서 이 기쁨을 손가락 타자로 표현하다 보니 벌써 밤 10시, 몸을 채우고 마음을 채우며 알차게 식사를 마쳤다.
혼자여도 충분히 심심할 틈 없이 바쁘게, 적은 돈으로도 즐겁게 잘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남들이 조금은 또는 때때로 많이 '왜 그러고 사니-'라며 가엾게 여겨도, 조금 더 나이 든 지금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게 되었다. 어쩌겠어, 이런 모습에 마음이 편한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