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 따르기, 가까운 길과 먼 길

by cheh

남편은 잠이든 어느 오후, 햇빛은 반짝이고 온라인 배달의 띵동하는 벨소리에 잠이 깬 나는 장바구니 안의 빵과 우유를 먼저 꺼내 나만의 간식 타임을 준비했다. 종이 우유팩의 검은콩 우유가 너무 달아서 테트라팩의 흰 우유를 섞어 먹기로 했다. 테트라팩의 플라스틱 꼭지를 돌려서 열고 가장 가까운 쪽으로 우유를 따르는데 콸콸을 넘어 쿨럭쿨럭 나오더니 우유 방울들이 여기저기로 튀어나간다. 내가 요량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두번째 마실 때는 더 조심히 했는데 또 쿨럭이며 튀어나가는 우유들. 주의를 해도 안될 땐 방법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되는 건 내 노력의 방향이 잘못된 때인거지. 그럴 땐 방법,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웹서핑을 하며 짧은 지식들을 어디서 주고 들은 건 많아서 요렇게 하면 된다던데... 하고 플라스틱 마개에서 가장 먼쪽 말고 두번째로 먼쪽, 마개가 바싹 붙어있는 면이 아닌 짐짓 떨어져 있는 면으로 방향을 바꿔 따라본다. 콸콸콸이 아니라 콜콜콜콜 내가 아는 흐름으로 나오는 우유를 보며 꼭 인생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말을 할 때 용건만 간단히, 요구사항을 재빨리 말하고 필요한 걸 얻어내는 게 제일 빠른 길이라고 믿었다. 에둘러 말하면 답답했고, 본론을 말하기도 전에 친분부터 쌓으라고 하면 그 새를 못 참았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의 길이지. 어릴 땐 몰랐다. 경험이 없어서, 그렇게 대접받으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한 감도 없었다. 그리고 빠른 길이라 믿었던 그 길이 결국에는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는, 끝이 끊기는 길인지도 몰랐다. 끊긴 길을 다시 복구하려면 얼마만의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드는지 알지 못했다.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한지 몇개월. 겨우 하루, 이틀 자료를 읽고 있는데 눈알이 빠질것 같아진다. 어린 시절보다 더 빨리 목 뒤 근육이 뻣뻣해지는 게 느껴진다. 고3때처럼 관절들이 신호를 보낸다. 계속 책상에 앉아 한 자세로 무리와 보통 사이의 아슬아슬한 컨디션 관리를 하던 어린 시절, 젊은데도 불구하고 어깨 관절이며 무릎 관절이 늘 삐걱댔다. 밤 12시가 넘으면 무리한 몸을 재우고 아침이 오면 겨우 보통에 가까워지려는 몸으로 학교를 갔었다. 더 쉬고 회복할 시간을 줘야할 것 같은 몸을 추스려 교복을 입혔다. 학교까지 한참 가야하는 길을 막 나서며 관절을 체크해보면, 팔은 어느 선 이상 들어올릴 수 없고 어깨는 회전할 수 없었다. 걸을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리는 건 당연하고. 그 와중에 다행인 걸은 목과 허리는 멀쩡했다는 것?

그렇게 모질게 공부를 하다보니 정말 공부가 하기 싫었다. 연애해서 엄마처럼 집에서 살림이나 하고 싶었다. 그러다 집에만 있는 어른이 되니 어쩜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는 생각보다 훨씬 욕망less한 존재였다. 그런데도 에너지를 밖에서 발산하고 들어와야 우울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한참을 돌고 돌아 공부하러 기어들어오니, 지름길을 걸어온 내 또래가 나를 공부시키고 있다. 그 지름길을 걷는 게 쉬웠다는 뜻이 아니다. 걷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얼마며, 걷는 대신 할 수 있었던 많은 선택지들을 포기한 댓가로 빠르게 도달하고 성취한 것으로 나에게 이런저런 가이드를 알려준다. 부끄러운 마음이 불쑥 지나가고 나니 돈이 많고 멋지고 능력있고 재능있고 몸이 좋고에 젊고 늙고의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묘한 합리화가 자리를 잡는다. 그저 그가 쌓아온 커리어에 리스펙을 드릴 뿐.

다만 내가 다시 선택한 공부이고 다시는 직업 전선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늦은 나이, 늙은 몸에서도 악착같은 의욕이 생긴다. 신춘문예 시기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한다던 작가지망생처럼, 공부를 더 하는 친구들을 그렇게 손가락 빨며 부러워 하던 게 몇년이던가. 지금처럼 자료 읽고 정리하고 또 그걸 나누는 삶이 더 좋다. 살림을 하는 와중에 공부를 하기에 더 감질나는 것도 있다. 공부만 하면 만사 오케이던 시절과 달리 밥도 해먹고 설거지며 청소며 빨래며 각종 크고 잘은 가정사가 내 곁을 맴돌기도 하고 지나가기도 하며 산다. 그러면서도 공부도 해야 하고.

다시 첫 발자국으로 돌아간다면 내가 과연 다르게 행동했을까 싶다. 천천히 가는 게 필요하다고, 인생 길고 가늘게 변함없이 쭈욱 가는 게 필요하다고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혹은 아무리 말해주어도 나에게 들리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내 길을 다 걷고 나서야, 겪고 나서야 내가 끝나버리는 길을 걷고 있단 걸 알게될 테니까. 내가 가진 것은 자꾸 보잘 것이 없어 뵈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만 같고, 저 멀리가 궁금하고. 내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내가 얼마만큼 더 버틸 수 있을까. 나아가거나 버티는 것 모두 현재를 부정하는 태도라고 한다면, 반대로 오늘 이순간을 받아들이고 즐거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다시 뒤집어서 지금 이 순간이 지겹지 않으려면 혹은 지루하거나 지긋지긋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TV 프로그램 '유퀴즈'에서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 할머니 '밀라 논나'가 나왔다. 유튜브 영상에선 듣지 못했던 할머니의 젊은 시절, 못생겼다는 소리를 곧잘 들어서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나는 미운 오리 새끼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너무 열심히 산 30대와 매일이 새날이라 설렌다는 빨강머리 앤 같은 할머니. 곧 일흔인 지금,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서 참 좋다는 할머니.엄마에게도 영상을 보내줬다. 그랬더니 엄마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박진영의 인터뷰 영상을 보내온다. 박진영 아저씨는 내가 하기 싫은 걸 꾸준히 계속 하는 것, 그렇게 한다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데도 그런데도 해야 하는 것, 그 끝의 자유의 순간을 위해서 버틴다고 했다. 70대의 할머니와, 50대의 아저씨가 말한다. 목표에는 끝이 없는 거라고, 재미 있고 하고 싶은 걸 하기까지 하기 싫은 걸 다져 놔야 하는 거라고. 그 끝을 장담할 수 없으니 즐겁게 하라고. 60대의 엄마는 말한다. 요즘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거 아니고, 즐길 수 없으면 피하는 거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니고, 되는 걸 하는 거라고.

남들 이야기를 차곡차곡 들은 나는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걸러 듣고, 맘에 골라 담아 놓았다.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도록, 과거에 미련 갖지 않도록 내가 지니고 싶은 생각들을 꿰어 흩어지지 않게 한 편으로 글을 지어 놓는다. 나중에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도, 글을 쓰고 말을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내 글을 읽어 주고 말을 해달라고 졸라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지금의 나는 너무 보잘것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 글이 다양하지 않고, 깊이도 논리도 없고, 내 이야기는 필요성도 호소력도 없기에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사람 자체에 대해 매력이 덜하다고 느끼기에 나라는 사람 말고, 생각을 매력적으로 바꾸고 싶다. 생각과 분위기와 스타일이 비루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스스로 고생길을 찾아 헤매고 들어가는 이유. 지금 이순간 환금이 불가능할뿐더러 오래도록 지난한 경험들에 자꾸 투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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