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은 그릇들에 카메라를 들이미는 나를 보고 남편이 묻는다. '이것도 블로그에 올릴거야?' 남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장면들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다는 구구절절한 설명대신 '응!'이라는 즉답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신한다. 남편이 보기에 아무 의미가 없던 장면들은 사실 내게는 '나 잘 살고 있구나.'를 뜻하던 장면들이었다. 내 머리 속에서 휘리릭 지나가는 이야기 거리들을 상대방에게 주저리 주저리 전달하는 것이 참으로 연관성이 없게 들리고 그걸 맥락이 통하게 엮어내기까지 많은 수고가 들기에 성미 급한 나는 그걸 못 참고 단발의 '응'이라는 대답을 한 거였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정돈된 글을 읽으며 남편과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른 시점 어느 순간의 내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수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도 사진을 찍고 시간과 공을 들여 기록을 남긴다.
싹싹 먹은 장면 속에는 예비 올케가 고심하며 골랐을 귀한 선물인 견과류를 아끼며 맛있게 먹는 시누이 부부가 있었고, 찬거리가 하나 없는 단순한 볶음밥을 감탄하며 먹었다는 증거로 빈그릇이 있었다. 빈 볶음밥 그릇을 앞에 놓고 나는 엄마에게 전수받은 별 것 아닌 볶음밥 비법을 이야기하고, 엄마와 함께했고 또 함께하는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린다. 엄마와 30년을 함께 살면서 알게 모르게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들이 많다. 엄마에게 듣고 배운대로 매매 잘 볶으면 무엇이든지 다 맛이 있었고, 거기에 내 방식을 더하여 살짝은 눌어붙게 한 뒤 버터향까지 입히면 볶음밥 맛이 정말 좋아진다. 엄마는 이런저런 내 살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뿌듯하다는 눈길로 '나는 너 나이 때 너만큼 못 살았는데, 너는 참 살림을 잘하는 구나.'라며 칭찬과 감탄을 해주며 나를 긍정해줬다. 나름 살림을 잘한다고 판단되는 어른이 그런 말을 해주니 '다 엄마에게 배운 덕분이에요-.'라는 존경을 줄 수 있었던 며칠 전의 대화가 빈 그릇 뒤에 연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연상은 딸과 며느리를 겪어보고 나서 시누이가 되면서 드는 생각들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면 남편 하나만 믿고 홀로 달랑 조인(join)하게 된 여자에게 시댁의 기존하는 끈끈한 관계를 덜 부담스럽게 느끼게 만들까. 서로 함께, 때로는 서로로 인한, 서로에 대한 희노애락을 느끼며 수십년의 역사를 쌓은 혈맥을 혼맥이 극복하기란 참 어려운 일 같다. 엄마와 나는 어떻게 하면 예비 며느리이자 올케가 우리를 덜 어려워할까 고민을 하고 연습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힘을 합치기에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엄마는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이고 나는 흩어지는 이야기들을 입으로 하기 보다는 손으로 엮어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서로 이야기를 소통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노력이 필요한 관계. 엄마는 나만 보면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또는 어떻게 살고 있냐고 자꾸 물어본다. '너 또 어제 친구한테 얌체같이 굴었지?'와 같은. 잘못된 대화의 물꼬에 딸로서 기분이 상해 이야기의 시작부터 성질을 내거나 모멸감의 미소와 침묵을 건넨 적도 있는 서른살의 나는 이제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조금을 달라져 '엄마가 그런 질문을 하면 내 기분이 상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라고 감정과 의견을 밝히고 입을 닫을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나이를 권력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을 찍어 누르려는 사람이 아니라서 '어떻게 하면 기분이 안 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데?'라고 말을 건넬 수 있는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그리고 곧 새식구가 들어온다는, 본인이 연습을 꼭 해야 하는 이유까지 덧붙이면서 합리적으로 나를 설득했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회복하고 멘탈의 굳은 살을 만들었을까. 이 정도의 시니컬함에는 전혀 영향 받지 않는 중년 여성이 되기까지, 나는 딸로서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던 걸까. 상처를 준 사람으로서의 책임을 하기 위해 엄마에게 나는 적절한 질문의 예시를 던진다.
- 엄마가 그렇게 나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면 안그래도 말하기 싫어하는 딸이 더 입을 닫지. 같은 내용이라도 상대방이 기분 좋게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긍정적인 면에 포인트를 맞추어서 물어봐야지. - '어제 친구랑 목욕탕에 간 건 좋았니?' 같이 말하라는 거지?
그 대답에 나와는 다른 역사를 가진 엄마를 떠올렸다. 나는 스마트 키오스크를 20대에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엄마는 50대에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갓난쟁이를 막 벗어나 아장아장 걷고 종알거릴 때 손부네 집에 놀러왔던 나의 증조 할머니는 세탁기가 옆에 있는데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손빨래를 했고, 20대 후반의 엄마는 그런 시할머니에게 세탁기를 안쓰시고 고생하셨다고 대화를 시작했었다. 그 때 엄마 옆에 서서 바라봤던 증조 할머니의 표정을 요즘 나는 스마트 키오스크 앞의 노인들에게서 본다. 스마트 기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적으니 직관적으로 정말 와닿지 않아 어쩔 줄 몰라하는 막막해하는 모습. 이미 작은 글씨 앞에서 스스로 작아지는 노안이 시작된 엄마가 다른 노인들처럼 멍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는 차근차근 여러번 알려주고 또 엄마 스스로 해보게끔 옆에서 지켜봤다. 안해봐서 두려운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서 말해주고 또 경험해보게 했다. 안해봐서 겁이 나는 거라고 해보면 쉽다고, 내가 아기일 때 엄마가 그랬듯이 옆에서 코치해주고 기다려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스마트 폰을 알려주고, 스마트 뱅킹을 알려주고, 같이 많이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해보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어린 성인 여자를 대하는 방법까지 알려줘야 하는 것이다.
- 푸하하. 엄마, 소개팅 안해봤어? - 엄마 그런 거 몰라. 안해봤어! - 안 친해서 어색한 사람이랑 대화를 그렇게 시작하면, 대답이 '예'와 '아니오' 2가지 밖에 없잖아. 그렇게 시작하면 엄마가 친해지고 싶어도 이야기가 금방 끊기지. - 그러면 뭐라고 물어봐야돼?
내가 학교에서 또 사회 생활을 하면서 글로, 몸으로 배운 것들을 엄마는 몰랐다. 다행히 엄마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어설픈 당신 때문에 상처받으면서도 애정 어린 인내심으로 기다려주고 기회를 줄 수 있는 딸이 있었다.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릴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대화의 연습 상대가 되어줄 수 있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몇십년이 묵어 지난 날이 된 머릿 속 장면들과 대화들이 순식간에 번뜩이며 지나가는 생각들의 생각들로 줄줄이 남아 침묵으로 혹은 단발성 대답으로 대답하던 내가 있었다. 다행히 나는 그 순식간을 풀어 쓸 수 있는 여유가 있고 더욱이 그걸 읽어줄 용의가 충분하며 나와 잘 지내고 싶어하는 남편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내가 아직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장면이 맘에 쏙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