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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Mar 23. 2024

프로듀서에서 학생으로

나의 장편 소설 부활 프로젝트

그즈음 나의 호칭은 최피디(PD)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픽사(Pixar)나 드림웍스(Dreamworks) 못지않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7년을 앞만 보고 달렸다. 7년 동안 이런저런 영상 제작 실적을 쌓았고, 그 덕에 국내 모 대형 투자 배급사와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투자를 논의 중이었다. 


시내에서 그 투자 배급사의 극장 체인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설레었고 머지않아 내가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극장에 걸리는 황홀한 미래를 상상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큰 일이었고, 투자 배급사는 얼마 동안의 심사 기간을 거친 후, 투자가 불가하다는 건조한 통지를 보내왔다. 


제작 투자를 제안하고, 심사를 거치고, 거절을 당하는 일은 새로울 것도 없는 패턴이었지만 그즈음의 나는 이미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엷어지고 있었다. 7년 전 나의 호기로운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애써 누르고 눌렀던 의구심과 좌절감이 대형 배급사와의 투자 계약 실패를 계기로 마침내 분출되고 말았다. 


다시 예전처럼 굽실대며 대형 프로덕션의 외주를 받아 제작비로 받은 예산을 조금이라도 법인 통장에 남기기 위해 모든 직원들이 영혼을 갈아 넣어야만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탈함에 빠져 멍하게 몇 개월을 보내다가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텐츠에 대한 수요도 약하고, 돈도 돌지 않는 국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미련한 짓이고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해외에서 직업을 구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고, 그럴 능력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던 차가운 현실과 마주했다. 그래서 차선으로 선택한 것이 해외 대학원 진학이었다. 마침 대학 졸업 후 프로덕션 현장만 뛰어다니느라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고 공부에 대한 갈증도 느끼던 터였다. 국내 대학원도 생각해 봤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 해외에서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렇게 서른네 살이었던 그해, 나는 다시 학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인생 중간에 항로를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상상조차 못 했다. 7년을 걸어왔던 길에서 이탈해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경력을 쌓기까지 석사 과정 2년 정도의 외도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렇게 깃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원 석사 과정 진학을 결정했지만 그 이후 1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겨우 제대로 된 돈벌이를 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그때는 정말 몰랐다. 


물론 그때 대학원으로 진학했기 때문에 몇 년 뒤 민음사 계열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소설을 출간하는 뜻밖의 사건이 생겼다. 2011년에 소설을 탈고하고 2016년에 출간한 뒤 벌써 8년의 세월이 흘렀다. 한 권의 종이 책을 출간하는 일이 예전처럼 어렵고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 책을 출간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책 출간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장편 소설을 준비하면서 처음 책을 냈던 과정을 한번 찬찬히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보고 싶어 졌다. 


무사히 새 장편 소설을 출간할 수 있을지, 심지어 이 브런치 북의 연재를 끝낼 수 있을지 조차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래 머무는 것들은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빠져나온다는 것. 그런 인생의 법칙을 믿고 일단 시작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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