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편 소설 부활 프로젝트
내가 입학한 대학원은 미국 MIT의 미디어 랩을 모방했는데,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연구를 한다는 목표 아래 입학생들의 전공과 국적이 다양했다. 미국, 인도, 유럽, 남미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였지만 지리적인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일본인 학생을 제외하고는 중국인과 한국인 유학생 수가 가장 많았다.
내가 속한 입학 기수는 유달리 한국인 입학생의 평균 연령이 높았다. 나보다 더 고연령자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입학해 보니 나와 동갑인 동료가 2명 더 있었고 아래로 한 두 살 적은 친구들도 여럿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동기들은 한국에서 모두 직장 경력이 있었고 우리들은 각박한 조직 생활을 떠나 먼 외국 땅에서 오랜만에 자유와 게으름을 만끽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돌이켜 보면 20살 이후 대학교에 입학했던 해를 제외하고 그렇게 마음 편하게 무작정 놀았던 시기가 없었다.
물론 마냥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인 유학생이라는 좁은 커뮤니티가 형성되자 그 안에서 여러 가지 황당무계한 사건이 발생했다. 파벌이 생겨나고 질투와 모함이 있고, 유치한 삼각관계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들에는 낭만이 있었다. 그곳이 회사가 아니라 학교였기 때문에 모두들 쓸데없이 치열하고 진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목표가 있고 꿈이 있어 늦은 나이에 일본으로 유학을 왔고 마음 한 구석에 저마다의 열정과 야망이 있었다. 하지만 유학생활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학교는 팀프로젝트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외국인이 팀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기 쉽지 않았다.
일본어를 제법 한다고 해도, 팀의 중요한 안건에 대해 일본인 학생을 토론으로 설득하기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주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기보다는 대부분 정해진 의견을 따르거나 서포트 역할을 맡아야 했다. 유학생이라 실수를 해도, 실력이 없어도 별로 문제 삼지 않았지만 반대로 유학생이라 큰 일을 맡기지도 않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싫어 외국인들로만 팀을 구성하면 거긴 거기대로 문제가 생겼다. 그런 팀의 팀프로젝트는 대부분 산으로 갔다.
나는 놀기 위해 일본에 온 것처럼 첫 학기를 방탕하게 보냈다. 지난 7년간의 노력과 고생, 아버지의 병간호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일부러 생산적인 일은 피했던 것 같다. 그렇게 대책 없이 1학기를 보내고, 여름 강가에서 불꽃 축제까지 즐기고 나니 성큼 가을이 다가왔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대학원 4학기 중 이제 겨우 1학기가 지났을 뿐이었지만 모두 입학했을 때처럼 마냥 행복해 보이진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실이 갑갑해서 온 유학이었지만, 비싼 돈과 아까운 시간을 들여 유학을 왔으니 뭐라도 이루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경각심이 생겼고, 그러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학원은 글로벌하고 자유스러웠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생활하지 않으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1학기 내내 놀 때는 몰랐는데 2학기 들어 분위기를 보니 어느새 조금씩 친한 사람들끼리 그룹이 만들어졌고 각 그룹은 특정 교수와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대체로 외국인은 그런 핵심 그룹에서 소외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왕 일본에 왔으니 2학기부터는 일본인들로만 구성된 프로젝트 팀에 들어가 외국 유학생이 아닌 동등한 학생으로 경쟁해 보자고 결심했다.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팀이었다. 노약자를 위해 IT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팀이었다.
프로젝트 자체도 흥미로웠고 여러 가지 경험을 쌓았지만, 지금 생각했을 때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의 진짜 인간관계에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봤다는 사실이다. 프로젝트 멤버가 6명이었고 나를 제외한 5명이 모두 일본인이었는데 그전까지 내가 단순히 관광으로 오거나 출장 왔을 때와는 매우 다른 인간관계가 펼쳐졌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경험했지만 일본인들 속으로 과감하게 뛰어 들어간 것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판단이었다.
그렇게 1학년 2학기를 나름 보람 있게 보낸 뒤,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그 팀에 그대로 머물기로 했다. 꽤 힘든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석사 논문은 프로젝트와 연결되어 있는데 프로젝트가 어려우면 석사 논문도 쓰기 어렵고, 프로젝트가 쉬우면 석사 논문도 쓰기 쉬운 구조였다. 석사 논문 통과 유무와는 별개로 순수하게 논문을 작성하는 관점에서의 이야기다.
거창하게도 나는 노약자 중에서도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을 위한 앱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석사 논문을 쓰려면 앱을 개발하고 병원에서 실증까지 마쳐야 하는 꽤 난도가 높은 주제였다. 애초에 유학을 결정했을 때 다소 충동적이었던 나의 판단에 대한 죄책감인지, 나는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시작한 2학년 1학기, 한국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어머니가 레커차에 치여 골반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고 응급실에 입원했고 큰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다음 날 아침 급하게 짐을 챙겨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고, 예약이 취소되는 비행기표를 기다렸다가 다행히 티켓을 구해 한국으로 떠났다.
2024년 4월 예스24에 월간개발자로 소개 되었습니다. 도서를 추천하는 코너가 있어 나의 장편 소설도 하나 담았습니다. 개발자가 아니라 소설가로 인터뷰할 날이 오길 희망합니다!
https://www.yes24.com/campaign/01_book/2023/BrandAuthor.aspx?EventNo=245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