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공부좀 쉬려고 합니다.

by 걱정 많은 아저씨

강의를 시작한 지 10년이 지났다. 학생들과 함께했던 여러 경험이 있지만 자주 접하면서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고 불편한 학생들의 고백이 있다면 ‘저…. 공부 좀 쉬려고 합니다’라는 말이다. 이미 두 발로 선 어른이 이런 고백을 할 때는 과연 안타깝고 쉬어야만 하는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민과 방황 속에서 멈추고자 하는 학생들을 보면 조금 더 힘내주기를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들과 같은 고민과 질문을 나도 던져왔고, 그 끝나지 않는 방황을 다양한 배움의 기회를 통해 헤쳐가고 있다 믿기 때문이다.

‘전기·전자, 화학공학, 조리외식경영, 조리, 식품영양학’ 대학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내가 했던 전공들이다. 지금은 ‘호텔외식경영학과’의 교수를 하고 있으니 냉정하게 보면 절반의 성공인가 싶다. 저 변천사를 돌아보면 내가 얼마나 좌충우돌했었는지 이젠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내 아버님은 “하나를 진득하게 하지 못하니, 어렵다”라는 걱정을 하셨었다. 세상 내 편인 부모님의 말씀은 무거운 법. 매일이 고민이었고 자신이 없었지만, 그 곤경의 해법은 대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준석아, 네가 해 온 것들을 어떻게 하나로 엮어내느냐에 달린 것이니, 지금부터 잘 만들어 가면 돼” 배움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교수님의 기대가 다시 힘을 내 볼 수 있게 했다. 뒤죽박죽 전공들의 기초지식과 공부 요령은 업무에 쓰이고 있으니 무용하지 않고, 아버님의 걱정을 넘어, 지금 작게나마 쓰임 받고 있는데, 그 씨앗은 스승님의 가르침에서 비롯됐다.


또 대학은 얻기만 하는 곳이 아니다. ‘내가 접한 최고의 프리젠테이션’은 2016년 한 대학 강의실에서 있었는데, 신입생 중에 말을 하지 않는 ‘ㄱ’이란 학생이 있었다. 출석 체크 때도 손만 올릴 뿐, 도통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 학업 참여에는 성실했기에 교수자, 동기 모두 한편으로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발표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말이 없는 ‘ㄱ’은 자료를 준비해 왔고, 발표를 위해 앞으로 나갔다.


‘어떻게 했을까?’


‘ㄱ’은 슬라이드의 제목을 손으로 조용히 가리켰고 반 친구들은 ‘ㄱ’의 제목을 큰소리로 읽어주기 시작했다. ‘ㄱ’의 발표가 끝났을 때 ‘ㄱ’의 친구들은 모든 문장을 소리내어 읽고 공부했으니 발표자의 내용이 잘 전달됐음은 물론이리라.


그 누구의 지도도 없었는데 ‘말 없는 발표자’는 준비를 했고 동기들은 발표자의 그 노력에 화답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할 때 내 세계는 확장되고, 진짜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런 삶의 자세를 우리 16학번 학생들을 통해서 배웠다. 그들은 서로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가르침을 줬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 어떤 것에 대한 배움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예로, 코로나 전과 후의 외식시장을 들여다보면, 그 성격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 다름이 매우 크다.


내 나이 44살은 찼다기엔 설익었고, 새싹이라기엔 부끄럽다. 뚜렷한 정답이 희미해져 가는 시대에 나는 계속 배워야 하는데, 새로운 걸 묻고 배우기가 이미 쉽지도, 편치도 않다. 이때 소중한 것이 내 동문, 동료, 제자들이다.


나와 같이 배운 한때의 친구들이 변화의 최전선에 있고, 나는 늘 동료들과 함께 있다, 그리고 나에게 배운 학생들이 업계의 이곳저곳에서 피어나고 있다. 내가 고민한 것들을 헤아려 이미 대책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와 동료들, 그 계획의 구현을 직접 진행하는 제자들에게 묻고 듣자면, 어찌나 명쾌하고, 뿌듯한지 모른다. 나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며, 같은 환경에서 배우고 생활했던 그들이, 이젠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고,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인생의 동료들이다.


이제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20대에게 이런 인생의 배움과 동료들을 얻을 ‘가장 이상적인 장’은 ‘대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 멈추지 말자. 서로 배우고 함께 익히자.


http://www.jejuilbo.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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