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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비즈니스석인데

이럴 줄은 몰랐어요

by 조수필

방송일이라는 게 밖에서 보면 화려해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늘 두통에 시달렸다. 그럴 때면 모든 걸 덮어두고 잠시 떠나 있는 게 상책이었다. 그럴 수 없다면 노트북을 품에 안고서라도 달아나야 했다. 여행만이 내 안에 가득 찬 스트레스를 덜어준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꽤 효염이 있었다.





그런데 이날만은 얘기가 달랐다. 설레기는커녕, 인생 최대의 스트레스를 맛보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생애 첫 비즈니스석이었는데 말이다. 남편과 나는 결혼하면서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그 중에 하나가 비즈니스석을 타고 미국 여행을 해보는 것이었다. 그 꿈을 위해 기존에 들고 있던 카드는 정리하고 항공 마일리지가 많이 쌓이는 신용카드를 새로 발급받았다. 우리가 결혼식을 올렸던 2017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4년 동안 제법 많이도 모였다.


쓰흡.. 아무래도 꿈이 너무 컸던걸까. 목표했던 만큼의 마일리지가 쌓였을 때쯤, 코로나19 시대가 열렸고 예상보다 빨리 해외 주재원 발령이 떨어졌다. 비즈니스석에서 호사를 누리며 미국으로 날아가겠다던 우리 부부의 야심 찬 꿈은 말 그대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모로 가도
비즈니스석이면
절반은 성공


그렇다고 지난 4년의 수고가 영 쓸모없는 일은 아니었다. 두 돌도 안된 어린 아들과 그 아들을 부둥켜안고 좁은 기내에서 안간힘으로 버틸 아내가 마음에 쓰였는지, 남편이 나서서 좋은 자리로 바꿔주었다. 그간 모아둔 마일리지로 좌석을 승급받자고 제안한 것이다. 만약 남편이 먼저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나처럼 우둔한 성격은 개의치 않고 회사에서 정해준 좌석에 앉았겠지만 세심한 남편 덕에 난생처음 비즈니스석,이라는 걸 경험하게 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비즈니스석에서 우아하게 영화를 보다가 새끼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와인도 한잔 마시고 그러다가 옆 좌석에 앉은 이성과 사랑에 빠지곤 하던데... 그건 어디까지나 짜여진 각본일 뿐이다.

내가 겪은 비즈니스석의 현실은 그처럼 우아하지도 로맨틱하지도 못했다. 그날의 우리를 본 누군가가 그 모습을 묘사한다면 대략 이럴 것이다. "위아래로 헐렁한 베이지색 면 트레이닝복을 입은 애엄마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있었고요. 아이는 덩치가 제법 커 보였는데 아기띠 밖으로 쑥 내민 얼굴을 보니 사내아이 같더라고요."



영화에서 본
비즈니스석의 낭만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캥거루처럼 아이를 품은 나는 ‘애엄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데 손에는 무슨 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수화물로 이미 두 개의 짐가방을 부쳤음에도 기내용 캐리어 하나와 보스턴가방까지 쥐고 있었다. 기내 입구까지 간신히 끌고 온 짐들을 승무원 발치에 내려두고 주섬주섬 표를 꺼냈더니 한결 더 나긋해진 승무원이 우리 모자를 꿈의 좌석으로 안내했다.

'세상에... 이런 좌석이 있긴 있구나' 하며 속으로 흠칫 놀랐지만 그런 기분에 젖어있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코로나19로 프라하행 직항 노선이 중단되는 바람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항을 거치는 경유 편을 택해야 했다.

중간에 대기하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거의 스무 시간에 이르는 아득한 여정이다. 그 대장정을 아이가 잘 견뎌줄지 혹여나 비행 중에 탈이 나진 않을지 수만 가지의 걱정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기특하고 감사하게도 아이는 비행 내내 엥~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얌전히 버텨주었다. 그날은 너무 경황이 없어서 무사히 비행이 끝나기만 기도하느라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부분을 두고두고 감사하게 된다. 비록 엄마는 비즈니스석 승객에게만 제공하는 특별 서비스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지만 내 아이가 두 다리 뻗고 누울 공간이 있었던 것만으로 그 값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니까.





불 꺼진 기내에서 곤히 잠든 아이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그날. 흔들리는 기체의 떨림을 감지하며 뜬 눈으로 아이를 지켰던 그날. 그날 이후로 나도 아이도 어딘가 모르게 조금씩 성장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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