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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드라마보다 극적인

작별의 카오스

by 조수필

그날은 무슨 정신으로 아침을 맞았는지 모르겠다. 어수선한 마음이 가라앉질 않아서 간밤에 잠을 설쳤더니 몸이 땅으로 꺼질 것처럼 무거웠다. 그래도 반년 동안 떨어져 있던 남편에게 가는 날이니 기쁜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찾았다. 여러모로 위중한 시기에 어린 손자와 함께 먼 길 떠나보내는 친정 부모의 마음을 왜 모를까. 하지만 누구를 살피고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해외 컨테이너 이사부터 부동산 정리, 병원 진료, 은행 업무, 입국 서류까지. 다시 생각해도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일들을 속전속결로 해치우느라 몸도 마음도 방전 상태였다.



우여곡절 끝에 맞이한
출국의 날, 그런데…



모든 과정을 무사히 해낸 나 자신을 다독이며 마지막 관문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사고는 그때 벌어졌다. 아이를 어른들께 잠시 맡기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멀리서 목 놓아 우는 어린 아이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으에엥~~ 으에에에에엥~~~


‘설마.. 아니겠지..’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손을 씻다 말고 뭐에 홀린 듯이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걸을수록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머리가 쭈뼛 섰다. 아니나 다를까, 할아버지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려다 오른팔을 다친 모양이었다.

아.. 이를 어째.. 출국까지 단 두 시간을 남겨두고 이런 일이 생기다니 믿을 수 없이 절망스러웠다. 아니지, 위급할수록 정신을 차려야지. 감정에 휘둘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119죠? 여기 인천공항인데요

아이가 팔을 다쳤어요”


한시가 급하다고 곧 하늘길에 올라야 하는데 아이가 팔을 다친 것 같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사태를 알렸다. 탑승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구급차는 올 기미가 없고 대원들은 계속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색이 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20분이나 흘려보냈다. 그 시간이 내겐 마치 20년처럼 느껴졌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대원들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끝내 구급차는 오지 않았고 아이의 울음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단이 필요했다. 결국 구급차를 포기하고 택시 승강장으로 눈을 돌렸다.


‘제발..! 누구라도 도와주세요’





엄마인 내가 쫓아가야 마땅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하는 수없이 친정 부모님에게 아이를 맡겼다. 어른들이 아이를 데리고 인근 병원에 다녀오는 사이, 나는 남편이 이메일로 보내 준 출국 서류들을 뽑아 가까스로 수속을 밟았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필요치 않을 서류들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인쇄 버튼을 눌렀는지도 모르겠다. 손은 마우스 위에 있는데 정신은 온통 '아이가 크게 다친 건 아닐까’, ‘출국을 또 연기해야 하나?' 온갖 근심이 먹구름처럼 다가왔다.


그 무렵 체코의 코로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그로 인해, 이미 한번 출국을 연기했던 터라 더는 미룰 수도 없었다. 걱정의 꼬리를 물고 괴로워하고 있던 그 찰나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한결 편안해진 아빠의 음성이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간 아빠가 "치료 잘 받고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 마" 하시는데 수화기 너머로 꺼이꺼이 우는 엄마의 통곡 소리가 들려왔다.



모든 불행이
어깨동무하고
달려든다



이런 일까지 보태지 않더라도 충분히 울음바다가 될 상황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응급상황까지 발생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왜 항상 안 좋은 일들은 어깨동무를 하며 달려드는 걸까.


그래도,,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다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이의 오른쪽 팔꿈치가 빠졌던 건데 먼저 와 대기해 있던 다른 환자 분들의 배려로 곧장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늘이 도왔다. 감사하기가 이를 데 없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후우..후.. 그제야 깊은 안도의 숨이 흘러나왔다.


내가 이렇게 진이 빠지는데 아이는 오죽 놀랐을까. 병원을 오가며 얼마나 혼비백산하며 울었는지, 지친 기색으로 할머니 품에 매달려있는 아이를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해외에 나가서 또 다치면 어쩌나’, ‘한번 빠진 팔은 습관적으로 빠진다던데..’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걱정에 앞으로 닥칠 체코 생활이 불현듯 두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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