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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유 엄마 Jul 17. 2020

세이펜은 엄마의 목소리를 대신해 줄 수 없다.

문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아이에게 바톤을 넘겨주기

4차 산업과 코로나 19라는 시대적인 변수가 만나 세상은 점점 더 온라인화 되어가고 있고, 불행히도 코로나 19가 장기화되면서 본격적인 언컨텍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온라인 수업, 화상세미나, 원격치료, 온라인 콘텐츠..'


아직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고민이 되는 것 중의 하나는 디지털 기기 등의 다양한 매체를 아이에게 언제 처음으로 접하게 하느냐에 대한 노출 시기를 결정해주는 것일 것이다.

부모 또한 디지털기기의 사용이 증가하면서, 아이들에게 디지털기기가 노출되는 연령도 더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린 연령에 디지털기기들에 노출되는 이러한 현상이 아이의 언어발달을 촉진시켜 줄 수 있을까?


[디지털기기(TV, 스마트폰, 태블릿 PC, 세이펜 등) 사용 증가의 원인]           
   김주아, 2013; 한국정보화진흥원, 2017

1. 디지털기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ICT(Information and Xommunications Technologies) 환경
2. 영아를 둔 부모가 자녀에게 방해받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디지털 기기를
가장 많이 사용
3. 아이를 달래기 위한 양육의 방법으로 활용


디지털기기와 언어발달의 연관성


부모가 영아에게 유아 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이 책이나 학습지보다 더 즐겁게 학습한다고 여기고 있으며,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의 사용이 아이가 언어를 학습하는데 매력적인 교육 수단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권연정, 2014), 이러한 부모의 인식이 영아의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증가시키고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는 2세 이하의 영아에게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언어학습보다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을 통한 언어 학습이 언어발달에 있어 더 긍정적이었고, 언어발달에 있어 아이에게 가장 유용한 도구는 바로 '인간의 언어'를 통한 배움이라고 하였다(Wolf, 2009).


Gopnik, Meltzoff, & Kuhl(2008)의 연구에서 아이들은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언어를 습득하게 되는데, 디지털 기기의 시각적 자극들은 언어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는 어떤 매개체를 통해 아이에게 언어를 학습시킬 때 언어와 인지발달에 필요한 특정 신경연결회로를 자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김유은, 김정화(2020)의 연구에서 영유아기에 디지털기기를 사용하지 않거나 18개월 이후에 처음 사용하는 경우, 그 이전 시기에 디지털기기를 접하는 영아들보다 표현 언어와 수용 언어를 포함한 모든 언어발달의 수준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영아가 디지털기기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언어발달은 더 낮게 나타났다. 따라서 자녀에게 디지털기기를 최대한 늦게 접하도록 하고, 사용 시간을 줄이는 것이 언어발달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어린 영아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다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것보다 반드시 부모가 함께 사용하여 부모가 아이의 디지털 기기 사용을 항상 관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 아이가 돌 즈음이 되었을 때, 동네 엄마들과 잠시 동안 공동육아를 참여했던 경험이 있었다. 처음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대화 주제는 언제나 항상 '육아 템'이었다. 어떤 엄마는 둘째를 키우고 있어 다른 엄마들보다도 소히 육아 빨 아이템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그 엄마가 사용하고 있거나 추천하는 물건들을 너도나도 어떨 때는 함께 주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시기의 육아 템들은 사용 시기가 짧고 아이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를 비롯하여 교육계에 종사하고 있는 엄마들이 많았던지라 자연스럽게 아이의 교육에도 관심이 높았는데, 그중에서도 어떤 책을 들이느냐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의 집에 놀러 갔는데, 아이는 색연필보다 크기가 좀 더 큰 무언가로 책을 열심히 콕콕 찍어대고 있었다. 그때마다 색연필 모양의 물건에서 또랑또랑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깜짝 놀란 내가 그 아이의 엄마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묻자 이름이 '세이팬'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반드시 꼭 가지고 있어야 할 필수 육아 템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집에만 해도 세이펜은 두세 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더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이펜이 왜 좋은 거냐고 물어보는 나의 질문에 친구의 엄마가 말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해서 똑같은 책을 몇 번이고 읽어달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 필수 아이템 세이펜이 아주 유용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한참 말을 배울 때 책에 몰입하는 시기가 오는데, 그 시기에 나타나는 행동을 말하는 것 같았다.


돌 전후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집집마다 구비되어 있는 세이펜 앞에도 어느덧 '국민'자가 떡 하니 붙어있다.

워낙에 아날로그적인 성향이 강한 나는 세이펜이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이들의 언어발달을 촉진시켜줄 만큼 신통방통한 요술을 부리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세이펜을 통해 나오는 말소리가 잠시 동안은 아이에게 신기하게 느껴지고 흥미를 유도해줄 수는 있다. 하지만 아이가 세이펜의 말소리를 듣는다고해서 그것과 교감을 나눈다거나 상호작용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는 못한다. 이러한 활동은 언어와 인지발달에 필요한 신경 연결 회로를 자극시켜주지도 못한다. 이말은 세이펜으로 한 단어를 열번 듣는것보다 엄마의 생생한 목소리로 한번 들려준 단어가 아이의 뇌를 자극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세이펜을 하나의 장난감으로써 제공해주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세이펜이라는 도구가 아이의 언어를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촉진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빠르면 백일 전부터 늦게는 돌 전후로 아이들은 '책'을 접하게 된다. 아직 글자를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경험하기 시작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일상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책을 통해 경험하며 세상과 만나게 된다.


여전히 우리 집엔 세이펜도 없고 TV도 없다. TV는 아이가 태어나기 일 년 전부터 없앴다. 다행히 남편과 나는 둘 다 아날로그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TV가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으로 찾아오는 고요한 일상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도 자연스럽게 부모의 삶에 스며들어 TV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건너편 아이가 유튜브에 열중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려도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 잠이 들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엄마의 목소리를 빌어 읽으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현재까지 아이는 아날로그 부모를 만나 유유자적한 아날로그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아이가 학교에 가고 부모보다 또래 친구가 더 소중하게 자리 잡을 시기가 오게 되면, 곧 우리 아이도 아날로그적 삶보다는 인공지능이 세상을 움직이고, 슈퍼 인텔리젼스가 존재하는 삶에 적응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도 바람이 있다면, 우리 아이만큼은 느리더라도 자신의 목표치에 천천히 가닿더라도 좀 더 아날로그적인 삶, 좀더 자연친화적인 삶을 누리다가 서서히 편안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우리 집에는 세이펜도, TV도 없을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할 아이를 걱정하지 않는 이유는 미리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의 습득력이 너무나도 빠르기 때문이다. 지금도 노트북에서 그림판을 열어 자기가 원하는 색깔, 도형들을 찾아내어 색칠을 하며 즐거워하고, 키보드의 자판 기능을 나보다 더 잘 아는 것을 보면, 이미 아이는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노트북을 사용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고있는 것 같다.


아직은 부모가 아이의 경험에 관여할 수 있을 때 가능한한 천천히 그 세계를 열어주고 싶다.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충분한 추억들을 부모와 함께 만들고, 문명을 감당해낼 충분한 힘이 생겼을 때 그때 그 문을 열어주어도 늦지 않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 대해서는 떼를 쓰지도,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Reference-

권연정 (2014). 만 2세 반 영아의 스마트기기 이용에 대한 어머니들의 인식: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중심으로. 육아지원 연구, 9(1), 213-242.
김유은 & 김정화(2020). 영아의 디지털기기 사용과 디지털기기에 대한 부모의 인식이 영아의 언어발달에 미치는 영향, 한국 보육지원 학회지, 16(3), pp39-58.

Gopnik, A., Meltzoff, A. N., & Kuhl, P. K. (2008). The Scientist in the Crib, 아기들은 어떻게 배울 까? 아기들이 말과 사물과 사람을 배우는 방법(곽금주 옮김). 서울: 동녘사이언스(원판 1999)
Wolf, M. (2009). Proust and the squid : The story and science of the reading brain, 책 읽는 뇌 : 독서와 뇌, 난독증과 창조성의 은밀한 동거에 관한 이야기(이희수 옮김). 경기도: 살림 (원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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