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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샌달 Nov 02. 2024

한인타운의 이모저모

조선족 거리

내가 살던 지역은 조선족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우리 학교 학생 중에도 조선족이 몇 명 있었지만, 모두 한국어는커녕 '조선말'을 할 줄 몰랐다.

간단한 한국어는 알아듣지만 말하지 못하는.

귀는 뜨였는데 중국어 말하기는 하지 못하는 나와 같았다.

부모님들이 자기 아이가 조선족인 게 드러나면 차별받을까 봐 자녀를 한족 학교에 보내고 조선말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한인타운의 또 다른 이름은 조선족 거리.

한국 사람과 조선족이 운영하는 점포가 대부분이라 언어가 통한다는 장점이 있다.

물건 값이 비싼 편이라서 가끔 외식하고 싶을 때, 국제전화 카드와 떡볶이를 위한 떡국떡과 어묵을 때를 제외하고 거의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북한 식당도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일하는 언니들이 다 예뻤다.

예쁜 얼굴에 슬픈 눈빛을 한 종업원들이 가끔 가게 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곤 했다.


한국인이 하는 PC방에 가서 가족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싸이월드의 방명록과 비밀글을 확인한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네이트온에 접속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다.


PC방 옆에는 가수 설운도가 세웠다는 노래방도 있었다.

설운도 아저씨의 사진이 커다랗게 붙어있고, 입구로 향하는 계단에서부터 트로트 느낌이 물씬 나는 반짝거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객식구 언니가 오기 전까지 교회 고등부 모임에 참석했다.

대부분 부모님과 함께(어쩔 수 없이) 중국에 오게 된 거라 방황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고등부 교사로 봉사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또래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님이었다.

모임이 끝난 후 한식당으로 이동해 함께 식사하며 따스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셨다.

오랜만에 먹는 '남이 해준 한식'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메뉴까지도 맛있게 느껴졌다.


당시 한인타운에서 맛집은 총 세 곳. (내 기준)


# 한국식 중화요리점

교회 언니 어머니가 하시는 식당으로 짜장면이 특히 맛있었다.

언니의 과한 활발함과 어머니의 시크함이 담긴 둘의 티키타카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고.

언니는 참 밝고 활달했다. 요즘으로 따지면 MBTI의 EEEEE 느낌이랄까?

나랑 정반대였지만, 나에게 특별히 뭘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냥 언니가 하는 '과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으면 된다.

언니 이름이 예쁘면서 특이해서였을까? 여전히 언니의 얼굴과 이름, 텐션이 떠오른다.


# 지코바 숯불 치킨

중국에서 처음 먹어본 지코바 숯불 치킨.

단체 회식 장소로 인기 만점이었다.

치킨도 물론 맛있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시키는 메뉴는 짬뽕.

면은 시금치로 반죽해서 초록색이었고, 꽤 매웠는데도 계속 먹게 되는 맛이었다.

괜히 속이 느글거리는 날 더 생각나는 매운맛.


회사를 다닐 때, 우연히 그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

맛집 3곳 중 유일하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간판 모양과 주인은 바뀌었지만, 상호와 메뉴는 그대로.

설레는 마음으로 시킨 짬뽕은 '추억은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 경양식집

치즈돈가스 맛집.

레토르트 크림수프와 케요네즈(케첩+마요네즈)를 뿌린 양배추샐러드

옛날 경양식집 인테리어에 알맞은 오브제들까지.

어쩌다 한 번씩 고등부 선생님이 사주셔서 먹던 치즈돈가스가 참 맛있었다.

돌솥비빔밥, 된장찌개 같은 한식은 10위안이지만, 치즈돈가스는 25위안.

일반 한식을 두 번 먹을 수 있는 가격이라 선뜻 사 먹기엔 부담이 됐다.


베이징으로 이동하기 몇 개월 전,

갑자기 가게가 문을 닫고, 그 장소는 롯데리아로 바뀌었다.

맛도 맛이지만, 가게 위치와 구조도 참 좋았는데...


그리고 베이징에 갔더니 돌솥비빔밥이 25~30위안.

'이럴 줄 알았으면 치즈돈가스 몇 번 더 먹을걸.'


메인 거리에서 조금만 떨어지면 여러 갈래의 골목을 만나게 된다.

그중 조선족 고등학교가 위치한 골목과 개고기 골목을 소개해 볼까?


조선족 고등학교가 위치한 골목은 그 입구부터 절대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열 명 이상이 함께 있을 때 가봤다.

거기 다니는 학생들이 무섭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팩트였다.


툭하면 패싸움에, 칼을 지니고 다니는 애들이 많았다.

패싸움하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자주 볼 수 있었고,

칼은 심심하면 지나가는 사람 찌르면서 노는 용도라고 했다.

(자기 입으로 착한 사람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하는 남학생에게 직접 들었다. 단순 허세로 말한 건 줄 알았는데...)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들까지 웬만하면 가지 않는 무서운 거리.

나도 절대 가지 않았다.


개고기 골목은 말 그대로 거리 양쪽이 개고기를 파는 가게로 이루어진 거리다.

그곳에 갈 일은 없었기 때문에 학생 때는 가본 적이 없다.


출장 중에 택시를 탔는데, 우리가 한국인인 걸 본 택시 기사가 굳이 그 골목으로 들어섰다.

차 한 대만 지나갈 정도의 그곳으로 들어가 아주 천천히 운전했다.


정육점처럼 쇠갈고리에 달린 개고기 덩어리 바로 아래에는

좁은 케이지 안에 2~3마리의 살아있는 개가 마치 죽은 것처럼 납작 엎드리고 있다.

(거리 양 옆이 쭉 이런 모습)

그 광경을 강제로 볼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천천히.

(차라리 눈을 감고 있으려 했지만, 재밌다고 내 눈을 강제로 뜨게 만드는 상사...)


그 길 끝에는 개고기 요릿집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족의 개고기 요리는 고기의 잡내를 그대로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그 골목은 언제나 '냄새'로 가득하다.


그때는 그랬다.

한인타운에 가야만 한식 재료를 살 수 있었고,

국제전화 카드를 사야만 한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국제전화 카드는 연결되는 순간부터 급속도로 금액이 깎여서 돈을 허공에 뿌리는 기분이 든다.)


당시의 한인타운은 한국인과 조선족으로 가득했다.

특히 한국주(韓國周)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퍼로 굳게 잠근 내 외투 주머니 속 휴대전화도 도둑맞았던 한국주...)

일부 도로는 아직 포장 공사 중이었고, 꽉 차 있지만 뭔가 비어 있는 듯했다.


현재는 또 어떤 모습이려나?

(이제 지하철도 생기고, 예전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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