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철현 Feb 14. 2021

시간을 나누는 것

너를 보는 시점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간에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의 길이는 언제나 똑같다.

특별한 날이라고 더하고 빼는 것 없이 늘 정확히 24시간이 주어지며, 어김없이 낮과 밤은 찾아온다.

어떨 때 나는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불평을 늘어놓고 또 어느 날은 하루가 너무 길었다며 힘들어 하기도 한다.

그와 반대로 주어진 시간의 매 순간순간을 감사할 때도 있다.

웬만하면 나는 후자에 가깝게 사려고 노력한다. 물론 언제나 돌아오는 월요일은 두렵고, 상대적으로 일요일 오후부터는 우울감이 높아지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고맙게 쓰자고 다짐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다른 이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데 인색한 편이다. 날 위해 쓰기도 빠듯한 시간을 감히 누굴 위해 쓴단 말인가.

심하게 허기진 상태에서 눈앞에 있는 음식을 나누는 게 어렵듯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 지극히도 개인적인 시간의 활용과 관련해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친구는 "그동안 잘지냈지?" 하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넨 뒤 말을 이었다.

"여전히 소영이만 바라보며 사냐?"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럼, 가뜩이나 시국이 안 좋아서 어디 돌아다니지 못하니까 집에서 늘 둘이 붙어있지."

"학교 다닐 때도 그러더니.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친구는 내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살짝 비꼬는 말투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에도 나의 반응은 덤덤했다.

"너도 네 와이프한테 잘해 인마. 맨날 야구에 미쳐서 주말에까지 싸돌아다니지 말고."

"또 시작이네! 됐다, 됐어."

예나 지금이나 아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내 일상이 친구는 진절머리가 나는지 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는 평소에는 궁금해 하지도 않던 남의 소식 따위의 시답잖은 말마디를 주고받은 후, 나중에 한번 보자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 친구처럼 주말에 사회인 야구라든지 다른 일정을 잡지 않는다. 오롯이 아내와의 시간에 쏟아붇는다. 그게 너무 좋아서. 나를 위한 시간이니까.

나를 위해 쓰기도 빠듯한 시간을 굳이 남들과 나누는 것 보다야 나를 위해 아내와 함께하는 게 좋다.

사회성이 결여됐다느니, 그러다 둘 다 질리고 지치면 어떡할 거냐는 진심 어린 충고들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주 5일, 하루 9시간 이상을 사회 생활에 바치고, 분기마다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생에 완벽한 정답은 없듯이 지금 내 생각이 백퍼센트 옳다고 확신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내 사람을 챙기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나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 너무도 즐겁다.

이전 12화 우리의 두 번째 제주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