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처음 끌렸던 건 순전히 외모 때문이었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건 둘째 치더라도, 유난히 앳되고 귀여운 얼굴과 아담한 체구에 간간히 섞여있는 강릉 사투리가 정말로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내에게 푹 빠졌다. 얼굴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라지만, 아내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자면 밥을 안 먹어도 절로 배가 불렀다. 마치 헛헛했던 속을 채워주는 포만감을 같은 걸 느꼈다. 그러나 단지 그것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결혼에 대한 결심이 서도록 아내는 많은 확신을 주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아내와 만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앳된 모습과 달리 아내는 어른스러운 면이 상당히 많았다. 주변에 서른이 넘어서도 아직까지 철딱서니 없는 친구들이 더러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여전히 고등학생 때 하던 행동을 일삼는 경우 말이다.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스물다섯이었고 아내는 갓 스무 살이었지만 나이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여자가 아니었고 항상 나를 배려해줬다. 이제는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고 내가 살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현명한 대처로 나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아내다.
어려서부터 남의 집에 갈 때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던 엄마의 말을 새겨듣고 나는 어딜 방문하든 항상 작은 거라도 챙겨가는 버릇이 있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여자친구였을 때나 지금이나 성의 표시를 잘한다. 그런 것이 단지 번거롭게 뭘 사들고 가는 의미에 국한되는 건 아니다. 그만큼 베풀 줄도 알고 주변 사람들을 챙길 줄도 안다는 뜻이다. 결혼 선물로 받은 커피머신으로 커피를 내려 먹으면서 카페에서 먹는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맛이 난다고 서로 좋아했었는데, 그러고 나서 얼마 뒤 양가의 부모님께 커피머신을 선물한 아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만고의 진리처럼 전해 내려 오는 말. 나도 일정 부분에서는 동의한다. 그 일정 부분을 제외하고 부정하는 이유는 가까운 예가 있어서다. 나와 아내는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우리는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각자의 희생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내가 여자친구일 때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리는 게 걱정이 되어 적당한 시간에 들어가길 바랐고, 나 역시 친구들과 노는 게 재밌어도 나를 위해 일찍 들어가 준 아내를 생각해서 늦지 않게 집에 들어갔다. 또한 장거리 연애를 하던 시기에 전화 통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과였던 우리는 서로가 바라는 대로 통화 중에 말투나 말하는 습관 등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다 보면 오해가 생길 수 있기에 서로 신경 쓴 것이다. 우리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서로를 위해 변하려고 노력했다.
이밖에도 아내는 나를 위해 많은 걸 바꾸고 고치려고 노력해줬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사람이 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개선될 여지가 분명히 있다. 나와 아내가 증명한 바다.
대학교 CC에서 롱디가 되고 롱디를 거쳐 결혼에 이르기까지 아내는 나에게 수많은 확신을 주었다. 그렇게 어느 날인가 그전에는 떠오른 적 없던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결혼하고 싶은 여자다.'
물론 결혼이 사랑의 종착지는 아니고 여전히 우리의 앞길은 창창하지만, 결혼하고 싶은 여자였던 아내는 이제는 미래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로를 믿으며 각자가 끊임없이 확신을 주는 사이로 거듭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