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는 결혼하기 전부터 함께 지내온 반려견이 있다. 녀석은, 무려 아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같이 먹고 자고 했던 식구이다. 나와 아내가 처갓댁에 가면 언제나 문 앞에서부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반겨주는 귀여운 강아지. 이름도 앙증맞게 쿠키다.
내가 쿠키를 처음 본 건 2013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아내와 막 CC가 되었고, 그때 아내의 둘째 동생 쿠키를 처음 만났다. 그전까지 나에게 있어서 "개"는 애완견 또는 집을 지키는 충견 정도로 인식되어 왔었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이라서, 마당에 목줄을 늘어놓고 개를 길렀다. 오가면서 밥 주고 똥도 치워주며 가끔 쓰다듬어주는 게 다였다. 물론 그간에 정이 들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마음 아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주인으로서의 마음이었다. 가족이라는 유대감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아내와 쿠키의 관계를 보면서 "개"에 대한 내 인식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사람들과 산책 나온 개들을 보면 애완견이나 충견이 아닌 반려견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반려견의 사전적 의미는 '한 가족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개'라는데, 이처럼 아내와 쿠키는 한 가족이다. 가끔 간식 주는 걸로 장난스럽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볼 때면 현실 남매가 따로 없다.
쿠키의 견종은 중국에서 유래한 시츄다. 여느 시츄들과 마찬가지로 며칠만 지나도 온몸에 털이 복슬복슬하게 자라는 쿠키는 미용을 하기 직전에 보면 털 뭉치가 돌아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런 털 뭉치가 멀리서 나를 보고 반갑다고 달려오는 게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반려견들이 사람에게 무한 애정을 보내는 것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느덧 12살이 된 쿠키는 이제 노견이라는 소리를 듣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새끼 강아지다. 아내와 함께 쿠키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귀여워하며 다가온다. 그러고는 방금 전 다른 사람들이 했던 말들을 되풀이한다.
"아구구, 귀여워라. 몇 살이에요? 새끼 같은데." "우리 집 강아지가 세 살인데. 얘는 아직 몇 살 안 먹어서 애기 같이 귀엽네."
그럴 때마다 "사실 우리 개는 12살입니다. 굉장히 동안이죠?" 하고 일일이 대꾸할 필요는 없기에, 아내는 그저 말없이 웃어넘긴다.
웬만한 말귀는 다 알아듣는 쿠키를 보면 어떨 때는 곧 말도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쿠키는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 아주 나중에는 반려견이 말을 깨칠 정도로 진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개들이 인간과의 정서적 교감과 관련해서는 놀라울 만큼 진화했다고 본다. 쿠키의 예만 봐도 그렇다. 지금의 개들은 사람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위로를 건네거나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게 가능하다.
아내와 쿠키를 보면서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사랑의 의미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나를 깨닫는다. 사랑의 뜻을 정의하거나, 함부로 누군가의 감정을 재단하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말이다. "쿠키는 어쩜 이렇게 한결같을까?"라는 내 질문에 강아지들은 사람과 달리 절대 배신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던 아내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