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 왔다. 온갖 곡식이 익는 풍요로운 계절. 쌀쌀해진 밤공기에 코끝은 시리지만 올려다본 밤하늘은 무수한 별로 반짝인다.
며칠 전, 가을밤에 나와 아내는 맛있는 가을 밤을 먹었다. 아, 물론 세상을 뒤덮을 만큼 커다랗고 어두운 밤 말고 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알밤 얘기다.
아는 지인에게 밤 한 보따리를 얻어왔다. 구황작물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먼저 집에 온 나는 아내의 퇴근 시간에 맞춰 밤을 한 솥 삶았다. 이번 밤은 보통 밤보다 적어도 두 배는 커 보여서 더욱 먹음직스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밤맛이 꿀맛이었다. 냄비에 담겨 먹음직스럽게 익은 밤을 보자 아내는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싱크대 앞에 서서 밤을 까먹었다. 나도 옆에서 거들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먹을 새도 없이 그렇게 어른 둘이 서서 밤을 먹었다. 나란히 서서 밤을 반으로 쪼개 그 속을 긁어먹으니 마치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가을밤에 먹는 가을 밤이 이토록 맛있을 줄이야.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깊어지는 맛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