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사람일까
상담 선생님께서 일정을 맞추지 못해 상담을 못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선생님은 너무나 미안해하셨고 남는 게 시간인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선생님은 죄송한 마음을 담아 내가 이전 상담센터에서 비용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검사를 무료로 흔쾌히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속으로 외쳐 본다.
'오예!'
나 같은 경우는 htp 검사와 sct 검사는 상담 주기에 한 번씩 받았고, tci와 mmpi검사는 모바일로 내가 검사를 한 다음 해석지를 받아서 상담 때 내용을 듣게 되었다.
mmpi 검사(mmpi-2 검사)와 sct 검사(문장 완성 검사)는 상담에서 흔히 쓰이는 대표적 검사 중 하나로 두 검사의 비용은 5만 원 이내로 저렴한 걸로 알고 있다.
(예전에 갔던 심리 상담 센터는 뇌파 검사나 여러 종합 병원 검사 같은 걸 권해서 검사 종합 세트를 30만 원 정도 불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검사 종류에 따라 비용이 다르니 사전에 꼭 물어보고 하도록 하자.)
상담이나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되면 할 수 있는 흔한 검사들이니 글을 써 보려 한다.
내가 받았던 검사들에 대한 느낌과 해석은 이러했다.
TCI(Temperament and Character Inventory) 검사는 기질 검사라고 보면 되는데 선천적으로 가진 기질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검사이고, HTP 검사는 집(House), 나무(Tree), 사람(Person)을 그려보는 검사로 문장으로 내면을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아이부터 내면을 알고 싶은 어른까지 그림을 통해 내면을 풀어보는 검사라고 보면 되겠다.
TCI 검사를 통해 알게 된 점은 내 기질은 위험하고 도전적인 것을 엄청 좋아하는, 자유로운 성향인데 반해 결정을 내리는 부분에서는 의존성이 매우 강하여 다른 사람의 눈치를 살피거나 타인의 결정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믿지 않겠지만 인내력도 강한 편이었다.
나는 내 나름대로 결정을 내리며 사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이리저리 질질 끌려다니는 형국이었다는 게 통탄할 일이었다. 그리고 인내력이 좋아서 그 힘든 걸 꾹꾹 참아내며 바보같이 하고 있었다는 게 후회되기도 했다.
기질은 보통 선천적인 것을 말하고 성격은 후천적으로 형성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면 참을성 많은 천둥벌거숭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HTP 검사는 A4 3장과 4B 연필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간단한 검사였는데 사람과 나무, 집을 차례대로 그리고 이에 따른 해석을 듣거나 내가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검사가 이루어졌다. 우울한 와중에도 심리 검사라 아이가 된 것처럼 재미있게 했었다. 그 그림에서도 나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이상한 표정의 나를 그리고 있었고, 이상주의나 완벽주의가 가득한 집을 그리면서 나의 높은 목표의식을 드러냈었다. 손이나 발을 숨기지 않고 자세히 그린다는 건 해결에 대한 의지를 보이는 거라고 하셔서 뭔가 안심이 되었던 검사였다.
MMPI검사는 400-500개 질문으로 이루어진 아주 긴~ 심리 테스트 같은 건데 정확한 이름은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객관화된 지표를 볼 수 있는 검사였고 건강염려증, 우울증, 히스테리, 반사회성, 남성성과 여성성, 편집증, 강박증, 정신분열증, 경조증, 내향성 등 분야가 꽤 다양하여 다방면에서 나의 정신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설문 문항이 400개에서 500개 정도 되는 긴 검사여서 검사를 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니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지표가 꽤 객관적 수치로 나오는 검사라 많은 해석이 필요하진 않지만 선생님께서 인상 깊게 볼 만한 지점들을 설명해 주셔서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검사였다.
검사를 하던 시점은 우울증이 많이 나아지고 있던 시점이라 심각한 수치가 나오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높은 것이 강박증 성향이나 예민함에 대한 성향이어서 내가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검사였다.
SCT검사는 문장완성검사로 '오은영의 결혼지옥'을 본 사람들이라면 짐작할 수 있는 검사인데 문장의 일부를 비워놓고 피검사자가 채워 놓은 문장을 통해 심리를 해석하는 검사라고 볼 수 있다.
문장의 개수는 20 문장 이내였고 나는 그것을 차례대로 적어나갔는데 선생님께서 해석을 해주신다기보다는 그 문장을 적을 때의 나의 생각과 의도를 물어보셔서 나 스스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가족에 대한 내용과 나의 상태에 관한 문장들, 그리고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는 몇 문장들을 채워 나가는 형식이었다. '우리 엄마는 _____다. / 지금 나의 상태는 ______다. / 여자라면 ________ 다. ' 같은 문장들로 구성되었던 기억이 난다. SCT 검사를 할 당시에 우울증이 꽤 심했던 상태라 좌절이나 절망적인 마음을 글에다 많이 드러냈었고, 한 편으로는 이것을 회복하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글에서 같이 드러나서 애처로웠던 검사로 기억을 하고 있다.
이 검사들로 인해서 나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어서 내가 뛰어나게 나아졌다든가 변화를 했다든가 하는 그런 엄청난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몰랐던 나에 대해서, 혹은 외면하고 싶었던 나에 대해서 조금은 알게 된 경험이 생겼다고 할까.
검사를 하는 상황이나 시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검사이기도 하기에 검사 시기나 검사 상황의 영향을 받기도 할 것 같다.
심리테스트처럼 가볍게 여기는 남편의 반응처럼 나 또한 세상 심각하게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포토샵의 RGB처럼 콕콕 성격을 집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만, 사람의 성격은 빛의 산란으로 부서지는 노을빛의 어딘가로 이해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위의 네 가지 검사를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아마 가장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아닐까.
그 많은 검사를 하고도 나는 아직도 나를 탐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