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유 Oct 21. 2023

[단편] 삼도천사가 - 6화

은수에게 닿고 싶었다. 무수히 많은 말을 했고, 끝없이 둘만 있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가슴에서 가장 가까운 말, 그런 행동을 쉽게 행해지지 않았다. 지환에게 은수는 첫사랑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환은 편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평범한 회사원이 된다고 가정한다면 서울 변두리 대학에 다녀서는 부모님이 원하는 유명 대기업에 입사하는 일은 요원하게 여겨졌다. SKY가 아니라도 공채 합격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소수다. 그 행운의 소수가 내가 되길 바라는 것보다는 확률이 높은 집단에 속하고 싶었다.  

    

편입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교제를 시작한다면, 너무 무책임한 일이다. 나 스스로에게도, 은수에게도. 머리가 복잡했다.  

    

지환은 어찌할 바 모를 자신의 마음과 은수를 뒤로 하고 군대를 갔다. 자진입대였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어느 한쪽에 대한 마음은 복무기간 동안 접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군에 있는 동안 지환은 은수의 편지를 받으며 기뻤다. 은수는 자신의 학교 생활, 동아리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은수는 다정한 후배였다. 이렇게 군대 간 선배를 위해 자주 편지를 보내주다니. 


질투가 일었다. 동아리 내에서는 자신 외에는 군대를 간 가까운 선배가 없지만, 과는 조금 달랐다. 지환은 은수의 과 선배들을 알지 못한다.      


‘은수는 이렇게 다정한 투로 과 선배들에게도, 동기들에게도 편지를 보낼까.’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지환은 은수의 편지에 답을 할 수 없었다. 또 이게 얼마나 힘이 되는 줄 알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할까봐. 지환은 일부러 은수를, 은수의 편지를 무시했다. 


'내가 완전해지면 그때. 그때....' 


그리고 마침내 제대했을 때 지환은 결심했다.      


부모님의 아들로 사는 한, 편입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도 그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편입에 성공하면 은수에게도 조금 더 떳떳하게 고백할 수 있으리라. 딱 6개월. 6개월이면 된다.     

 

그런데 은수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지환은 매일매일 은수를 지켜봤다.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Y대 경영학부에 편입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굴지의 대기업 해외영업 파트에 입사했지만, 전혀. 지환의 유일한 낙은 은수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은수는 행복해보였다. 


남자친구와 놀이동산을 가는 모습도, 다투고 힘들어 하는 모습도, 패기 넘치는 기자가 된 모습도 모두 곁에서 봤다. 은수는 모르지만 지환은 늘 뒤에 있었다.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다고, 그 빈틈을 이제는 놓칠 수 없기에 빠짐없이 은수의 20대를 지켜봤다. 그렇게 8년이 지나갔다.      


30대의 은수도 빛났다.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다. 은수의 아이는 유난히 그녀를 닮아 사랑스러웠다. 보드라운 갈색 머리카락. 통통한 복숭아빛 두 볼, 동그란 눈망물, 유난히 숱이 많고 긴 속눈썹. 그 남자를 닮은 구석은 보이지 않았다. 저 아이는 은수의 아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은수의 딸이니까.      


‘한번만, 한번만, 저 아이를 안아보고 싶다.’      


부모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으냐고, 결혼정보회사 등록도 권유했다. 지환은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당신들이 원하는 삶을 착하게 살았잖아. 나도 그게 날 위한 거라 생각했어. 지금도 그렇다고 믿고 싶어. 근데 결혼은 아니야. 제발 결혼까지 강요하지마. 결혼은 제발.’      


은수만을 바랐다. 아니, 은수의 아이도 바랐다. 


그렇게 바라며 지환은 이제 행복해졌다. 아이가 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낙이 되었다. 정기적으로 연차를 내는 날,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날엔 어김없이 곧장 나주로 왔다. 


아이가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걸 지켜보면 피곤함이 사르르 녹았다. 포니테일로 높이 묶은 머리카락은 뛰어다닐 때마다 팔랑팔랑 거렸고, 나풀거리는 치마에 받쳐 신은 두꺼운 하얀 면 스타킹, 짧고 통통한 종아리가 귀여웠다. 어린이집은 턱이 낮아 아이가 교실에서 노는 모습도, 통유리로 된 1층 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도 모두 보였다. 아이는 편식이 심한 것조차 은수를 닮았는지 고루 먹지 않았다. 


닮은 점, 닮지 않은 점 아이를 곰곰히 지켜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은수가 왔다.      


‘은수야, 은수야!’      


지환은 수백 번 수천 번 은수를 불렀다. 


소리 내어 부를 수 없어 그 이름은 지환의 가슴에 더 깊이깊이 파고들었다. 은수의 가정에 자신이 들어갈 균열이 보이지 않아 지환의 가슴을 메마를 수밖에 없었다. 


'간절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은수도 나를 좋아했잖아.' 


(계속) 

작가의 이전글 [단편] 삼도천사가 - 7화 (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