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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다행히 숨 쉬는 건 안 귀찮다

by 천유

- 춥냐?

- 응.

- 그럼 창문을 닫아

- 귀찮아.

- 그럼 옷을 제대로 입던지. 지퍼 올려

- 그것도 귀찮아.


한겨울 차를 타고 오들오들 떠는 나를 보며 옆자리 친구가 몇 번을 여러 가지를 권하다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숨 쉬는 건 안 귀찮냐고.

다행히 숨 쉬는 건 안 귀찮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수다를 떠는 것도 귀찮지 않다. 나는 원래 궤변에 능하다. 타고난 천성이자, 하늘이 나를 세상에 떨어트릴 때 이 험한 세상 그래도 잘 살아보라고 준 잔재주다.

그래서 말인데 에필로그에 와서야 고백한다.

이 모든 게 궤변임을. 알고 있지만 멈추지 않고 떠들었음을.


하지만 때로는 정론(正論)보다 궤변이 더 절실한 법이다. 너무나 많은 ‘옳은 말’들이 우리를 지치게 할 때, 살짝 비틀어 세상을 보는 궤변이야말로 굳어버린 생각에 균열을 내는 유일한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


궤변임을 안다면 당신이 나의 진심 또한 알게 되리라 믿는다.


조금 더, 조금 더 채찍질, 담금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게으름을 주장하는 나의 궤변이 당신에게, 우리 사회에, 지구환경에 웃음과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피식 웃고 "하긴 그것도 그렇네" 하고 생각을 한 번쯤 고개를 끄덕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내가 말한 궤변 중 하나두 개는 일상에서 떠올라 실천으로 이어지면 참 좋겠다. 그뿐이다. 나조차 완벽하지 않으면서, 주장 또한 완벽하지 않으면서 타인에게 잘난 척 고상한 척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행동가로 비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이 지구를 사면서 전기를 끌어다 글이란 걸 쓰는 대가로 미약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무해한 방향으로 생각의 전환을 끌어내고 싶었을 뿐이다. 웃음을 무기로 말이다. 세상에 웃음만큼 쎈 무기는 없다고 믿는다. 진지한 설교는 반감을 사지만 유쾌한 농담은 마음의 빗장을 스르르 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글로 진실로 주장하고 싶은 건 세 가지밖에 없다.

하나, 사람이 좋다.


서로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고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누구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부지런함이 때로는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과도한 경쟁, 쉼 없는 비교.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상처 입힌다.


하지만 게으름은 본질적으로 평화롭다. 타인을 이기려는 에너지조차 아까워하는 마음이 어쩌면 가장 성숙한 형태의 사랑일지 모른다.


둘, 지구가 가엽다.


우리는 철저히 을이다. 지구가 완벽한 갑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에게 ‘갑’인 양 폭력을 행사하고 지구는 한없이 파괴되고 있다.


인류의 부지런함이 쌓아 올린 공장과 소비문화는 지구의 살을 파먹는 거대한 굴착기나 다름없다. 우리의 성실함이 곧 지구 파괴의 동력이었던 셈이다. 지구는 제 살을 파먹으며 돌아올 재앙을 지켜보고 있다.


셋, 게을러도 좋다.


우리 모두 조금 게을러도 좋다. 게을러도 좋을 이유는 무한하다.


게으름은 대개 무해하다. 오히려 유익할 때가 더 많다. 게으름은 불필요한 소비를 막고 과도한 생산에 제동을 건다.


게으르면 타인에게 화낼 이유도 조금 줄어들고 화를 내는 순간도 귀찮아서 놓치기 일쑤다. 감정적 소모가 줄어든다. 화를 내며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로 지구온실화가 가속화됨을 주장하면 또 궤변이 되겠지?


그러니까 나도 이제 그만 이야기할 테니 우리 제발 천천히, 좀 게으르게 살자.

어쩌면 우리 선조들은 우리가 게으르게 살라고, 부지런히 터를 닦아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땀 흘려 일군 것은 '너희도 우리처럼 고생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너희는 우리보다 더 편안하고 풍요롭게 누리라'는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좋은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느긋하게 살자. 조금 덜 쓰고, 조금 더 많이 누리며 살자. 소유의 부피보다 경험의 깊이를 채우며 살자. 그래도 좋을 세상이다.


너무나 복 받은 사람들. 사랑만 나누며 살아도 부족한 어여쁜 사람들아.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오. 이 세상 참 좋구나.


신께서도 만들고 보기에도 그렇게 좋았다고 한다. 이 세상이. 우리 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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