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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1. 2023

[단편] 삼도천사가 - 3화

흘깃, 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건 엊그저께 소동이 벌어진 뒤, 걸음을 멈추고 선 남자다. 기억이 난다. 이 남자. 여기 다리에 선 그날. 그날도 오늘과 같은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있었던 걸까.   

        

“네, 말씀하세요.”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당신을.”      

     

감정선을 지운 내게도 당혹감을 느낄 수 있구나, 그날 처음 알았다. 걸음이 빠르고 느려도 언젠가 저 끝에 다다를 뿐인 이들이 내게 관심을 기울인 적도, 더욱이 말을 건 적은 거의 없다. 호칭을 묻는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글쎄요.”     


“제가 당신을 당황스럽게 했나요?”   

  

“글쎄요.”     


“그럼, 차사님들은 당신을 뭐라 부르시나요?”          


뭐라고 불린 적이 없다. 뭐라고 불려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 처음 깨달았다. 내가 무용의 존재라는 것을. 내가 누구를 기다리는 지 나도 모른다. 나도 죽은 자고 다리에 발을 디뎠으므로 생의 기억이 지워진 탓이다.      


기다리는 얼굴을 지운 채 마음만 남아 막연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하염없이. 그런데 왜 나는 이런 일을 허락받은 걸까. 어쩌면 이런 혜택을, 혹은 벌을 받은 걸까.          


“뭐라고 불린 적 없어요.”     


“그럼, 저도 그냥 차사님이라고 부를게요. 우리 얘기 듣는 사람도 없으니 당신이 차사가 아니라고 해도 별 탈은 없을 것 같네요.”     


“네, 그렇네요.”         

  

감정선을 지운다는 건, 마음을 비우고 다른 어떤 것도 들어오지 않도록 꽉꽉 잠궈 놓는 것과 같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눈길도 머물지 않고, 관심도 자라지 않는다. 나는 그에게 궁금한 게 없었다. 


그래서 그날 그제서야 알아챘다.      


그는 소동으로 걸음을 멈춘 게 아니다. 다리에 들어선 그 날부터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다. 한걸음도 떼지 않았으니 한조각의 기억도 놓치지 않은 채로 그는 서서 나를 보고 있다. 그는 일부러 기억을 놓지 않고 있다.       

한숨을 폭 쉬고 나는 삼도천을 내려다 봤다. 옷에 주머니가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두 손을 깊게 찔러 넣고 흐르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섰다.   

        

‘이 사람이 있었구나. 내 옆에서, 나를 보고.’          


감정이 없는 내게 뭔가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이 머리에 들어온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사람이, 아니 망자가 또 다른 망자 옆에 서 있는 게 뭐 어때서. 그게 비록 저승의 다리 위일지라도 그렇게 서 있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싶긴 했지만 가슴이 답답했다.     


‘이 사람은 누굴까. 혹시 그동안 내가 기다린 사람일까? 난, 이 사람을 기다린 걸까?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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