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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유 Oct 21. 2023

[단편] 삼도천사가 - 4화

여기서 기억이 잊힌 채 누군가를 기다리면서도 그 혹은 그녀가 나타나면 나는 단번에 알아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또 막연하게 내 부모나 내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곳에 서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감정이 없는 내 마음을 흔드는 건 오로지 삼도교 아래 아이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이의 입장에서 내 부모를 기다리고 있거나, 부모의 마음으로 내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르지. 어떤 형태이건 사랑일 것이다. 내가 기다리는 건. 


그런데 이 남자의 존재를 깨달고부터는 이 다리위에 선 이래, 생이 끝난 이후 단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답답함을 느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당연한, 질서정연한 질문 대신 나도 모르게 그에게 불쑥 이야기했다.         

  

"나는 분명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그런거 같아요. 맞죠?"   

        

그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존재는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조용히 웃었고, 그 순간 나는 이 남자와의 만남이 이승에서의 나의 일상 중 어떤 특별한 순간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알 방법은 없지만.           


“날, 알아보는 거예요? 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웃으며 이야기하는 남자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어쩌면 기뻐보이는 거 같기도.     

       

“네, 알아보는 건 아닙니다. 제 느낌이에요. 당신을 계속 기다렸다는. 저는 기억이 없어요.”     

 

“역시, 그렇군요. 그럴 거라 생각은 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당신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죠?”      


“글쎄요. 언제부터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2000년 봄이었다. 은수는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었고, 그러던 많은 날 중 하루였다.      


은수는 입학하자마자 탈춤 동아리에 가입했고 선배로부터 장구를 배우는 중이었다.      


덩기덕 쿵더러러러 덩기덕 쿵덕.     

 

"너 기생장구를 치는구나."      


조신하게 손을 놀리지 못하고 장구채가 붕붕 날도록 요란하게 치는 은수의 모습을 보고 선배는 '기생장구'라고 말했다.      


은수가 조금 더 무겁게 채를 넘기던 때 “최은수”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같은 과 동기 정윤이었다.     

 

“은수야, 우리 매점 가는데, 같이 갈래?”      


은수는 장구채를 놓고 정윤을 따라 나섰다. 정윤의 옆에는 키가 큰 남자가 서있었다.   

   

“아, 우리 방송국 선배.” 


“안녕하세요.”


“어, 안녕.”    

  

정윤은 교내 방송국 동아리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었다. 정윤과 은수는 재잘 거리며, 매점에서 바나나 우유, 초코 우유를 하나씩 나눠 먹었다. 계산은 콜라를 집어든 정윤의 선배가 했다.

      

며칠 뒤, 은수에게 문자가 왔다.      


“너, 아나운서 해보지 않을래? 우리 수습국원 추가모집하거든. 지난번에 선배가 너 목소리가 아나운서 같다고, 좋은 목소리라고 한번 물어보라고 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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