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밀키트의 필수 조건
걸쭉하고 뜨끈한 국물 한 숟갈에 온몸으로 느껴지는 든든함, 살다 보면 그런 특별한 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며, 나에게는 이 칼국수가 그런 음식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흔히 볼 수도 있는 평범한 음식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자극적인 화려함 대신 투박하면서도 소박함, 그리고 은은하면서도 깊은 맛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제품을 집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순간을 이 한 그릇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
40년간 이뤄놓은 입 안 가득 퍼지는 걸쭉한 국물의 질감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풍미를 최대한 유사하게 구현하기 위해 매일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소바를 개발하는 과정을 겪으며 칼국수는 내년에나 나오겠다 싶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바 면을 만드는 과정에서 칼국수면은 좀 수월하게 완성되었다. 같은 면 공장에서 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의 특징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그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면이라는 가장 중요한 첫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자, 비로소 칼국수 전체의 구성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그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역시 개발과정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이 칼국수의 기본적인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쫄깃한 면, 깊고 시원한 육수, 그리고 풍미를 더하는 다양한 고명이다. 일반적으로 계란, 대파, 김가루, 고춧가루, 들깨가루 등이 사용되지만, 냉동 밀키트라는 제품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신선도 유지가 어렵고, 단가 대비 맛의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계란과 대파는 제외했다. 대신 다른 고명들의 맛과 조리법을 더욱 세심하게 연구하고 조합하여 맛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제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히기 위해 나는 주저 없이 전주로 직접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칼국수 면이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과 특징을 눈으로 꼼꼼히 확인하고, 정리했다. 확실히 오래도록 사랑 받은 맛은 단순히 정해진 레시피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으며,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통해 비로소 깊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고명들을 가장 잘 잘할 수 있는 공장을 찾아 상품화를 제안했다.
소바 육수를 한번 완성하고 나니 육수 제조는 다소 수월하게 느꼈던 것 같다. 이 역시 원료리스트 정도만 받아서(이번엔 배합비를 묻지도 않았다.) 소스공장에 전달 했고, 공장 연구소에서는 이화학 분석 결과치로 맛을 추청하고 원료배합을 설계해서 냉동 밀키트만의 진한 간장육수맛을 구현해 냈다. 사용하는 간장 종류가 달라서 미세한 맛을 조정하는데 시간이 조금 소요 되었지만 이 또한 해결!
고춧가루를 선택하는 과정 또한 신중함을 기했다. 대부분의 식품 업체에서는 원가 절감을 위해 값싼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한 길을 걸어온 경험과 전주라는 지역이 가진 음식에 대한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국내산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판단했다. 1인분씩 깔끔하게 소포장이 가능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품질의 고춧가루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줄 수 있는 국내 생산처를 끈질기게 찾아냈고, 마침내 3~4g 단위까지 정밀하게 용량을 맞출 수 있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부분은 바로 김가루였다. 일반적으로 김은 상온 유통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은 냉동 밀키트였다. 초기에 함께 협력했던 공장에서는 냉동 밀키트에 납품한 이력이 있다고 해서 진행했는데, 막상 식약처의 위생 허가 기준을 맞추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현행 식품 관련 법규를 준수하며 오랫동안 소비자들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제품 개발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었다. 따라서 나는 끊임 없이 냉동 유통이 가능한 김을 찾아 전국을 헤맸고, 마침내 냉동 유통이 가능한 (물론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정형화된) 김가루를 찾아내 제품에 적용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은 바로 포장 과정이었다. 칼국수 한 그릇을 구성하는 5g 이하의 작은 용량의 부속 재료 다섯 가지를 한 번에 깔끔하게 합포장할 수 있는 업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작은 재료 하나라도 누락될 경우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업체를 알아본 끝에, 합포장이 가능하면서도 철저한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갖춘 믿을 수 있는 업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과 고민 끝에, 드디어 칼국수 한 그릇의 완벽한 형태를 갖춘 제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되돌아보니, 나는 단순히 하나의 편리한 밀키트 제품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이 칼국수를 선택하는 한 사람의 식탁에 놓일 ‘신뢰’라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한 봉지의 간편한 밀키트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안에는 최상의 면을 만들기 위한 노력, 깊은 맛을 내는 육수, 고소한 김가루, 향긋한 들깨가루, 매콤한 고춧가루를 제공하는 여러 업체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이 모든 재료를 하나로 포장하는 과정,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무려 일곱 팀의 긴밀한 협업이 필요하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하며 하나의 제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마치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각자의 역할을 믿고 협력해야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제품으로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오롯이 담긴 이 칼국수 개발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그 ‘신뢰’에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