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불안을 마주하기.
“집에서는 괜찮은데, 밖에 나가면 숨이 잘 안 쉬어져. 힘들어… 집에 가자.”
“엄마, 자꾸 화장실 가고 싶어.”
어린이날 선물을 사러 간 쇼핑몰에서,
아이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집순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건 무언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숨이 막히는 기분. 그것도 반복적으로.
처음엔 공황장애? 불안장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분명 마음과 몸이 동시에 보내는 신호 같았다.
예민한 아이는 감각 자극에 민감하고, 감정의 이완을 유투브를 통해 하는 것 같지만
이 역시 회피였고, 아이를 더 자극한다는것.
불확실한 환경에서 ‘숨이 막힌다’는 감각 반응을 겪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일하기 때문에 하루 대부분을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한다.
그래서 함께 있는 시간만큼은 더 철저히 관리하려 들었다.
공부, 식사, 티비 시간… 하나하나 단단히 통제했다.
하지만 결과는 엉망이었다.
내가 없을 땐 유튜브를 제약없이 보고,
먹고 싶은 간식을 찾아 집안을 뒤적이고,
식사는 편식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통제가 아니라
‘불균형’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식사 중 숨쉬는게 힘들다며 앞으로 외출을 하지 않겠다는 아이에게
아빠는 "꾀병"이라고 단정 지었고,
아이의 눈가엔 이내 눈물이 맺혔다.
‘혹시 유튜브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그만 보자”고 말했더니,
아이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 진짜 왜 그게 유투브랑 연결되냐고… 그럴 일이 없다고!"
아이도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른다는 듯,
당황한 얼굴이었다.
정신없이 저녁상을 정리하고,
가까스로 진정된 아이에게 산책을 제안했다.
붕붕 뜬 마음에는 걷는 게 제일인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싫어.” (어김없는 선 거절)
“다녀오면서 아이스크림 먹자.”
“...... 알았어. 대신 잠깐만 다녀오자.”
5월답지 않게 스산한 저녁.
아이에게 조금 따뜻하게 챙겨 입히고 길을 나섰다.
우리 집 근처엔 숲길처럼 조용한 오솔길과
시냇물이 흐르는 내천길이 있다.
자동차 소리와 네온 간판을 피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아이와 나만의 최적 코스.
걷는 내내 아이는
“숨이 차”, “화장실 가고싶어”, “힘들어”
짧게 짧게 말했고,
얼굴도 잔뜩 찡그러져 있었다.
천천히 걷자, 숨 5번만 들이마시고 내쉬고 가자...
그런데 어느 순간,
시냇물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차 지나가는 소리,
풀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자
아이의 어깨가 살짝 내려앉았다.
그리고 편안해진 아이가 말문을 열었다.
“엄마, 나 사실 그때 토할 때부터 좀 이상한거같애.
토를 그만하게 해달라고 뭐든 하겠다고 했더니 토를 멈추게 하시고 이렇게 됬나봐...”
“근데 왜 말을 안했어. 말해야 알지…”
나는 멈춰 섰다.
아이를 바라봤다.
“그러네 엄마. 말하다보니 금방왔네.”
“우리처럼 민감한 사람들은 이런 숲길에서 산책하는게 도움된데.
매일 걷자. 대신 끝나면 젤리든 과자든 우리 서로 좋아하는 거 같이 먹자.”
"엄마는 먹지말까?"
"아잉... 엄마도 같이먹자아~"(한결 부드러워진 아이말투)
음식종류에 민감해진 요즘
아이스크림 한 개 다 먹기 부담되는
내 마음 역시 강박처럼 느껴져
못이기는척 아이와 맛있게 먹었다.
오늘따라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
아이는 산책루틴에 흥쾌히 약속을 했다. 본인도 숲 산책이 맘에 들었나보다.
오늘부터 우리 둘만의 루틴이 시작되었다.
도란도란 걷고,
재잘재잘 마음을 나누고,
작은 젤리 하나로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
숨이 막힌다는 아이는
사실 감정의 출구를 찾고 있었고,
그걸 모른 채 “잘해라”는 말만 반복하던 나는
정작 엄마의 자리를 놓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아이는 조금 더 편안한 얼굴로 잠들었다.
나도 그렇게,
내 마음 한 켠의 불안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오늘부터 매일, "함께" 걷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