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잘 쓰고 싶다. 시.
최근 나는 친구 두 명으로부터 유튜브 동업(?) 제의를 받고 있는 중이다. 나를 비롯 세명 모두 SNS도 하지 않는 은둔자들 이건만 친구 1,2는 유튜브 매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지만 남들 다 하고 있으니 취미 생활로라도 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미 포화 시장인 데다 나올 콘텐츠는 다 나온 것 같은데?라고 나는 반문했지만 크게 손해 볼 게 없으면 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럼 해보자며 그들을 부추기고(?) 있다.
창의력 제로에 기발한 아이디어 같은 건 먹고 죽을래도 없는 나를 알면서도 그들이 나를 PICK 한 이유는 동일하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열심히 잘할 것 같은 인간'
맞는 말이긴 하다. 싸이월드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는데 문 닫을 때까지 쓰고 있던 건 나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신선한 것, 새로운 것, 쌈빡한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은 정말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없다.
친구 2는 정확히 말하면 동업자보다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요구했는데 촬영보조(=동행)와 영상에 쓰이게 될 자막을 부탁했다.
세상 부정적인 나는 또 이렇게 답한다.
"근데 그거... 짧은 자막에 임팩트 있게 만들어야 하잖아? 그건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사람들이 하는.. 그러니까 구성작가 능력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건데. 너도 알겠지만 난 그런 건 잘......"
초등학교 때 일주일에 한 번 특활활동(이 용어가 맞던가?)이 있었는데 5, 6학년 때 나는 산문반이었다. 산문반이 있으니 당연히 운문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반은 한 번도 염원(!)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한데 동시를 못 썼기 때문이다. 적확한 단어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면서 비유와 은유를 통해 명료하면서 간결하게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대학교 시험 때도 늘려 쓰는 건 어떻게든 써보겠는데 몇 줄 내로 쓰시오. 제한을 두면 더 어려웠고 사람 안 변한다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쓸데없는 말이 많아서인지 핵심만 명확하게 쓰는 능력이 부족해서인지(응. 둘 다.) 의도와 다르게 가독성 떨어지게 글에 군더더기가 많다.(한숨)
왠지 이 글도 길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지만 클릭하신 김에 끝까지 읽어주십쇼.(굽신굽신)
시로 글짓기 상을 받은 건 내 기억으로 두 번이다.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기억을 하고 있다.
그 처음은 초등학교 때였다. 매년 봄에 있는 백일장이었는데 왜 동시를 썼냐면 제출 시간이 임박해 오는데 계속 아~무 생각이 안 났기 때문이다. 결국 시제 중에 있었던 '꽃'을 골라잡아 '진달래 꽃'이라는 내용으로 동시를 썼다.
'학교를 파하고 뒷동산에 올라가/그 옛날 엄마가 먹어보았다던 진달래 꽃을 따서 입에 넣었더니..'로 시작되는 글이었다. 이후 내용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꽃내음이 입안에 터지고 봄은 즐겁고 엄마도 생각난다 그런 거 아니었을까..ㅋㅋㅋㅋㅋ
그렇다. 엄마는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막 지어냈다. 그리고 뒷동산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학교를 나오면 바로 아파트 단지 입구였다. 너무나 평지. 사기꾼 기질이 있었구랴. 심지어 90년대인데 내용은 왜 이렇게 올드한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6.25 둥이인 줄 알겠다.
그런데 저렇게 쓴 글이 차상을 받았다. 나도 당시에 많이 놀랐었다. 왜에?? 지금 생각해보니까 저 올~드한 감성이 심사위원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나 싶다. 그것밖엔 이유가 없는데ㅋㅋㅋ
두 번째는 중2 때였다. 시민회관이라는 곳에서 했으니 시대회였던 것 같고 학교에서 몇몇 차출이 되어 수업을 빼먹고(중요!) 대회에 나갔다.
왜 여기서도 시를 썼는지 명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또 시간에 쫓겨서 쓴 게 아닐까 싶다.(시간과 노력을 들여 시를 쓰시는 분들.. 죄송합니다.)
나는 겨우 '빛'이란 시제를 골라잡아 '나의 빛'이란 시를 완성했다.
그 당시 우리 반에서는 반장과 나, 둘이 함께 나갔는데 반장은 평소에도 진짜 너무할 정도로 글을 잘 썼다. 그 아이는 '가을걷이'라는 시제를 선택해서 스스슥 쓰고는 보통 여자아이들과는 다르게 보여달라는 내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기도 했다.(자신이 있어서였을까.) 나는 보통 여자아이들처럼 반장 꺼는 봐놓고 내 건 안 보여주는 깍쟁이처럼 굴었는데 새침을 떨려던 게 아니라 반장 시를 보자 너무 주눅이 들어 부끄러워 차마 내 건 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런 내 태도에도 삐지지 않고 싫어? 그럼 말고. 쿨내를 풀풀 풍겨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결과는 두 가지로 나를 놀라게 했는데 그녀의 수상이 장원이 아니고 차상이었다는 것과 내가 참방 당첨(이게 더 맞는 표현?) 이 되어 우리 학교에서는 반장과 나, 둘이 수상자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교과목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수업 시작 전 이런 얘기를 하셨다.
"OOO이 이번에 상 받은 가을걷이라는 시가 얼마나 잘 썼던지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읽으면서 감탄을 했어. 그래서 지금 내가 그걸 들고 왔어. 너희도 들어보라고."
그리고 반장의 시를 읊으시더니 반 모두에게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쑥스러운 건지 별 생각이 없는 건지 반장은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이 여전히 쿨함을 유지하고 있었다.(솔직히 멋있었다. 신여성 같았다.ㅋㅋ)
이때 나는 약간 알쏭달쏭한 감정이 들었는데 나도 학교를 빛내긴 했는데? 약간 서운한 마음도 들면서 호옥시나 저 선생님이 뒤이어 내 시에 대해서도 언급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도 있었다.
다시 들은 반장의 시는 선생님의 말씀처럼 가을걷이하는 그 장면이 눈으로 그려지듯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 뒤에 내 시가 따라붙으면 너무 창피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말 한마디 안 해주는 건 또 서운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얘기는 없이 그대로 넘어갔다.
그녀의 시가 누가 들어도 태평성대 같은 가을걷이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정밀화였다면 내 시는 '빛'에 밑줄 쫙 긋고, 이 빛의 의미는 의미는 국가다. 하면 국가가 되고 가족이다. 하면 가족이 되는 추상화였다.
그런데 여기 작은 반전이 하나 있다. '나의 빛'에서 '빛'이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해석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은이(!)가 바로 그 뜻이 드러나지 않도록 숨긴 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다.(와... 거창하다... 한용운 님의 침묵쯤 되나 봄?ㅋㅋ)
당시 나는 이적느님에게 영혼이 팔려있던 정점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러니까 빛=이적이었다.ㅋㅋㅋㅋㅋ 나의 빛인 그를 향한 내 오롯한 마음을 담았지만 노골적으로 그것을 드러내면 안 되었기 때문에 단어 속에 내 마음을 숨겼다. ㅋㅋㅋㅋ 뜻하지 않게 상까지 받자 약간 우쭐해졌는지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자작시를 외우고 다녔다. 지금까지 외우고 있었다면 꿈속에서라도 이불킥할 이야기인데 기록도, 기억도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아무리 흑역사여도 역사긴 역사인데.
딱 중2병 나이라서 글이라는 건, 시라는 건 원래 해석하는 각자의 몫인 거야. 그게 시의 묘미야.라고 하며 혼자만 알고 있는 그 '빛'의 비밀에 묘한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변태니..?)
도대체 저 시는 왜 상을 받았을까 생각해봤는데 그 빛이 국가든, 가족이든, 친구든 대상을 향한 진실되고 애틋한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나서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여전히 나는 시를 잘 쓰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고 부럽기 그지없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는 시들을 읽으며 끝없이 감탄하고 시샘을 한다.(물론 개중에는 '나의 빛'처럼 저게 무슨 소리? 싶은 시도 있지만)
질투한다고 없던 능력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날 다독여보는데 그렇다고 어렸을 때 논설문이나 설명문 같은 글은 잘 썼나? 또 그렇지도 않다. 굳이 고르라면 난 '생활문'이 주종목이었는데 그런 걸 보면 지금 [일기는 일기장에] 글만 쓰는 건 또 어쩔 수 없나 보다.
친구의 유튜브 영상 자막을 만들다 보면 혹시 발전 가능성이 생기려나? 아니. 친구가 날 해고할 것 같다. (또또 세상 부정적인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