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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epina Sep 06. 2020

혹시 또 열심히 하면 어쩌지?

결국 인스타에 강제 가입(?)당하다.

'알고 보면 예비 관종' 글에서 SNS를 일절 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https://brunch.co.kr/@cherry0327/36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는데 일단 '보여주기'와 '자랑'거리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을뿐더러 나에 대해 노출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을 듣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봐야 하는 게 그저 피곤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잘은 모르지만) 사진을 올리고 그 밑에 몇 줄 글을 쓰며 소비되는 형식의 플랫폼이 나와는 맞지 않아 보였다.


뭐 대단한 신념이라고 참 잘 지키며 살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질책과 비난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하지만 그것 말고는 특별히 불편한 점이 없고 솔직히 말하면 '시간 낭비 서비스' 역기능 쪽에 한표 던지는 입장이라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래도 시대와 아주 단절하고 살 수는 없기에 내가 안 할 뿐, 아예 모르고 살진 않았는데 내 가수, 배우들의 근황을 훔쳐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청천벽력 같은 화면을 마주한다. 로그인을 하지 않고는 사진을 볼 수 없게 된 것. 계정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옛날 사람 화석으로 계속 살아가려 했는데 이젠 더 이상 도망 칠 수 없게 된 것인가. 뭔가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결과에 도달하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여러 난관을 거친 후 겨우 가입을 완료한다.

가입부터 나를 괴롭혔다. 인스타 놈은

소액 용돈 벌기 앱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한 적 있다.(어떤 지점이 슬프다는 건데?)

https://brunch.co.kr/@cherry0327/66

 요즘은 휴대폰으로 광고 보는 어플이나 지속적인 설문조사에 응답하는 것만으로도 소액을 벌 수 있다고 해서(까까 사 먹을 정도 되는 것 같다.) 친구가 알려준 유명한 앱을 하나 깔았다. 두 달 조금 넘었는데 귀찮긴 해도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한 달에 휴대폰 요금 감면 5천 원은 너끈히 되는 것 같으니 할만하다.(더 노력하는 사람들은 꽤 벌긴 하더라. 댓글 달기, 좋아요 누르기 기타 등등의 활동을 통해..) 그 어플의 메뉴(?)중 하나는 매일 출석해서 글을 하나씩 올리면 공감지수를 통해 추가 적립이 되는 형식이다.


여전히 사용 중인데 요즘 내 예상과 달리 흘러가고(?) 있어서 좀.... 귀찮다....

일상의 사진과 간단한 글을 곁들인 콘텐츠를 업로드하면 회원들이 서로 게시물을 봐주고 추천을 누르는 품앗이(?) 형식인데 사실 이 메인 테마(!) 자체가 나랑은 맞지 않다.

 기본적으로 나는 여행 갈 때 아니면 사진을 거의 찍지 않으니 여행이 중단된 이후로 올릴 사진이 전무하며 평소에 사진 찍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지 않고 그마저도 외출 횟수가 현저히 줄었으니 찍을 거리도 당연히 없다.

 매일 두장씩 사진을 올려야 하는 게(의무는 아니지만 하루 최대 양) 숙제처럼 느껴지는데 더더욱 문제는(?) 자꾸 댓글이 늘어나고 구독자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아무 내용도 없는 콘텐츠이지만 서로 상부상조를 위해 영혼 없는 댓글을 남기는데 성격상 보답을 꼭 해야 하다 보니 댓글 남긴 사람들 페이지에 가서 '답방 와서 보고 갑니다' 소울리스 리액션을 해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분들이 다시 또 내 피드에 재 답방을 오고 내가 또 가고 이런 뫼비우스 무한루프 같은 패턴.. 가끔 외식 사진을 올리면(사람들이 음식에 가장 큰 열광을 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댓글이 몇십 개씩 달리는데 고맙긴... 한데 '아.. 댓글 그만 다셔도 됩니다. 내가 또 가서 써야 하잖아요.. 그만 쓰세요.. 구독도 하지 마세요... 나도 해야 하잖아요.. 알림 받아야 하잖아요.. 신경 쓰인 다고요..' 마음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하지만 실제로는 가서 '저도 구독하고 가요'라고 발칙한 거짓말을 쓰고 온다는 거.. 언행불일치의 삶...)

  이걸 이렇게 크게 벌릴 일이 아니었는데(프로필, 대문 따위도 일절 손대지 않았다고ㅠ) 내 생각과 달리 판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아... 나도 모르게  또 열심히 했나?' 싶었다.


인스타 가입 며칠 후 가입에 도움을 준(!) 친구를 만났다.


나 : 야, 나 물어볼 거 있었어. 이거 알림이 첫날에 오다가 그 담엔 안 오더라. 설정을 내가 뭔가 건드렸나 봐. 그래서 바꿔 줬거든. 근데 오늘 또 안 왔어. 그리고 여기 봐봐. 네임이랑 사용자 이름이랑 뭐가 다른데? 난 네임을 설정한 적이 없는데 왜 자동으로 이렇게 나오는 거야? 사람 검색할 때 치는 건 그럼 네임이야, 사용자 이름이야? 내가 팔로잉 한 사람을 다른 사람이 못 보게 할 수는 없어? 설정에서 못 바꿔?


봇물처럼 질문을 쏟아내는 나에 반해 친구는 평소와 달리 나무늘보처럼 답을 한다.


친구 :  그런 게 있었나? 난 뭐라고 되어 있지? 난 없네... 음... 검색은... 음.. 지금 해볼까. 이렇게 치면... 아.. 이게 넌가? 아.. 그럼 이건 아닌가 보다.. 그러면 이게 맞나 본데... 그건 안될걸... 아마?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계속 말 끝을 흐리며 대답하던 친구의 눈빛에서,

'도대체 이런 걸 왜 물어보는데?  남의 꺼 보는 용도로만 쓸 거라며? 네가 할 건 아니라며?' 질문을 읽어내고 말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앱을 다운로드하는 순간, 그리고 그 앱이 자꾸 폰 화면에서 보일 때부터 고민과 걱정이 시작되었다.

 '나 이거 혹시 또 열심히 하면 어쩌지?'

아예 안 하거나, 하면 너무 열심히 하거나 중간이 없는 나로서는 싸이월드처럼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 '나야 나'가 또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너, 요즘 브런치 열심히 안 하던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잠깐 못 들은 척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읽으시면 나름의 이유(아닌 핑계)가 있거든요..)

 갑자기 '자랑'이나'보여주기'가 생긴 인생은 아니지만 개인 메모장 용도로 사용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났기 때문이다.(이렇게 얘기하는 거 보면 잠깐 스친 게 아닌 것도 같지만?) 별것 아닌 사진들, 짧은 단상들을 그때그때 기록할 필요성을 느끼는데 용돈 앱은 너무 불특정 다수들이 들여다보면서 개인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 곳이고 브런치는 진중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어서 짧게, 마구 휘갈겨 쓰기가 어렵다.

(그런 것 치고 막상 발행 글이 너무 내용이 없죠? 죄송합니다.)


성시경 님 콘서트에 다녀와서 썼던, '냉철함 속에서 발견한 온기' 중 그의 말.

https://brunch.co.kr/@cherry0327/56

"전 SNS 하고 맞지 않거든요. 개인적인 걸 노출하는 걸 안 좋아하고(응. 나도)
사진 찍는 거 싫어해서 사진도 없고요.(응. 나도. 여행 갈 때 아니면 사진 안 찍어)
SNS는 다 좋은 것만 보여주잖아요. 전 근데 그게 가짜 같거든요. 욕 들어도 솔직한 게 좋고.
근데 제 성격상 한 번 시작하면 열심히 해야 한단 말이에요.(저요 저요! 그런 사람 여기 또 있습니다!)


앨범 소식과 공연 소식을 이제 인스타로 알리겠다고 해서 훔쳐보는 연예인 리스트에 그를 추가했는데 아무리 코로나 때문에 공연 소식이 없다 하더라도 앨범은 고사하고(새 음원이 나왔는데 인스타에 안 알렸어.. 배신자..) 주야장천 요리 한 얘기+요리한 거 먹는 얘기로 하루에 수십 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는 그를 발견하게 된다. 정말 예언대로 더럽게(!) 열심히 하고 있더라.(안티 아님)

성시경 안티 아닙니다요.

세상 도도하게 굴다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면 내 성격과 비슷해 이해가 되면서 또 웃기기도 한데 나중에 나한테  같은 말을 하게 될까 봐 대놓고 웃지도 못하겠다.(안티 아니라고요.)


 내로라하는 기계치이면서 가전제품 설명서는 꼭 처음에 정독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 알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당연히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실전이 중요해서 이것저것 누르면서 시작해야 하거늘 거기까지 가는 시간이 길어지다 못해 눌러보기도 전에 포기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그 어떤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까닭을 이렇게 찾는다. 그 어떤 외부적, 환경적 요인을 갖다 붙여 봐도 결국은 내 마음의 문제다.

 '그냥' '일단'을 용납하지 못하는 고루함.

 저지르지 못하는 답답함.

 시작하면 꾸준히, 성실히 해내지만 '열심히'하는 게 겁나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비겁함.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큰 부담이 되어 도전하지 않음으로 실패 확률도 제로로 만들고 마는 나쁜 완벽주의

너무 아는 척하고 싶으면 모르는 척하고 싶어져.

-아저씨 대사中-

약간 이런 느낌이다.(인스타 가입 하나로 참 멀리멀리까지 왔네.)

 그렇다. [일기는 일기장에] 글도 요즘 쓰기가 너무 버거워져서 '지금, 일단' 아무렇게나 써보자 싶어서 더 못쓰기 전에 끄적거리는 연습이다.(그런 것 치고 글이 너무 긴데??)

그래서 인스타를 메모장으로 사용할 거냐고? 그건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반전이 있다면(이런 두서없는 글에 반전 정도는 있어야지?) 그날, 인스타의 문제였는지, 내 컴퓨터의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예전대로 계정 없이 남의 인스타 사진이 잘만 보인다는 거다.

 왜 낚였나 나는...

 이 글 쓸라고 낚였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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