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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Nov 15. 2024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는 섬, 추자도

18-2코스,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길


지난 번 추자도 글 말이야.. 추자도의 아름다움이 덜 담긴 거 같아!


추자도 18-1코스를 걸었던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남편이 조심스레 건넨 말이었다. 냉정한 평가였지만 나 역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맞아. 나의 부족한 문장력으로는 추자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가 없더라! 그래서 사진을 많이 올린 거야, 차라리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끔... 근데 사진으로도 다 담기지 않았다는 게 함정!"


오늘도 도무지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사진으로 대체하며 쓰는 글이 될 것 같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추자도는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섬'이라는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한 곳이었다.

   

추자도에서 맞은 둘째 날 아침, 하추자도에 위치한 숙소에서 저 멀리 상추자도가 보인다.




지금까지 9개의 올레길을 완주하면서 아이들과 이틀 연속으로 올레길을 걸은 적은 없었다. 하루에 4시간에서 많게는 7시간도 걸어야 했으니, 올레길을 걸은 다음 날은 무조건 아이들의 다리를 쉬게 해주었다.


그런데 추자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틀 연속으로 올레길을 걸어야 했다. 우리가 섬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고 걸어야 하는 올레길은 두 개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가족은 10월 1일에 21코스를, 이틀 후인 10월 3일에는 18-1코스를, 그리고 오늘은 18-2코스를 걸을 예정이니... 단 4일 내에 올레길을 3개나 걷는 무리한 일정을 소화 중이었다.


"엄마! 다리가 아파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니 괜시리 미안해졌다. 어른인 나도 허벅지와 종아리 곳곳에 알이 배겨 묵직한 통증이 있는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엎드려서 TV를 보는 아이들의 다리를 번갈아 가며 살살 주물러 주는 것 뿐이었다.


어젯밤에 기절하듯 잠든 숙소에서 맞이한 아침! 아이들의 다리를 주물러 봅니다.




어제 배를 타고 내려 처음 마주한 추자도는 흐린 날씨 때문에 본 모습을 100% 감상할 수가 없어 조금 아쉬웠다. 다행히 둘째 날인 오늘은 맑고 화창한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얘들아, 오늘은 하늘 보니까 어제랑 다르게 엄청 맑은데?"


"흐엑? 오늘 날씨 맑음이야? 올레길 걸을 때는 햇빛 쨍쨍 나면 힘든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짧은 길이라서 금방 걸을 수 있어~"


"그래? 그럼 얼른 걸으러 가자 엄마! 이따가 해 높이 뜨면 더 더워지니까 빨리 다 걷고 쉬게!"


원래는 다리도 아프고 하니 천천히 준비해서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땡볕을 맞으며 걷는 올레길의 무서움을 익히 알고 있어서인지, 한낮의 더위를 피해 빨리 걸으러 가고 싶어 했다.


그래, 그렇다면 오늘은 18-2코스를 후딱 걷고 점심을 먹어 보자!


어제의 도착점이자 오늘의 시작점인 '신양항'까지 가는 길 :)




18-2코스는 신양항에서 시작한다. 어제 걸었던 18-1코스와 정반대로 추자면사무소에서 끝나는 길이다.


18-2코스의 시작점 신양항에서 :) 스탬프를 찍고서 출발!




날씨가 달라지니 추자도의 모습도 새롭게 다가왔다. 맑게 개인 하늘 아래 펼쳐진 추자도는 알록달록 찬란하게 반짝였고, 눈이 시리도록 푸르렀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며 힘차게 올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눈 앞에 보이는 산등성이를 넘고 또 넘을 것이 예상되는 길
남편과 첫째가 앞서 걷기 시작하고, 둘째는 나와 함께 뒤쳐지던 초반!




섬에서 온몸으로 맞는 태양은 역시나 강렬한 맛이었다. 산으로 올라가는 숲길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몽돌 해변 옆으로 난 아스팔트 길을 걸어야 해서 더 뜨겁고 힘들었던 것 같다.


윤슬이 내린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지만, 태양이 너무 강렬해서 얼른 그늘로 가고 싶었던 길
곧 숲길이 나오니까 조금만 더 힘내자, 둘째야!




어제도 산을 여러 번 올라야 했는데, 18-2코스 역시 쉼없이 산을 오르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바다 옆으로 걸으면 뙤약볕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늘이 있는 산으로 들어서는 게 오히려 좋았다.


오늘 처음으로 만난 산은 '석두청산'이었다.

 

열심히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면...
정상에 다 왔다는 게 느껴진다.
눈 앞에 나타난 것은 푸르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수덕도와 청도! 그 뒤로 희미하게 제주도!




'석두청산 쉼터'라고 쓰인 정자를 보자마자 아이들은 벌러덩 드러누워 버렸다. 이 곳에서 바라본 수덕도와 청도의 모습이 가히 예술이었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구름띠가 하늘에 아름다운 장식을 추가해 주었다.


석두청산 쉼터, 힘들어서 벌러덩 누워 버린 아이들^^
그 앞 벤치에 앉아 기념 사진도 찍어 봅니다... 그리고 구름 아래로 보이는 능선이 제주도?


어? 저기 제주도 보인다!


남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보니, 날씨 운이 좋아야 보인다던 제주도가 진짜 보였다! 무려 50km나 떨어져 있는 추자도에서 제주도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반가웠다.


구름띠 위로 봉긋 솟은 곳은 한라산 백록담일 것이었다. 마치 한라봉의 윗부분 같이 생긴 모양! 그리고 구름띠 아래로 유려하게 이어진 능선이 바로 우리가 떠나온 제주 본섬의 모습이었다.

 

추자도에서 제주도를 보니 더 반갑고 반가운 마음!




석두청산 쉼터를 떠나 다시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이번에 만난 산은 '졸복산'이었다. 땡볕을 걷다가 지친 아이들은 그늘이 보이면 어디든 털썩 주저앉고는 했다.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땡볕 싫어! 그늘 좋아! 의 반복이었던 길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 길
수덕도에 대한 설명이 쓰인 간세 / 걷는 내내 보이던 수덕도와 청도 그리고 제주도!




구름띠 아래 보이는 큰 섬 제주도는 엄마인 나, 오른편의 청도는 첫째 아이, 왼편의 수덕도는 둘째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섬들의 위치 쪽에 각각 선 채로 세 모녀의 사진도 남겨 보았다.


저기 멀리 우리 집 배경으로 사진 찍자, 얘들아^^
졸복산을 둘러 가는 길




석두청산, 졸복산에 이어 대왕산이 눈앞에 등장했다. 그리고 깎아지를 듯 가파른 산을 오를 수 있게 만들어진 계단도 보였다. 설마 저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하... 깊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달려나간 아이들이 먼저 계단을 오르고 있어서, 인사하는 중!


어? 오랜만에 보는 현무암이다!


추자도는 제주도와 달리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그래서 행정구역 상으로는 제주에 속해 있으나 제주스럽지 않은 섬이라는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헌데, 대왕산을 오르는 계단에 뜬금없이 현무암이 보였다. 왜 추자도에 현무암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한켠에 설명이 쓰여 있었다. 일부러 제주의 현무암을 가져와서 담벼락으로 만들어 두었다는 것!


추자도가 제주에 속한 섬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노력인 듯 했다. 어쨌거나 오랜만에 보는 현무암(겨우 하루 못 봤을 뿐임^^;)은 꽤나 반가웠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담벼락 사이의 계단을 오르며^^


와! 북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기뻐하며 북을 칩시다!


대왕산 정상에 오르니 정자가 한 채 있었다. 그리고 정자 안에는 수덕도를 배경으로 북 하나가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을 쳤는지 뱃가죽이 찢겨진 채로 매달려 있던 북 하나...


딸들과 나도 돌아가며 북을 치기 시작했다. 마치 이 대왕산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했던 길에 대한 분풀이를 하려는 듯이!


(아... 모두 이런 마음으로 북을 쳐서 가죽이 찢어진 건가? ㅎㅎㅎ)


대왕산에서 수덕도를 바라보며 북을 쳐 봅니다. 둥둥!
그리고 이어진 모녀의 댄스 삼매경 with 둘째의 북 장단^^
대왕산 정상에서 우리가 걷기 시작한 신양항을 내려다 봅니다.




얼마나 예쁜 길이면 '대왕산 황금길'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을까! 감히 18-2코스, 하추자 올레의 하이라이트로 꼽고 싶을 만큼 황홀한 풍경이 펼쳐졌다.


대왕산 황금길을 따라가며 보는 추자도!




대왕산을 먼저 내려간 아이들이 돌로 만들어진 토끼와 거북이상 앞에서 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나는 대표적인 '거북이'를 맡고 있다. 걸음이 느려도 너~무 느리기 때문이다.


가끔 올레길을 걷는 후반이 되면 아이들이 한없이 뒤쳐질 때가 있다. 나야 뭐 워낙 거북이처럼 속도가 느려서 그런다 쳐도, 아이들이 느리게 걷기 시작하는 건 많이 지쳤다는 얘기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 곁에 바짝 붙어서 걸으며 힘을 북돋우는 역할을 맡고는 했다. 그런데 내가 이 이야기를 하자 아이들이 발끈하며 반박을 하는 게 아닌가!


"엄마는 너희가 힘들어서 걸음이 늦어지면 그 속도에 맞춰서 같이 잖아! 아빠는 먼저 가버리는데~"


"어, 아닌데? 엄마가 워낙 뒤쳐지니까 내가 엄마 기다렸다가 같이 걸어준 거야!"


"맞아! 더 빨리 갈 수도 있는데, 엄마랑 같이 가려고 내가 일부러 천천히 걸은 거거든?"


아... 너희는 하나도 안 힘들었는데 느린 엄마를 기다렸다가 걸어준 거였구나? 다음엔 너희가 뒤쳐져도 안 기다려 주고 엄마 먼저 걸어 가야겠다, 흥!


(토끼처럼 꾀도 많은 귀요미들 같으니라구!)


'토끼와 거북이'에서 토끼를 맡고 있는 아이들과 거북이를 맡고 있는 나!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많이 걷느라 힘들어서 평안하지 못하네요^^;
앞으로는 걸어 나가야 할 상추자도가 보이고 / 뒤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하추자도가 보여요!




대왕산 황금길에는 중간 스탬프도 있었다. 벌써 높은 산을 3개나 오르내린 것 같은데, 아직 중간 지점이라니! ㅠㅠ 추자도 올레길의 난이도는 역대급이 맞았다.


하지만 역대급 난이도만큼이나 역대급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보니, 걷기의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감탄만 하기에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대왕산 황금길에서 중간 스탬프도 찍고,
길가에 가득 핀 꽃무릇도 구경하며,
우선은 하산을 했습니다, 그러나 또 산에 오를 예정!




곧 주황빛 지붕의 집들이 모여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이 나왔다. '묵리'였다. 곳에서 최근에 방영된 '삼시세끼 라이트'를 촬영했다고 한다.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마을 묵리를 지나며^^


예전에는 추자도에 올레길이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그 때 올레꾼들이 점심으로 컵라면도 사먹고 중간 스탬프도 찍었다는 유명한 '묵리 수퍼'가 보였다.


"엄마! 저기 큰 멍멍이가 있어... 무서워..."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아이들과 내가 무서워 하는 게 하나 있는데, 바로 목줄이 풀린 개였다. 묵리 수퍼 앞 도로에도 큰 개가 한 마리 있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겁에 질린 둘째의 손을 꼭 잡은 채 조심히 개를 지나쳐 걸었다. 나도 개를 정말 무서워 하지만, 나는 엄마였다. 혹여나 길에서 마주친 개가 내 아이를 헤치려고 한다면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아이를 지킬 것이다.


다행히 순한 개인지, 얌전히 앉아만 있더라... (그래도 무섭다!)


묵리 수퍼를 지나 금파골로 접어 들었다. 하추자도에서 상추자도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금파골에서 내려다 본 묵리항, 그리고 우리가 넘어온 산등성이들!



우리가 어제 건너 왔던 추자 대교다! 여기 건너면 이제 상추자도지?


고지가 눈앞이였다. 추자 대교만 건너면 상추자도로 접어들게 되고, 도착 지점까지 금방 이었다. 아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 더 신나게 다리를 건넜다.


어제 걸어 왔던 추자 대교를 다시 한 번 걸어 가는 중!  
건너온 추자 대교와 우리가 출발해서 온 하추자도를 바라 봅니다.
조금만 더 걸으면 된다는 생각에 힘을 내보는 아이들!




클라이막스로 향해 가는 길이었다. 어제의 흐린 날씨 속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던 상추자도는 햇빛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

 

더 밝아진 얼굴로 우리를 맞아주고 있던 상추자도 :)
여전히 잔망 넘치는 춤추자도 조형물과 황금 빛깔 굴비 분수대 :)



어제 우리의 걸음이 시작 되었던 곳에서 오늘 우리의 걸음은 끝을 맺었다.


햇빛이 찬란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었는데, 마치 추자도 올레길을 모두 완주한 우리를 위한 조명처럼 느껴졌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리는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사진을 남겼다.


오늘 걷는 내내 바라 보았던 수덕도 모양의 스탬프까지 찍고 나니, 세상 뿌듯하고 행복했다.

 

18-2코스 완주 성공! 수덕도 모양의 스탬프도 쾅쾅!
아쉬우니까 한 번 더 수덕도...♡


엄마! 휴지 좀! 나 코피...


늦은 점심을 먹고 나와서 어디로 갈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둘째가 외쳤다. 놀라서 돌아보니 둘째는 코피를 뚝뚝 흘리는 중이었고, 먼저 발견한 남편이 침착하게 대처하는 중이었다.


"아고... 우리 ㅇㅇ, 이틀 연속으로 올레길 걷느라 힘들었구나... 괜찮아?"


"응, 괜찮아! 모자에 피 묻은 건 어떡해?"


"그건 걱정하지마, 엄마가 빨면 돼! 이제 숙소로 가서 푹 쉬자~"


둘째는 원래 코피를 자주 흘리는 편이라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올레길을 걷느라 몸이 힘들어진 탓에 코피가 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둘째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우리 둘째가 힘들었는지 코피를 뚝뚝 흘렸답니다...




깨끗이 샤워를 마친 아이들은 숙소에서 편히 뒹굴며 TV를 보게 하고, 나는 공용 부엌으로 가서 아이들과 먹을 저녁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원기 회복에 탁월한(?) 엄마표 김밥이다!


올레길 완주를 끝내고 편히 쉬는 중인 아이들
재료 준비는 내가 다 했는데... 사진은 남편이 다 한 것처럼 나왔네?
맛있다고 엄지척 해주는 첫째, 잘 먹고 잘 쉬자!
노을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추자도에서의 둘째 날도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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