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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Nov 08. 2024

꼭 가봐야 할 섬, 추자도

18-1코스, 가장 어렵고도 아름다운 길

    

추자도는 언제 가보지?


처음 올레길 완주를 꿈꿨을 때부터 가장 마음에 걸리던 곳이 있었다. 바로 추.자.도! 주 일년 살이를 하는 동안 올레길 완주를 하지 못한다면 아마 추자도 때문이지 않을까 예상하고는 했다.


추자도는 제주에서도 배를 타고 2시간이나 가야 할 만큼 멀리 떨어진 섬이었고, 올레길 난이도가 '극상'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아이들과 과연 두 개의 올레길을 모두 완주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추자도에는 올레 18-1코스와 18-2코스가 있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섬이라는 표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한다고 했을까? 올레길 완주를 핑계 삼아 가볼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실제로 가서 보니 이렇게나 아름다웠습니다♡


10월의 개천절 연휴를 이용해 추자도를 가보기로 했다. 아이들 학교까지 하루 빠지게 한 뒤 2박 3일로 넉넉히 일정을 잡고, 민박 집까지 예약도 완료했다. 이제 날씨가 좋기만을 기다리면 되는데...


개천절 연휴에 반갑지 않은 태풍 소식이 있었다. 제주로 여행 오려던 많은 분들이 태풍 걱정에 예약도 다 취소하는 판이었다.


우리의 추자도 여행은 어쩌나? 태풍 때문에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건가?


추자도는 제주보다 전라도에 가까운 섬, 제주에 편입된 것도 광복 이후여서 전라도 영향을 더 많이 받은 섬이라고 한다.




10월 3일, 추자도로 가는 아침 8시 배를 타기 위해 집에서 6시쯤 출발했다. 서귀포쪽 우리 집에서 제주 연안 여객 터미널까지도 차로 꼬박 1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태풍은 경로를 틀어 제주를 비껴 갔다. 만세! 다만 거친 바람 탓에 높아진 파도가 걱정이었다. 터미널에 일찍 도착해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다같이 멀미약까지 챙겨 먹으며 승선 준비를 단단히 마쳤다.


제주 연안 여객 터미널에서, 승선 대기 중^^
드디어 배를 타러 갑니다!
출항 전 갑판 위에서 '추자도 가요'라는 문구와 함께, 귀여운 둘째^^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하느라 잠을 설친 나와 남편은 배에 타자마자 객실에 드러누워 잠을 보충했다. 아이들은 졸리지도 않은지 눈을 똘망똘망 뜬 채로 2시간 동안의 긴 항해를 즐겼다고 한다.


"엄마, 추자도 보이는 것 같은데? 저기가 추자도야?"


아이들이 흔들어 깨우는 통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자고 있어서 몰랐을 뿐, 거친 파도에 배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항해 중이었다. 멀미약을 먹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자도 가는 배를 타실 때, 멀미약을 꼭 드시길 추천합니다^^*)


저 멀리 추자도가 보이기 시작!
추자도 신양항에 내리기 직전^^




배에서 내리니 민박집 사장님께서 차로 픽업을 나와 주셨다. 사장님께서 18-1코스가 시작하는 상추자도에 우리를 내려 주시고 짐만 먼저 가져가 주시는 시스템이었다.


(추자도 대부분 민박집에서 배 시간에 맞춰 픽업 나와 주시고, 올레길 시작점에 데려다 주신대요~^^*)


18-1코스, 상추자 올레는 추자면사무소에서 시작된다. 올레 안내소 앞에서 스탬프부터 찍고 있으려니 안에 계시던 직원분이 나와서 가족 사진을 찍어 주셨다. 날씨는 흐렸지만 가족들 표정은 맑음 그 자체였다.


18-1코스, 상추자 올레... 두근두근하며 걷기 시작^^




추자도에는 태풍의 영향 때문인지 바람이 어마무시하게 불고 있었다. 아니면 사방으로 트인 섬이라 바람이 더 강하게 느껴진 걸 수도 있다. 아무튼 우리는 이 바람을 헤치고 올레길을 걸어 나가야만 한다!!


무지개 빛깔의 추자초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아이들은 운동장의 놀이 기구들을 보자마자 뛰어가서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잠시나마 자유 시간을 허락하고, 나는 추자초등학교 전경을 눈에 가득 담았다.

   

개천절이라 학교에 학생들은 없었고, 텅빈 운동장에 우리 아이들만 뛰어 놀았다.




더 놀겠다는 아이들을 살살 달래서 다시 길을 가다 보니 '최영 장군 사당'이 나왔다.


"엄마!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그 노래에 나오는 최영 장군이야?"


"응, 그 최영 장군이야! 추자도가 최영 장군 고향인가?"


궁금해서 설명을 읽어 보니 이렇게 쓰여 있었다.


최영 장군 사당 : 최영 장군이 고려 후기 반란을 진압하러 원정을 가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추자도로 대피하게 되었는데, 이 때 추자도 주민들에게 선진 어업 기술을 가르쳐 생활의 변혁을 가져다 주었으므로 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


최영 장군 사당으로 오르는 길




최영 장군 사당을 지나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그 위로 떠 있는 아기자기한 섬들을 바라보며 걸었다. 제주 본섬의 올레길을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바다를 보며, 숲으로 가는 길
발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던 비경
전망대에 망원경이 있었지만 두 눈으로만 봐도 아름다웠던 바다와 섬들!




추자도 올레길은 산 넘고 물 건너 또 산을 넘는 길의 연속이었다. 높이 오를수록 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다리 근육을 많이 써야 하니 어려운 코스로 평가 받고 있는 듯 했다.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산 이름이 봉골레산이야~"


"어? 봉골레 파스타 먹고 싶다! 히히~"


"오늘은 봉골레산 말고도 계속 산을 오르내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


"엄마, 나는 산길이 제일 재밌고 좋아! 추자도 올레길 마음에 드는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추자도에서 만난 첫 번째 산에 가뿐하게 올랐다. 둘째 아이의 말처럼 봉골레 파스타가 떠오르는 귀여운 이름의 봉골레산이었다.

 

봉골레산 정상에 올라, 야호!
하산하는 길도 풍경이 예술!
아이들도 추자도 풍경을 신기한 듯 바라 봅니다.




봉골레산을 내려오니 추자항 인근이었다. 추자도에는 항구 근처에만 식당이 있다고 들었기에 조금 이르지만 여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걷기로 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는 소화도 시킬 겸, 추자항의 '춤추자도' 조형물 앞에서 아이들과 춤을 췄다. 이래봬도 나와 아이들은 방송 댄스를 배운지 한 달차 되는 댄스 꿈나무들(?)이었다.


(부끄러움은 세 모녀의 춤 사위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주던 남편 혼자만의 몫이었다고 합니다..ㅋㅋ)


춤 '추자도'에서 신나게 춤춰 볼까나?


배도 든든히 채웠고 신나게 춤까지 췄으니 다시 올레길을 걸을 일만 남았다. 영흥리 벽화 마을을 구경하며 걸어가는 동안 흐렸던 하늘도 점차 개이는 것 같았다.


영흥리 벽화 마을을 지나는 길




울창한 나무로 가득한 오르막 숲길을 부지런히 걸어 탁 트인 높은 봉우리 위에 도착했다. 우뚝 솟은 추자 등대까지 가는 길 옆, 절벽 아래로는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숲길을 다 오르니 드넓은 바다가 짜잔-하고 등장!
망망대해 위에 나홀로 떠 있는 기분!


추자 등대에서 내려다 본 상추자도는 또 어찌나 예쁘던지! 강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우리가 출발했던 알록달록한 상추자도의 모습을 넋놓고 한참이나 바라봤다.

 

추자 등대에서 내려다 본 알록달록 상추자도 모습




오색 빛깔의 아름다운 상추자도를 뒤로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끝도 없이 이어진 계단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 길도 있다는 걸, 인생도 그렇다는 걸, 올레길을 걸으며 배우게 된다. 그리고 우리 집 아이들은 내리막 길을 참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빛보다 빠르게 내리막 계단을 뛰어가는 중인 아이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초록 나무, 은빛 바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다리가 '추자 대교'이다. 18-1코스와 18-2코스는 시작점이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로 각각 다르지만, 두 코스 모두 추자 대교를 건너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가 가야 할 하추자도가 보입니다^^


추자 대교를 건너자마자 귀여운 굴비 조형물이 보였다. 추자도는 굴비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밥도둑 굴비와 사진을 남기고, 하추자도의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굴비로 유명한 추자도!


숲길로 들어서자 여기저기 빨간색 꽃이 많이 보였다. 무슨 꽃인지 몰라 찾아 보니 '꽃무릇'이라고 했다. 숲의 초록색과 대조를 이루는 새빨간 꽃이었다.

  

꽃무릇이 가득 피어 있는 숲길을 걷습니다^^


꽃무릇이 피어난 숲속에는 나비도 엄청 많이 날아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은 눈 앞의 나비를 쫓아 가다가 손으로 살포시 잡아 보기도 하며, 나비 관찰에 열중했다.


"엄마! 나비가 이렇게 많이 날아 다니는 거 처음 봐~"


"나비가 너무 천천히 날아서 내 손으로도 잡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나비 날개 다치면 안 되니까 살살 잡았다가 얼른 날려 보내줘~"


"네, 엄마! 내가 나비 날려 보내주는 거 봐봐요~"


아이들은 주위를 날아 다니는 나비 구경에 정신이 없어 힘든 줄도 모르고 잘 걷고 있었다. (나비야 고마워!)


수많은 나비와 함께 걷는 길


제주 본섬의 올레길을 걸을 때는 어디서나 현무암이 보여서 '여기가 제주구나!' 했었다면, 추자도는 화산섬이 아니다 보니 모든 게 제주스러움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특별한 느낌의 올레길이었다.


제주 본섬의 올레길과는 확실히 다른 매력을 가진 추자도 올레길 :)




상추자도에서는 '봉골레산'의 정상을 밟았다면, 하추자도에서는 '돈대산' 정상을 밟아야 했다. 그 곳에 중간 스탬프 박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말인즉슨, 정상까지 오르막 길을 가야 한다는 얘기...


힘겹게 절벽(?)을 오르는 둘째를 뒤에서 찍은 나,
먼저 간 남편이 찍어준,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나와 둘째^^;
오르막길이 힘들어 잠시 쉬는 구간, 저 멀리 우리가 출발했던 상추자도가 작게 보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중간 스탬프가 있는 돈대산 정상에 도착했다. 올레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고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정자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와, 하루에 산 정상만 두 번이나 오르다니!"


"아... 내가 아무리 산길을 좋아한다고 해도, 오르락 내리락이 좀 많긴 하네!"


산 정상을 두 개째 올랐는데 이제야 중간 스탬프를 찍었다는 건, 아직 반밖에 안 왔다는 뜻이었다. 새벽 5시 30분쯤 일어나서 여태 한숨도 안 잔 아이들은 더 피곤할 법 했다.


돈대산 정상에 올라, 중간 스탬프를 찍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있는 듯한 정자에서 잠시 쉬어요 :)




"엄마,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쯤 있을까?"


첫째 아이의 화장실 요청에 급히 지도를 살펴 보니, 우리가 2박 3일간 묵을 숙소가 근처였다. 시계를 보니 입실 가능한 3시여서, 우리는 잠시 숙소에 들러 화장실만 사용하고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우와, 엄마! 상추자도랑 바다가 다 보여! 오늘 우리 여기서 자는 거야? 너무 좋다~"


아이들은 숙소를 둘러 보더니 정말 좋아했다. 심지어 2층 다락방도 있는 복층이었다.


"아... 그냥 여기서 발 뻗고 누워서 쉬면 안 되나?"


"힝... 다리도 아프고, 이제 그만 걷고 싶은데..."


아뿔싸!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아늑한 숙소를 보여주는 실수를 해 버리고야 말았다.


"얘들아, 아직 3시밖에 안 됐어. 어차피 숙소에서는 할 일이 없으니까 얼른 올레길 다 걷고 와서 쉬자!"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다시 숙소를 나섰다. 하지만 발길이 안 떨어지는 건 내가 더 했다.


사실은 엄마도 그냥 숙소에 드러누워 쉬고 싶은 심정이야... 얘들아...ㅠㅠ


우리 숙소! 너무 아늑해 보여서 다시 길을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도착 지점인 신양항까지는 남아있는 정신력으로 걷는 길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 배를 타고 온데다, 갑자기 훅 떨어진 기온과 세찬 바람 속을 하루종일 걷느라 가족 모두가 많이 지친 상태였다.


예초리로 향하는 길
예초리 기정길을 걷는 첫째, 힘들어 보이는구나 ㅠㅠ
뒤를 돌아보니, 힘들어 하는 둘째 손을 잡고 열심히 걸어오는 남편이 보였다!
얘들아, 조금만 더 힘내서 걷자! 이 산등성이만 지나면 도착이야!




"아빠, 나 발 아파서 더는 못 걷겠어!"


모진이 몽돌 해변을 지날 때, 둘째가 못 참겠다는 듯 소리를 빽- 질렀다.


"미안한데 이제 진짜 다 왔어! 우리가 아까 배 타고 내렸던 항구 보이지? 저기가 도착 지점이야!"


둘째 아이는 지친 기색이었지만 얼마 안 남았다는 아빠의 말에 젖 먹던 힘을 다해 끝까지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완주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신양항에 도착했다.


스탬프를 찍고 있으려니 낯익은 부부가 옆으로 다가오셨다. 오전에 민박집 사장님 차를 같이 타고 내려서 함께 올레길 걷기를 시작한 분들이셨다. 반갑게 인사를 드렸더니 가족 사진까지 찍어 주셔서 더욱 감사했다.


참굴비 스탬프를 찍으며, 추자도에서의 첫 번째 올레길 완주 성공!




민박집 사장님께서 신양항으로 픽업을 나와 주셨고,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된 그 부부와 함께 차를 타고 편안히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다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정말 감사한 픽업 서비스였다.


가족 모두 샤워부터 하고 숙소 내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추자도에는 식당이 많지 않기에, 대부분의 민박집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저녁 식사도 차려 주신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갈치조림'이었다.


열심히 걷고 나서 먹는 밥은 역시나 꿀맛이었다! 아이들도 엄지척을 여러 번 날리며 맛있게 먹어 주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같이 하시던 아까 그 부부 중 아주머니께서 아이들에게 말을 거셨다.


"너희 정말 대단하다... 아줌마는 지금 무릎이 너무 아프거든... 그렇게 힘든 길을 어떻게 다 걸었어?"


아이들은 아주머니의 칭찬에 쑥스러워 하면서도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른들도 걷기 힘들어 하는 추자도 올레길을 씩씩하게 잘 걸어준 우리 딸들, 장하고 멋지다!


열심히 걸은 아이들에게 TV 보기 무제한 시청권을! (집에 TV가 없기에 더 행복해 하던^^)


얘들아, 오늘은 푹 쉬고 내일은 18-2코스 걸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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