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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뽀 Nov 01. 2024

오랜만에 걸으니 더 좋아서 올레!

21코스, 지미봉에서 역대급 뷰를 만나는 길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장장 3개월 만에 아이들과 다시 올레길을 걷는 날! 


갑자기 10월 1일이 임시 공휴일로 바뀌어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게 된 덕분이었다.


물론 아이들 반응은 별로 안 좋았다. 오랜만에 학교도 안 가고 평일에 쉬게 됐는데 올레길을 걷는다니? 아이들 입장에선 노는 날에 극기 훈련을 해야 하는 셈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뭐다? 아이들의 마음을 녹일 치트키! 어차피 올레길을 걸을 때 당 충전이 필요해서 간식을 사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원하는 간식 5000원 어치씩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편의점이나 마트가 없기에, 전날 밤에 읍내 편의점까지 데려가 달달한 간식을 고르게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눈이 그날 밤에 뜬 하늘의 별보다 더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올레길 걸으면서 사탕 까먹어야지~"


"엄마, 배낭에 오늘 산 간식들 잘 챙겨 넣었어요! 히히~ 빨리 올레길 걷고 싶다!"


이로써 우리 집 아이들에게 올레길 걷기에 대한 즐거움 한 스푼 얹어 주기 성공!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몇 코스를 걸을지 정하는 것이었다.


"내일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 그래서 오전에 후딱 걸을 수 있는 짧은 코스가 좋을 것 같은데..."


"21코스 어때? 최대 4시간 정도 소요 된다니까, 남은 코스 중에서는 제일 짧은 길이네!"


우리 가족이 아홉 번째로 걸을 올레길은 21코스로 정해졌다. 길이 짧아서 걷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은데, 내일의 날씨가 변수였다. 10월인데도 낮 기온이 27도로 예상되어 많이 덥고 힘들 것 같았다.


제발, 흐릴 거라는 일기 예보만큼은 딱 맞아 떨어져서 뜨거운 해를 지고 걷는 일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잠이 들었다. (참고로 제주의 일기 예보는 믿을 게 못 됩니다. 몇 번을 속았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걷게 되는 올레길의 첫 주인공은 21코스^^




일찍 일어나는 새가 올레길을 빠르게 걷는다?


여덟 개의 올레길을 완주하며 얻은 교훈이 하나 있다. 무조건 집에서 일찍 출발해야 한다는 것! 아이들과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출발을 하면 이상하게 올레길 걷기 시작 자체가 늦어졌다.


그래서 오늘은 출발 지점인 해녀 박물관까지 가는 차 안에서 김밥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오후 1시부터 비 예보가 있기에 오전 중으로 무조건 다 걷고 싶어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해녀 박물관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21코스 시작 스탬프부터 찍으러 갔다. 흐리다는 예보와는 달리, 동쪽 바다 위로 뜨거운 해가 힘차게 떠오르는 중이었다.


21코스 시작점에서 기념 사진 찰칵^^


출발 시각 8시, 올레길을 걸어본 중에 가장 빠른 스타트였다.


"얘들아, 오늘은 21코스 빠르게 다 걷고 맛있는 짜장면 먹으러 가자! 어때?"


"짜장면 좋아! 근데 우리 그 때까지 다 걸을 수 있을까 엄마?"


"그럼! 이렇게 빨리 시작하니까, 아마 12시에서 1시 사이에 도착하지 않을까?"


"엄마, 나는 짬뽕 먹을 거야! 저 먼저 갈게요~"


무려 3개월 만에 걷는 올레길인데도 아이들은 올레 표식을 잘도 찾으며 걸어 나갔다. 21코스 완주를 향하여, 힘차게 출발!!

 

해녀 박물관에서 시작되는 21코스 :)
작은 동산을 넘어 바다가 보이는 마을로 내려가는 중 :)




21코스의 상징, 별방진 위에서 하도를 내려다 보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별방 밭길을 걷다 보니 돌로 쌓은 높은 성벽이 나타났다. 바로 21코스 완주 스탬프에도 새겨진 '별방진'이란 곳이었다.


별방진 : 조선시대 제주도 동부 지역의 최대 기지였던 성. 제주도에 있는 성곽들 중 비교적 성벽이 많이 남아 있어 당시 이 지역의 성 쌓는 방법과 규모를 알 수 있는 중요 유적임.


별방진, 그 앞으로 펼쳐진 무지개 도로와 하도 앞바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올레길은 별방진 안쪽으로, 그러니까 바다가 안 보이는 마을 길로만 이어진다. 그러나 이 때, 올레길을 어떻게든 벗어나 별방진 바깥쪽의 하도 앞바다를 꼭 보러 가시기를 추천한다. (강추!!!)


Hado라고 쓰여진 하얀색 조형물, 무지개 빛깔로 색칠된 해안 도로, 그리고 바다와 하늘의 푸르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소공포증이 없다면 안전에 주의하며 별방진 성곽 위도 걸어 보시길 추천 드린다. 남편과 나는 별방진 성곽에 앉아 하도 앞바다를 넋 놓고 오래도록 바라 보았다. 헌데,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별방진 성곽 위에 앉아 바라본 하도 앞바다... 정말 예뻐요!


사실 아이들은 올레길 표식만 보며 앞서 걷는 중이었다. 나는 별방진 앞쪽 바다를 꼭 보러 가고 싶은데, 아이들은 도통 멈출 생각이 없어 보여 다급히 불러 세우게 되었다.


"얘들아, 엄마는 저기 별방진 앞바다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어후, 저기까지 걸어 갔다 오자고? 안돼, 다리 아파...ㅠㅠ 나는 그냥 여기서 쉬고 있을게!"


"엄마 혼자 갔다와! 나도 언니랑 그늘에 앉아 있을 거야!"


나는 두 아이 모두에게 칼같이 거절 당했다. 그래서 나와 남편만 별방진 바깥쪽 해안 도로도 걷고, 별방진 성곽 위에도 올라갔던 것이다.


올레길만 걷기에도 힘든 아이들에게 경로를 벗어나 조금만 걷자고 하는 건 절대로 안될 일이었다. 엄마가 눈치도 없이 추가로 쬐끔 더 걷자고 해서 미안하다, 얘들아!


별방진 성곽 위에서 보이던 아이들! 그늘에 앉아서 간식 먹으며 쉬고 있습니다^^;




하도 철새 '쇠가마우지' 모양의 중간 스탬프 지점 도착!


21코스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3분의 1 정도를 마을과 밭길로 걷고 나니 바닷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바다는 정말 좋아 하지만, 올레길을 걸을 때만큼은 바닷길이 좀 두렵다. 이유는 '그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 흐릴 거라던 날씨 예보는 오늘도 나를 배신했다. 맑음을 넘어서 강렬한 햇빛 쨍쨍 날씨였던 것! 기온도 10월에 27도라니, 뙤약볕에 바닷길을 걸으며 느낀 체감 온도는 30도 이상이었다.

  

뙤약볕의 바닷길로 접어 드는 길. 바다는 예쁘지만 바닷길은 더워요...ㅠㅠ


바닷길을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중간 스탬프 박스가 보였다. 늘 보던 스탬프 박스와는 달리 오묘한 색깔의 청동기 유물(?)처럼 생겼는데, 아이들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나도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오, 찾아 보니 21코스 중간 스탬프를 못 알아보고 지나치신 분들도 많대요! 주의 깊게 보세요^^)


스탬프 박스 머리 쪽에는 하도 철새 도래지를 상징하는 듯 새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다. 무슨 새인지 너무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하도리에 자주 출몰하는 철새인 '쇠가마우지'를 형상화 했다고 한다.


'쇠가마우지'가 앉아 있는 중간 스탬프 박스에서, 도장 쾅쾅!




'걸으멍 쉬멍'이라는데... 그늘이 없어서 쉴 수가 없는 길!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바닷길을 걷는 와중에 하도리 마을에서 설치한 듯한 나무 이정표가 종종 보였다. 제주어로 '걸으멍 쉬멍'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대략 '걷다가 쉬다가' 하라는 친절한 도움말이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는 뜨거운 태양을 피할 곳이 없으니 '쉬멍'을 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주구장창 펼쳐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멍'을 때릴 뿐이었다.


한없이 '바다멍'을 때리다 보면 이 길의 끝에 가닿게 되겠지!


걸으멍 쉬멍, 이정표가 보일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던 첫째^^;
묵묵히 걷고 또 걷습니다. 머리에 태양을 이고...




나의 딸들처럼 귀여운 이름의 '토끼섬'


나름 '바다멍'을 즐기며 걷다 보니, 바다 위로 야트막한 섬 하나가 보였다. 바로 '토끼섬'이었다.


토끼섬 : 우리나라 유일의 문주란 꽃 자생지. 한여름에 하얀 문주란 꽃이 온 섬을 뒤덮는데, 그 모양이 토끼 같아서 붙여진 이름.


해녀 동상 뒤편으로, 타버린 수국 뒤편으로 보이는 토끼섬^^


다행히 토끼섬이 보이는 곳에 쉼터처럼 만들어진 정자가 있었다. 다리도 슬슬 아파오고 햇빛도 피하고 싶었던 나와 딸들은 그 정자에 앉아 쉬었다 가기로 했다. 사람, 남편만 빼고.


남편은 모기에 매우 취약한 사람인데, 10월에 어울리지 않는 모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앉아서 쉬다가는 모기에 피를 다 헌납할 것 같았는지(?) 겁에 질려 먼저 출발해 버린 남편...


아니, 토끼섬 앞에다가 토끼 같은 마누라랑 아기 토깽이 두 마리를 놓고 그렇게 쿨하게 가버리기 있음?


하지만 그를 쫓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쫓아갈 힘이 없었다...ㅋㅋㅋ


"아빠, 같이 좀 가자! 왜 먼저 가는 거야?"


아이들도 멀어져 가는 아빠 뒷통수에다 대고 불만만 표할 뿐, 엉덩이를 들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빠는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게! 조금 쉬다가 따라와~"


남편은 점점 멀어져 갔고, 급기야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쉬다 보니 더더욱 이 그늘을 벗어나 땡볕으로 다시 뛰어들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아, 그래서 남편이 쉬지 않고 걸어간 것인가...


끙차! 아기 토깽이 두 마리를 데리고 이 토끼섬 근처를 얼른 벗어나야 했다. 쉬면 쉴수록 완주하는 시점이 늦어질 텐데 그럼 귀여운 아기 토깽이들이 배고픔에 힘들어 할 것이 빤히 그려졌기 때문이다.


"아기 토깽이들아, 토끼섬 그만 보고 걷자! 아빠 토끼 잡으러 가야지~"


(잡히면 가만 안 둔다... 남편 토끼야...)


덕분에 원없이 바라본 토끼섬! 이제 그만 우릴 놓아주오...
뒤늦게 아빠를 따라 잡으려 속도 내서 걷기 시작 / 우리가 올라야 할 지미봉도 보이기 시작!




아이들과 걷기의 치명적인 복병, 화.장.실!


먼저 도망친 아빠 토끼(?)를 잡으러 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다시 걷기 시작할 때부터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급하게 찾았기 때문이다.


올레길 위에는 드문드문 화장실이 있다.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매번 화장실을 찾기 힘든 구간에서만 꼭 화장실을 찾고는 했다. 화장실이 보이면 매번 들러서 볼일을 보게 하는데도 그랬다.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을 때마다 '화장실' 이슈는 가장 시급하고도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첫째는 마음이 급했는지 본인의 휴대폰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아빠, 어디야?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화장실 보이면 전화 좀 해줘! 나도 부지런히 걸어 갈게!"


나도 휴대폰으로 가장 가까운 화장실을 검색하는 중이었는데, 아이에게는 아빠가 더 믿음직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화장실이 있는 하도 해수욕장까지 아주 빠르게 걸어갈 수 있었다.     


하도 해수욕장을 알려주는 간세가 보이자, 아이들은 화장실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하도 철새 도래지를 지나, 대망의 지미봉을 향해!


도착한 하도 해수욕장에서 화장실 이슈도 해결했고, 먼저 도망간 아빠 토끼도 잡았다. 이제는 계속 내 시야에 들어오는, 마치 '어린왕자' 책 속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으로 생긴 지미봉으로 향할 차례였다.


어린왕자 책 속의 '모자' 혹은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모양으로 생긴 지미봉!


걷고 있는 길 오른편으로는 습지와 갈대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여러 마리의 큰 새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곳이 바로 '하도리 철새 도래지'였다.


"우와! 얘들아! 저기 큰 새들 좀 봐!"


나는 너무나 신기해서 아이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런데...


"엄마, 저건 그냥 새 모형이야. 진짜 새 아니고~"


둘째의 말을 듣고 자세히 살펴 보니, 새들은 털끝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나처럼 눈이 나쁜 사람은 진짜 새라고 생각할 만큼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새 모형들이었다.


진짜인 줄 알았던 철새 모형들..ㅋㅋㅋ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지미봉이여!


지미봉 입구까지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무더위에 아이들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럴 때를 대비해 내가 챙겨온 초콜렛이 있었다! 아이들 입에 쏙 넣어주려고 포장을 뜯어 보니 이미 녹아서 흐르고 있던 초콜렛...


그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다 녹은 초콜렛도 맛있다며 행복해 했다. 아이들 얼굴에 달콤한 미소가 번지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지미봉 입구에 다다르자, 한 무리의 올레꾼들이 모여 계셨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아이들을 보시자마자 모두가 놀란 얼굴로 물어 오셨다.


"설마, 너희도 올레길 걷고 있는 거니?"


"네! 저희 이제 아홉 번째로 올레길 걷고 있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도 힘들어서 더는 못 걷겠다고 찡찡대던 첫째가 아주 의연한 얼굴로 대답을 했다. 낯선 어른들이 칭찬해 주시는 게 좋아서 올레길을 걷는 게 더 뿌듯하다고 말하던 첫째였다.


"와, 어떻게 올레길을 걸을 생각을 했어? 너희 정말 대단하다!"


"감사합니다!"


수줍은 듯 말하는 둘째를 보시더니 한 아주머니께서 귤을 몇 개 건네 주셨다. 아이들은 귤을 받아 들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덕분에 비타민C를 충전한 채로 지미봉에 오를 수 있었다.


지미봉에 오르기 직전, 선물 받은 귤로 비타민C 충전 중!


지미봉은 오르막 경사가 꽤나 심한 오름이었다. 앞서 걷던 첫째는 바닥에 몇 번이나 철푸덕 주저 앉았고, 결국 둘째가 먼저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남편은 또 모기떼 습격을 피하려 먼저 올라가 버림 -_-)


"엄마... 나랑 같이 가자... 헥헥... 천천히 올라가고 싶어... 너무 힘들어..."


"응! 엄마랑 천천히 올라 가자! 우리 딸 조금만 더 힘내~"


첫째는 힘들다는 말은 자주 해도, 포기하고 싶다는 말은 결코 하지 않는 아이였다. 한라산을 정상까지 두 번이나 올랐던 아이가 지미봉을 못 오를 리 없었다.


지미봉을 오르며 많이 힘들어 하던 첫째! 첫째는 더위에 취약합니다...


마지막으로 가파른 경사를 아이와 함께 오르자, 이내 숨막힐 듯 아름다운 풍광이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지미봉을 힘겹게 올라올 만한 가치가 있고도 남음이었다.


성산일출봉, 종달리 마을과 감자밭, 제주 동쪽 바다를 한눈에 가득 담을 수 있다.
왼쪽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면,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다.
시시각각 구름이 몰려 들면서,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는 풍경도 볼 수 있었다.


올레길 21코스의 백미가 바로, 지미봉에 올라서 바라본 제주스러운 풍경이 아닐까! 지미봉 정상에서 더 머무르고 싶었으나 날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시시각각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는 맞을 것 같았다. 지미봉을 내려 가서도 조금 더 걸어야 도착 지점이 나오기에, 비가 오기 전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하산을 해야 했다.


지미봉아... 그리워지면 너만 만나러 또 올게! 안녕!




점점 흐려지는 하늘을 보며 끝까지 걷는 길


지미봉을 내려와 도착 지점까지 가는 길은 조금 수월했다. 21코스를 걷는 내내 우리 가족을 괴롭혔던 뜨거운 태양이 쉼없이 몰려드는 먹구름에 가려진 덕분이었다.


처음부터 구름 좀 끼고 흐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올레길의 난이도는 날씨에 따라 정해진다는 걸 다시금 깨달은 오늘이었다.


저멀리 보이는 우도^^ 여기서 마지막으로 쉬었다가 끝까지 걷기로!
뜨거운 해가 없으니, 마지막에는 뛰듯이 잘 걷던 아이들^^




종달 바당에서, 우리 가족의 올레길 여정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만약 번호 순서대로 걸었다면 가장 마지막에 걸었어야 했을 21코스는, 우리 가족이 가을을 맞아 오랜만에 걷게 된 올레길 여정의 찬란한 시작이 되어 주었다.


완주 스탬프를 찍게 된 '종달리'는 제주 동쪽의 끝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올레길 여정은 끝을 의미하는 종달리에서 마무리 되지만, 우리 가족의 올레길 여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코스 완주 성공! 지나가던 올레꾼이 찍어주신 가족 사진, 감사합니다 :)




"엄마, 지금 몇 시야?"


"지금? 12시 30분!"


"우와, 우리 진짜 점심 먹을 시간에 맞춰서 다 걸었네?"


"그러니까! 시간 잘 맞췄네 우리 딸들! 더운데 정말 고생 많았어~"


"완주도 하고 배도 고픈데, 이제 짜장면 먹으러 가볼까?"


"아빠, 나는 땀을 쫙 뺐으니까 얼큰한 짬뽕 먹을 거야!"


"여보, 나는 기력을 다 써서 탕수육 먹어야겠어... 탕수육도 시켜줘..."


우리 가족은 완주의 기쁨을 누리며 맛있는 짜장면과 짬뽕, 그리고 탕수육까지 아주 배부르게 먹고 귀가했다. 식사를 마치고 차에 타자마자 미친듯이 쏟아지던 굵은 빗줄기, 비 예보라도 맞아서 참 다행이었다는^^;



다음 올레길을 걸을 때는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걸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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