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추자도 올레길도 다 걸었는데 오늘은 뭐해?
추자도에서 2박 3일을 머물게 된 우리 가족! 첫날은 18-1코스를, 다음 날에는 18-2코스까지 걸으며 추자도 올레길 완주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마지막날 일정이 애매해졌다.
오전에 숙소를 퇴실하고 나면 제주로 돌아가는 4시 30분 배를 타기까지 시간이 많이 뜨게 된 것! 그러나 작고 아담한 섬 추자도에서 올레길을 걷는 것 외에는 마땅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어쨌든 우리는 퇴실을 해야 했고, 다행히 무거운 짐은 펜션 사장님께서 배 시간에 맞춰 항구로 가져다 주신대서 가볍게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추자도에서의 마지막날, 우선 버스를 타고 상추자도로!
나바론 하늘길 꼭 가요! 안 가면 후회합니다!
첫날에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된, 18-1코스를 완주하신 어느 부부가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나바론 하늘길을 안 가면 후회할테니 꼭 가보라던!
18-1코스를 걷던 첫날, 전봇대에 크게 붙어 있던 올레 안내문을 봤었다. 나바론 절벽길, 가파른 바위 절벽 구간, 난이도 최상 difficult... (ㅇ_ㅇ)
설명만 봐도 어렵고 힘든 길인 게 팍팍 느껴졌다. 심지어 올레길 선택 구간이라니, 굳이 아이들과 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겠다고 판단해 과감히 포기했던 길이었다.
하지만 추자도에 갔으면 반드시 나바론 하늘길에 가야 한다는 수많은 후기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대체 어떤 길이길래 다들 그런 반응인 건지, 못 가본 길에 대한 미련이 계속 남아 있었다.
나바론 절벽길로 가는 갈림길에 붙은 안내문! 무시무시한 경고처럼 느껴진...
추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을래? 엄마 아빠만 절벽길 다녀 올게!
그 어렵다는 추자도 올레길을 두 코스나 이틀 연속으로 다 걸은 아이들에게 또 절벽길을 걷자고 하기엔 미안했다. 그래서 아이들만 두고 우리 부부만 나바론 하늘길을 다녀올까 싶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엄마 아빠 없이는 무서워~ 그냥 따라 갈래!"
둘째는 겁이 많은 편이라 언니랑 둘만 남기에는 무서운 모양이었다. 어제 올레길 완주 후에 코피까지 쏟은 둘째를 쉬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그냥 따라 가겠다니 난감했다.
"아! 나는 또 걷기 싫어! 그냥 엄마 아빠 기다릴 거야! 동생아, 언니랑 같이 여기서 놀고 있자!"
첫째는 안 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며 한참 동안 동생을 설득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끝끝내 고개를 내저을 뿐인 동생 앞에서 그녀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도 절벽길 따라 갈게요!"
이렇게 해서 추자도에서의 마지막날 일정이 정해졌다. 그토록 궁금해 하던 나바론 하늘길을 직접 가보는 것으로! 그것도 우리 아이들과 함께!
나바론 하늘길로 가는 첫 관문,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나무 계단 시작!
엄마, 여기 계단이 너무 많아~ 지옥의 계단이야!
첫째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부쩍 힘들어 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아마 이틀 연속 올레길을 걸은 훈장으로 얻은 다리 근육 통증 때문이었으리라...
게다가 야속할 정도로 맑디 맑은 날씨도 한몫 했다. 아침부터 찬란하게 쏟아지는 햇빛을 머리에 이고 산길을 오르려니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높게 솟아오른 바위 절벽으로 향하는 길!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되는 '말머리 바위' 가끔씩 고개를 들면 이런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은 너무 힘들어서 나바론 하늘길 못 갈 거예요!
갑자기 추자도 첫날에 만난 올레 안내소 직원 분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바론 하늘길은 어른들도 힘들어 하니 웬만하면 아이들 데리고 가지 말라던...
"나바론 하늘길이 그렇게 힘든가요?"
"그럼요! 원래 올레길 정식 코스였는데 사람들이 하도 힘들다고 항의가 많아서 선택 구간으로 뺀 거예요!"
"헉, 진짜요? 그 정도로 힘들다니 애들하고는 못 가겠네요..."
"네, 어른들도 혀를 내두르는 길인데 애들은 더더욱 힘들죠!"
"근데... 저희는 한라산 정상도 두 번이나 올라 갔는데요?"
"어머나! 정말? 한라산 다녀왔으면 여기는 식은 죽 먹기지! 너희라면 올라갈 수 있겠다!"
너무 힘들다는 이유로 올레길 정규 코스에서도 빠진 길이라는데, 아이들과 걸을 수 있을지 자꾸만 겁이 났다. 하지만 한라산 정상을 두 번이나 오른 아이들의 저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힙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는 첫째... 저 멀리서 아빠와 동생이 보내주는 응원을 받으며 힘내자! 드디어! 모든 계단을 클리어하고 도착하게 된 정자 :)
이 맛에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오는 거지!
정자에 앉으니 시원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왔다. 어쩌면 저멀리 제주에서, 혹은 전라도의 여러 섬과 한반도 남쪽 끄트머리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이 이 곳 추자도에서 만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벌써 3일째 보고 있는 추자도인데, 나바론 하늘길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니 더욱 앙증맞아 보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이 맛에 이렇게 높은 곳까지 열심히 올라왔구나 싶게, 나바론 하늘길 위에서 바라보는 추자도는 역시나 질리지도 않고 참 예뻤다.
이 풍경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
힘든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는 법!
정자에서 충분히 휴식한 뒤 다시 길을 나서자,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내리막길이 나왔다. 힘든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도 있다는 삶의 진리를 알려주려는 듯이.
까마득히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며 아이들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아마 고소공포증이 있으신 분은 다리가 오들오들 떨리셨을 것 같다.
까딱 잘못하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은 아찔한 계단! 얘들아, 아래 잘 보고! 천천히! 조심히 가! 아이들은 이제 앞서 걷기 시작하고! 잠시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내려온 가파른 계단이 보입니다. 추자도의 상징! 참굴비랑 사진도 찍고^^ 코끼리 바위도 발견! 진짜 코끼리 같죠? 뚜벅뚜벅 잘도 걸어 나가는 기특한 둘째 :)
엄마, 나바론 하늘길 걷는 거 되게 재밌는데?
걱정했던 게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나바론 하늘길을 즐겁게 걸어 나갔다. 하긴, 올레길 걷는 것보다 한라산 오르는 게 훨씬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들이니까 말 다 했지!
"얘들아, 이틀 내내 올레길 걷고 오늘 이 절벽길까지 걷는데 안 힘들어?"
"아까 올라올 때만 좀 힘들었고 지금은 재밌어!"
"엄마! 어른들이 우리한테 다 못 올라갈 거라고 했잖아! 근데 생각보다 더 쉬운데?"
역시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강한 존재였다.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할 수 있고, 자신이 용기내는 만큼 해내고야 마는 아이들!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쉬고 있던 아이들^^ 아름다운 이 길을 너희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니! 나바론 하늘길, 천국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 나바론 하늘길을 함께 걸어준 나의 천사들^^*
우리 오늘도 잘 걸었는데, 시원한 거 사주면 안돼?
나바론 하늘길을 다 걷는 데는 두 시간도 채 안 걸린 것 같다. 올레길 한 코스를 완주하는 것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라 아이들은 빨리 끝났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이제는 3일 연속으로 힘든 길을 잘 걸어준 아이들에게 달콤한 휴식을 선물할 시간! 상추자도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들러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라페를 사주고, 푹 쉬었다 가기로 했다.
다리가 아파서 축 늘어진 엄마 아빠와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체력이 남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친해진 카페 사장님의 어린 자녀와 카페 앞 정원에서 술래 잡기를 하며 노는 걸 보니^^
나바론 하늘길을 다 걸은 뒤 마시는 시원한 음료는 꿀맛!!
버스 기사님, 저희 여기 있어요! 태워 주세요~
상추자도에서 점심까지 먹은 뒤 다시 하추자도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제주로 돌아가는 배는 하추자도에 있는 신양항에서 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 시간에 딱 한 대만 다니는 버스가 보이자, 우리 집 아이들은 행여나 버스를 놓칠까봐 손을 높이 흔들어 버스를 세웠다.
그녀들의 노력 덕분에 무사히 버스 탑승 완료! 그리고 그 덕분에 제주로 돌아가는 4시 30분 배도 놓치지 않고 잘 탈 수 있었다.
이 버스를 놓치면 한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한다구요! 우리가 타야 할 배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엄마, 바다 위로 해가 지고 있는데 되게 멋있어!
배 타기 직전에야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멀미약을 먹었다. 원래도 멀미가 심한 남편은 배를 타자마자 멀미 기운이 난다며 2시간 내내 갑판 위에 나가 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이들은 중간중간 아빠를 보러 갑판 위를 다녀오곤 했는데, 선실에만 앉아 있던 나를 아이들이 무작정 일으켜 세웠다. 해가 지고 있으니 같이 봐야 한다며 내 손을 잡아 끌던 아이들...
덕분에 바다 위로 해가 지는 황홀한 풍경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마주했을 때 엄마를 떠올려 주고, 함께 보고 싶어 한 딸들에게 정말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게 해준 딸들에게 감사했던 순간! 추자도 여행은 아름다운 일몰을 보며 찬란하게 마무리!
엄마, 나 또 코피 나!
해가 지고 나니 사방이 어두워지고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져서 후다닥 선실로 돌아왔다. 간식으로 귤을 까먹고 있는데, 갑자기 둘째가 코피를 뚝뚝 흘리며 나를 불렀다.
"엄마, 나 또 코피 나와!"
"아고ㅠㅠ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도 또 코피 나네! 추자도 여행이 너무 힘들었나보다!"
"난 재밌었는데! 이상하게 코피가 자꾸 나네..."
어린 둘째가 코피를 이틀 연속으로 흘리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체력이 안되는데 강행군을 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코피 흘릴 만큼 많이 걷게 한 것 같아서 엄마가 미안하네..."
"근데 엄마, 나 코피 흘린 만큼 열심히 걸은 거니까 꼭 사진이랑 글로 남겨줘!"
그리하여 그녀의 간곡한 요청으로(?) 코피를 흘렸던 증거 사진과 글을 이렇게 남기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그녀의 코피 투혼 덕분에 추자도 올레길을 다 걸을 수 있었다!
당신은 소중하고 아름다워라
아이들과 추자도 여행을 계획할 때, 일부러 2박 3일로 일정을 잡았다. (보통 어른들끼리는 1박 2일 일정이면 충분하다.)
이유는 아이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하루 정도는 쉬어야 할 수도 있어서, 그리고 또 혹시나 비가 오면 못 걷는 날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변수를 예상해 넉넉히 일정을 잡았지만, 아이들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잘 걸어 주었다. 그래서 마지막날엔 보너스처럼 '나바론 하늘길'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것!
추자도를 떠나오던 날, 영흥리 벽화 마을에서 문장 하나를 보았다. 추자도의 모든 길을 함께 걸어준 나의 딸들에게 그 문장을 바치며 글을 맺으려고 한다.
나의 딸들아, 너희들은 엄마에게 참 소중하고 아름다워라!
소중하고 아름다운 나의 딸들과 함께였던 추자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