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아니 외출선언문

엄마 미치기 전 개학

by 체리봉봉

두렵고 힘들었던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고 있다.

드디어 2월 마지막주, 반편성과 함께 2024년 학교일정이 나왔다. 두둥- 여름방학이 장작 2달 9월 5일 개학, 겨울방학, 졸업식이 1월 17일 체리는 졸업, 중학생인데 겨울방학을 날린 기분이다. 그리고 방학을 끝내기가 무섭게 여름방학, 덥고 무기력하고 지칠 타이밍에 2달의 방학이라는 게 벌써 두렵다.

"엄마! 나 도망갈래~~~~~"

벌써 고구마 백개 먹은 듯한 답답함이 밀려오지만 제법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 아이들 이발과 새 학기 문구, 실내화 살 준비를 하며 나에게 선물이라도 하듯 봄 재킷을 검색한다. 작년 봄 교복에 이어, 2벌은 돼야 돌려 막지 않겠느냐? 라며 위안을 달래 본다. 그리고 정수리에 솟은 흰머리를 위해 염색약을 장바구니에 담아낸다. '개학만 해봐라!' '새 옷에 염색까지 하고 나도 브런치 먹으러 갈 테야!!!' '그리고 방학 동안 늘어난 살, 다시 빼서 봄, 여름 기분 좋게 다닐 꺼라고!!!'

그리고 하나하나 준비를 한다. 겨울 내내 방학 안에 방을 뒤엎고 정리하려 했지만 계속 귀차니즘에 미루었는데 도저히 미룰 틈이 없다. 이제 개학이고 체리도 6학년이라 자질구리 아이템들이 여기저기 처박히고 굴러다녀 속이 터질 지경이다. "아 오늘은 싫어! 진짜 내일은 하자!!"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뒤엎는다. 체리는 바꾸기 싫다며 툴툴대고 그냥 이대로가 좋단다? '이 돼지우리가 좋다고???'

그러고 드디어 오래 묵은 책들도 정리하고 방 2개와 거실을 뒤엎어본다. 짐을 후다닥 꺼낸 뒤 책장바닥에 수건을 깔고 체리와 힘을 모아 옮기고 끌어낸다. 일단 체리방이 먼저다. 큰 책장을 옮기고 큰 틀을 정리한 후 나머지는 방주인이 정리하도록 체리한테 맡긴다. 하지만 우리 체리는 백만 년이 걸릴 것 같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체리야 이런 자질구리한 거 버려~" "다 짊어지고 갈 수 없어. 아깝고 애정이 있던 거여도 필요 없고 쓸모가 없으면 쓰레기야! 추억만 남기고 정리하자!" 힘들어하지만 체리가 하나씩 정리해 낸다. 그럼 엄만 거실 책을 정리하고, 봉봉이 책장을 정리하고 옮긴다. 허리가 빠질꺼 같다. 이 틈에 거실 소파와 식탁 자리도 옮기고 정리해 본다. 훨씬 거실도 훤 해 보인다. 너무 힘들다. "엄마 밥하기도 싫다~~" 그래도 딸이라고 "엄마 내가 할게...." "김치볶음밥 먹자!" 냉동실에 있는 볶음밥을 전자렌지에 돌려 김과 싸 먹는다. 아 진짜 힘든데 진짜 개운하다. 이걸 왜케 미루어 왔는지... "엄마! 집이 넓어진 거 같아~" "집이 깨끗해졌어!" "엄마도 그래..." 아직도 남은 책들을 싸악 버리고 싶지만 엄마는 꾸욱 꾹 참아본다. 체리는 워낙 구슬부터, 스티커, 여자아이라 그런지 깨작깨작 소품들이 너무 많아 안 보이는 서랍장 안으로 나름 정리하여 쑤셔박으니 훨씬 깔끔하다. 침대패드도 다시 갈고 자기만의 독서자리, 사실 게임존이 생겼다고 좋아하며 정리하기 제일 싫다는 체리가 제일 신났다. "그치? 엄마도 붙박이가 좋은데 이렇게 한 번씩 구조를 바꾸면 다른 집 같고 색다르고 기분전환되고 좋더라...." 이러고 아직 봉봉이 방은 큰 것들만 정리하고 책상에 수북이 쌓아놨다. 그건 안 보이니 천천히 하자 나도 좀 쉬련다. 그랬더니 아이들 둘이 쿵쾅쿵쾅 난리를 치며 정리를 싸악 해 놓았다. 체리와 봉봉이가 정리를 안 하는 것 같아도 본 게 있어서 그런지 또 큰 덩어리만 해주면 자기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것이 기특하다. '엄마가 다 해줄 수 있지만 너네가 해봐야 물건이 어디 있는지도 알고 너희도 너희 집 정리하며 애착이 생기는 거야~ 언제 그렇게 컸니? 6살, 4살이 엊그제 같은데 6학년 4학년에 올라가는 너희들.... 참 걱정되고 뿌듯하고 새롭고....' 엄마신발, 엄마패딩, 엄마옷을 입고 나서는 너희들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든다.

겨울 패딩들을 다 모아 온다. 왜 다 하나같이 하얀지.... 그나마 봉봉이 패딩이 회색, 내 거도, 체리 꺼도 다 흰색 패딩, 흰색 플리스이다. 한번 차라도 타면 긴 패딩으로 차를 닦아주는 센스를 벌여 난처하다. 애벌을 하지 않으면 세탁기를 돌려도 빠나 마나다. 다들 드라이클리닝을 맡기겠지만 난 무식한 엄마니까 대아에 퐁퐁을 짜 물에 섞어 솔로 빡빡 문질러댄다. 이것만 해도 허리가 끊어진다. '제발 우리 한 달, 아니 보름만 깨끗하게 입고 빨아서 처박아 놓자! 엄마 너무 힘들다~ '

이제 신발이다. 크록스를 사시사철 신는 봉봉이 덕에 신고 편한 운동화를 사줬더니 그나마 신는다. 때꾹물 줄줄 흐르는 신발을 문지르며 뽀얀 신발들로 만들어온다. '비라도 오고 운동장에서 한 바퀴 뛰면 다시 더러워지겠지만 뭐 그것 또한 열심히 놀았다는 생각으로 내려놓아야겠지....'

그럼 손톱, 발톱정리다. 겨울 내내 손톱을 길러 마녀할멈 같던 체리의 손톱을 잘라준다. 여자들의 로망이니 긴 겨울 네일이라도 해줄까 싶다가도 해달라는 통에 내 마음을 싹둑 잘랐었다. '나중에 하자! 그거로 돈이 안 써진다. 딸램아~' 그나마도 하도 물어뜯고 찢어 자를 손톱 없는 봉봉이, "봉봉아 손톱 물어뜯지 말랬지? 치아교정 기껏 하는데 이 다시 삐뚤어진다." "불편하면 손톱깎이로 자르고 엄마한테 해달라고 하자 제발~~~"

그리고 매년 책가방과 문구들을 쫘악 꺼내 이름표를 다시 붙이고 색연필과 사인펜들은 나오는지 안 나오지는 체크하여 더러워진 부분을 닦아 다시 담는다. 필요한 것들을 체크하고 문구점, 다이소를 들락거리며 빗자루, 물티슈, 노트를 사고 별 산거 없는데 5만 원을 넘겨 온다. 이상한데? 노트만 샀거 같은데? 3만 원? 노트가 1200원씩이니 10권만 사도 12000원 거기에 색종이 풀, 테이프, 좀 사니 3만 원, 5만 원은 금방이다. 요즘 물가... 그리고 기분 좋게 체리 실내화에 크록스에서 땐 지비츠들을 달고 모녀는 그저 좋다고 신이 난다. 여자들의 심성이란 작은 거에 소녀같이 좋아하고 작은 거에 삐지고...

이제 정말 다 됐나 보다. 기분 좋게 편지 하나씩 써서 필통에 넣어준다. 행복한 새 학기의 시작을 위해, 그리고 일요일 8시부터 양치를 시키고 옷준비, 영양제까지 하나씩 먹으며 10시 전에 고이 누워본다.


사실 너희가 학교에 간다는 사실에 엄마가 제일 설레어~
엄마 내일 가출할 거야!
몇 시간이 가출이라 하기도 민망하다. 외출할 거야!
새로 산 재킷 입고 커피숍에 죽치고라도 앉아있다 올 거야~
엄마 너~~~~~~무 좋아!
살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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