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
우리 아기는 다발성선천이상으로 분류되는 스킨텍(귀젖, 부이개라고도 한다.)을 7개 달고 태어났다. 스킨텍이라는 말도, 스킨텍을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의사는 자주 있는 상황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위험한 수술을 해야 하거나 생명에 지장이 있는 병은 아니고 그저 '떼어내면'되는 '간단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갓 태어난 아기의 얼굴(특히 귀 쪽) 여기저기에 없어도 될 피부조직이 있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며 나 역시도 그랬다.
'떼어내면 되는 간단한 것'
말은 간단했지만 그 말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처음엔 이 상황의 '원인'을 알고 싶었고 '원인'을 알려고 할수록 의미 없는 자책감이 늘었다.
'내가 임신했을 때 음식을 잘 가려먹지 않았나?'
'영양제를 골고루 챙겨 먹지 않아서 그런가?‘
'초기에 집에나 있을걸, 너무 돌아다녔나?'
이런 생각들이 늘어갈수록 결국 원인의 화살은 나에게로 꽂혔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리는 알아낼 수 없는, 알아내도 어찌할 수 없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30개월인 지금도 가끔 떠오르지만 뭐 어쩌겠는가. 세상엔 아는 것보다 모르고 사는 게 훨씬 많은 걸.
어찌 되었건 내 안에서 태어난 우리 아기.
아기를 만나는 모자동실 시간은 매우 설렘과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크고 작은 스킨텍들이 자리 잡고 있는 아기의 얼굴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특히 볼에 있는 스킨텍은 마치 동화 속 혹부리 영감의 혹처럼 달랑달랑거렸는데 동화에서만 보던 모습이 실제로 내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이 스킨텍들이 어딜 가도 '우리 아기다!' 할 수 있는 표식처럼 받아들여졌고 사실상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그렇게 우리가 이 상황에 익숙해질 때쯤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아무래도 눈에 확 띄는 스킨텍을 보고 우리 아기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이상하다고 느낄 것 같았다. '수술이 어렵지 않다고 하니 그전까지는 숨겨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힘겹게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보여주는 것에 고민을 들었다는 것에 동시다발적인 감정들이 밀려왔다. 길지 않은 짧은 고민에도 내 초자아의 공격에 내 자아는 맥을 추리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얼굴에 뭔지 물어보는 지인들에겐 답을 해주고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나서서 설명하지 않았다. 걱정과 달리 갓 세상에 눈을 뜬 아기의 탄생을 축하받느라 행복감을 느꼈다. 그러던 중 가까운 지인들에게 내가 처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간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니 다른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많은 아기들이 선천질환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항문이 없게 태어난 아기, 모반이 얼굴과 몸에 있는 아기, 설소대가 짧은 아기 등등.. 그동안 내가 몰랐던 부모의 세상에선 많은 부모들은 크고 작은 어려움을 꽉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육아는 불가항력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내가 아무리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개월 간 자연분만을 위해 준비했지만 제왕절개를 선택하였고, 예상치 못한 7개의 무지개 스킨텍을 만났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부터 '육아'를 맞이하는 자세였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모호함을 견뎌내는 것은 오로지 나를 몫이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세상에서
어찌보면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