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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서 꽃형님 Jun 30. 2021

자, 미소를 띠고 :-) 개구리 뒷다리~

by 꽃형님

"안~~녕하십니까~^^~~"

"어~~서오십시오~~~*^^*"

"즐~~거운 쇼핑 되십시오~^^/"

"필요한 상품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매장 유형별 알바생 말투를 성대모사하는 유튜브가 큰 화제를 모았다. 이어서 학원 강사, 홈쇼핑 쇼호스트, 나레이터 모델까지 포인트를 콕콕 찝은 성대모사 영상들이 이어졌다. 바야흐로 서비스 경제의 시대, 어디를 가든 '고객 왕'을 부디 모시고자 계획된 상업적 친절함이 제공되고, 이는 해당 브랜드의 차별적 경쟁 우위점으로 간주된다. 소비자는 유형의 상품과 무형의 서비스의 총체적 가치를 구입한 것이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소비자로서 지불한 비용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럼

제조업자 혹은 서비스 제공자인

또 다른 우리는? 

그 의무는?


대학 시절 주유소, 학원, 과외, 카페, 호프, 전화 상담 등 참 다양한 서비스 알바를 해보았다. 불규칙한 스케쥴에 전문 역량이 부족한 학생이라 돈을 그나마 빠르게 버는 수단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칼같이 정확한 부모님의 용돈이 항상 빠듯했던, 고객 입장까지 고려할 주변머리는 없던, 미숙한 청춘의 사회 적응기? 


첫 의류 매장 알바는 백화점에서였다. 머천다이저로 취업했던 첫 직장의 매장(현장) 지원이었는데, 본사 직원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고객 응대 교육을 이수해야 근무할 수 있었다. 고객 서비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백화점이니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이 참에 백화점이 제공해주는 서비스 교육 한 번 받아보자란 꽤 긍정적 마음으로 참여했다. 아직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건, 압구정 갤러리아는 보수적 입장이어서 검정색 머리를 요구하여 아침마다 스프레이로 갈색 머리를 덮어가며 출근했던 일화? 그리고 신세계백화점 교육에서 상품 가격을 꼭 복창하여 고객과 자신이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하여 계산 실수를 방지할 것, 카드와 현금은 두 손으로 주고 받을 것 등...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신경쓰고 반복 실행하는 것이 매장 서비스의 핵심으로 느껴졌다.




귀국 후 첫 직장이었던 Zara도 매장 근무였는데, 수동적인 태도로 지시사항을 수행하던 일개 판매원 역할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지시를 해야하는 매니저 역할로 바뀌니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고객 서비스의 새로운 면면이 눈에 들어왔다. 매장 출근하는 조가 새벽(캐미온: 입고), 아침, 오후로 나눠져있고, 캐쉬어와 세일즈의 출근 간격에 30분 차이가 있어, 매니저는 최소 5개 이상의 미팅이 매일 있었다. 매장 뒤켠 창고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직원들의 출근 여부를 확인하고, 공지 사항을 알려주고, 새로이 입고된 신상품을 소개하고... 회사의 반복적 트레이닝을 받은 나름의 숙련자로서, 서비스 교육을 한다. 


눈빛 연습

미소 연습

인사 연습

무한 반복 


굳어있던 얼굴 표정을 풀고 목소리와 톤을 가다듬기 위해 "아에이오우" 소리도 내어보고, "김치이이이이~", "개구리 뒷다리이이이이이이~" 하며 양쪽 볼의 근육을 풀어본다. 회사에서 정해준 서비스 매뉴얼을 반복하며 머릿속으로 숙지한다. 서로 간에 오른쪽 한 번, 왼쪽 한 번, 그윽한 미소도 지어본다. 세상 친절하게 인사도 주고받는다. 그렇게 매번 몸과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도 내리 8시간을 미소짓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 


해내야 한다. 일이니까. 게다가 고객 접점으로서 매장에서 제공하는 모든 경험은 기업 생존에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8시간 서서 강도 높은 업무를 수행하느라 매일같이 발이 퉁퉁 부어있는 직원들에게, 생글생글 활짝활짝 웃고 상냥한 목소리로 (패스트 패션의) 수많은 고객들을 최선을 다해 응대하라고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누가? ... 바로 내가. 


심지어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관찰하여 평가지에 체크한다. 목소리가 크다/작다, 표정이 밝다/어둡다, 행동이 재빠르다/느리다, 고객 응대 시 미소가 충분하다/부족하다... 함께 일하며 몸의 언어를 속여 자신을 다른 이로 포장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오롯이 개인의 성향이 노출될 수 밖에 없고, 매장 근무에 보다 적합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사람들은... 어쨌거나 발견된다.



나라고 살벌할 평가의 과정을 그냥 뛰어넘었을리 만무하다. 매니저는 본보기가 되어야하는 사람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세상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인 내 뻣뻣한 얼굴을... 미소 가득한 보들보들한 얼굴로 변모시키기 위해 매일 화장실 거울을 보며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조명 아래에서도 생기있는 얼굴을 위해 핑크 볼터치를 한가득 칠하고, 속눈썹을 붙이고... 어느 날, 진상 고객이라도 만나게 되면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은 회의감과 욱하는 심정이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환불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신발을 직원 얼굴에 던졌던 고객과는 업을 내려놓겠단 마음으로 맞서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매장에서 좋아하고 만족하는 대부분의 고객들을 만나면 나와 직원들의 미소와 친절이 상품 이상의 가치를 전달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 적도 많았다. 


어쨌거나, 친절을 기대하는 쪽도 요구하는 쪽도 요구받는 쪽도...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이었다. 스페인 기업 문화에 일본 지도부라는 초기의 조직 환경 또한 특이점을 제공하였을테고... 그렇게 내적 마음과 외적 표현의 괴리가 지속되던 어느 날 온몸의 통증과 함께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이후 내가 행하고 겪은 것이 감정노동이었고, 지독한 우울감과 함께 번아웃으로 귀결되었음을 이해했다. 


감정노동에는 세 가지 그룹이 있다. 장의사, 체납징수원와 같은 부정적 감정노동자, 의사, 판사와 같은 중립적 감정노동자, 그리고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긍정적 감정노동자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 노동은 문제 상황으로 치닫지 않지만, 감정 표현의 매뉴얼에 대한 완벽한 이행을 요구하고 감시할수록 괴리감은 커질 수 있다. 


그러나 감정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나의 진심과 업무 진심은 따로 노는 것이 너무나 정상적이지 않은가? 운 좋게 자아를 실현하여 직업과 물아일체가 되는 삶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자, 이제 매장에서 들려오는 좀 영혼 없는 메아리에도 그러려니 하자. 그들은 자신의 일을 매우 잘 수행하고 있는 중이니까. 소중한 자아의 정수는 집에 고이 모셔두고 출근해도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우리 모두를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소비자이지만 생산자이자 서비스 제공자로도 살아가기에 권리와 함께 의무도 생각하며, 조금은 덜 야박하고 조금은 더 친절해질 필요가 있겠다. 



* 다음 논문의 연구 결과와 함께 합니다.

Lee, S., & Kim, G. (2012). 의류 판매원의 감정 노동에 대한 질적 연구 -패스트 패션 판매원을 중심으로-. 한국의류학회지, 36(5), 534-548. https://doi.org/10.5850/JKSCT.2012.36.5.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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