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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도 하는 변호사 Feb 23. 2024

금옥 씨의 새집 3편

하나의 그림

*지난 줄거리
금옥 씨는 남쪽 아파트 청약에 우연히 당첨이 된다. 하지만 금옥 씨 수중에 있는 돈은 청약 계약금 9000만 원 중 1000만 원뿐이다. 서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자 하는 금옥 씨 꿈은 불가능해 보이는데.... 철이는 돈 한 푼 없는 처지를 비관하며 속상한 마음을 잊기 위해 술만 마신다. 금옥 씨도 속상한 마음은 철이와 다르지 않으나 눈물을 꾹 참고 다시 일일 시험지 독자들이 기다리는 일터로 향한다. 그러던 중 금옥 씨 집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전화의 주인공은 금옥 씨 고모 순옥. 순옥은 늦더라도 금옥 씨에게 꼭 전화를 줄 것을 현정에게 당부한다.

금옥 씨는 전화기 앞에 앉아 고모에게 전화를 할지 말지 고민 중이.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뻐꾸기시계를 바라보니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은 12시 30분을 향하고 있다.

"뚜 띠 띠 띠 띠 뚜 띠" 금옥 씨가 용기를 내어 고모 전화번호를 꾹 꾹 누른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낯익지만 오랜만에 듣는 고모 순옥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고모, 저 금옥이에요." 금옥 씨가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금옥아, 일은 잘하고 왔? 아직 3월 말이라도 밤이 되면 날도 쌀쌀던데. 옷 따뜻하게 입고 다녀야 한다." 자정이 넘게 까지 일하고 온 금옥 씨가 걱정되었는지 고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고모, 아시잖아요. 언제나 씩씩한 금옥이가 저잖아요. 요즘 날씨가 선선하니 좋더라고요. 그리고 일일 시험지 구독자가 어찌나 많아졌는지 시험지를 돌려도 돌려도 끝이 없어요. 덕분에 돈도 이 만큼 많이 벌고 있어요. 이렇게 일하다가는 금방 부자 될 것 같아요" 금옥 씨가 애써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응, 그래. 너는 어릴 적부터 그랬지.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너를 그렇게 예뻐했었잖니." 옥은 오빠 현규가 어린 금옥 씨를 업고 고창 장터를 돌아다니던 모습을 떠올리며 말한다.

"네, 고모. 저희 아버지가 저를 많이 예뻐하셨지요." 금옥 씨도 이제는 멀리 떠나 계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말한다.

"금옥아, 그란데 내 금선이한테 들었다. 너 금옥이 남쪽 아파트 청약 당첨 되었다면서?" 고모가 묻는다.

"네, 고모. 그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넣었는데요. 운이 좋았나 봐요. 덜컥 청약에 당첨이 되었요." 씩씩하던 금옥 씨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래, 축하한데. 금옥아. 근데 청약 계약금 낼 돈은 있고? 금선이 말로는 너희 계약금이 없어 김서방은 속상한 마음에 요즘 계속 술이라던데. 너 금옥이도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들었다." 고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아니에요. 고모. 잘 될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고모, 저 걱정되셔서 전화하셨구나. " 금옥 씨가 괜히 웃으며 말한다.

"금옥아, 예전에 우리가 너희 아버지에게 진 빛을 생각하면 말이다. 지금 당장 금옥이 필요한 청약 계약금 모두 대 주고 싶은 마음이야. 그때 너희 아버지가 고모부, 아니 우리 집 살려 주신거디. 너희 아버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죽었을 거야. 근데 요즘 고모부 병원비 쓰고 나니 우리도 사정이 여의치 않네. 그래도 내가 가진 건 없어도 금옥이 는 꼭 도와주고 싶다." 고모 목소리가 떨려온다.

"에이, 고모. 오랜만에 전화하셔서 그러지 마세요." 금옥 씨가 손을 젓는 듯 말한다.

"금옥아, 금옥아. 아니다. 이거 내가 그냥 주는 건 아니야. 그때 우리가 너희 아버지한테 졌던 빚 갚는 거라니까. 어제 은행 갔다 왔는데 내가 너한테 줄 수 있는 돈을 세어보니 3000만 원이더라. 내일 네 통장으로 3000만 원 보낼 테니 청약 계약금에 보태 쓰라." 고모가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어 말한다.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고모, 아니에요." 고모네 사정을 잘 아는 금옥 씨가 거절한다.

"금옥아, 그래도 받았으면 좋겠. 정 네 마음이 그러면 우선 쓰고 나중에 사정 나아지면 그때 이자랑 잊지 않고 꼭 갚으면 되잖니. 안 갚아도 되고. 늦게 줘도 되고. 금옥 니 편할 대로 하렴. 지금 급한 불 끄는 게 우선 아니니. 그저 나는 금옥이 네가 말이다. 하고 싶은 일 하고, 꿈꾸는 일 이루면서 즐겁게 살기만 바랄 뿐이. 네 아버지도 하늘에서 금옥이 네가 그렇게 살길 바랄 거다. 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에도 내 손 잡으며 말했다. 금옥이 힘들 때 꼭 좀 보살펴 달라고 말이야." 고모가 금옥 씨에게 사정을 설명하며 연신 괜찮다며 말한다.

"네. 알겠어요. 고모. 감사해요. 제가 열심히 일해서 고모한테 꼭 갚을게... 흑.. 흑.." 금옥 씨가 말을 마치지 못한다.  목소리가 잠기며 금옥 씨가 흐느끼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울려 퍼진다.


금옥 씨 아버지의 성함은 박현규. 금옥 씨의 고모의 성함은 박순옥이다. 금옥 씨 아버지는 1남 4녀 중 첫째 아들이고, 순옥은 현의 셋째 여동생이다. 금옥 씨 아버지 현규는 분선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고모 순옥은 우체국 다니는 남자 민철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아버지 현규는 금옥 씨가 태어날 무렵 고창에서 작은 쌀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현규는 열 평 남짓한 공간에서 쌀을 도정하고, 도정한 쌀을 동네 사람들한테 조금씩 팔면서 하루 벌어 살아가고 있었다. 장사 수완이 크게 없었던 현규네 쌀가게는 문을 연지 10년이 지났지만 매달 적자가 났고, 드물게 흑자인 달이 간혹 있었다. 그냥 분선씨 바느질 삯으로 금옥 씨 언니들과 분선씨, 현규 5명이 배를 굶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규 집에 넷째 딸 금옥 씨가 태어났다. 그런데 금옥 씨가 태어난 이후 이상스레 현규의 쌀가게 하루가 다르게 번창하기 시작했다. 고창에서 쌀이 기름지기로 유명한 김씨네와 현씨네 논에서 현규네 쌀집에 쌀을 대기 시작했고, 현규네 쌀집에서 파는 쌀유난히 맛 좋다고 소문이 났다.  현규네 쌀집에는 항상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현규네 쌀가게 고창에 있는 돈을 모두 가져간다는 사실 같은 농담을 했다. 현규는 일을 마치 커다란 가방 안에 그날 벌었던 지폐를 수북이 구겨 담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밤이 깊어지면 분선씨는 현규가 가져온 구겨진 지폐를 다리미로 예쁘게 다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현규네 쌀가게가 갑자기 번창하자 기존의 10평 남짓한 작은 쌀가게로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쌀 주문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현규는 그동안 분선씨가 곱게 다려둔 지폐를 가지고 읍네로 나갔고 다음 날 현규는 더 큰 곳으로 쌀가게를 옮겼다. 그 후로도 현규네 가게에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누구나 현규네 가게에서 쌀을 사고 싶어 했다. 현규네 쌀집에서 파는 쌀의 양보다 사려는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현규네 가게 쌀에는 유난히 윤기가 흐르고 찰졌다. 가마솥에 어떻게 밥을 하든 누구나 한 그릇 더 먹고 싶어 할 정도로 맛있는 밥이 지어졌다.


 금옥 씨가 태어나면서 쌀가게가 번창했고, 현규는 금옥 씨를 복덩이라고 불렀다. 우연의 일치인지 알 수 없지만 금옥 씨가 태어나면서 현규의 쌀가게가 이상하리만치 번창하기 했으니 말이다. 현규는 금옥 씨가 딸들 중 유난히 정이 가고 눈길이 가는 아이라 5명의 딸 중에서 금옥 씨를 가장 아꼈다. 그 당시 현규에게는 사람들이 귀하다고 말하는 아들은 없었지만 우리 금옥이 하나면 충분하고도 넘친다고 현규는 늘 생각했다.


금옥 씨가 바닥을 낑낑 기어 다닐 때부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을 때에도 현규는 늘 금옥 씨를 등에 업고 동네로 장터로 다녔다. 현규의 금옥 씨 사랑은 고창에서 유명했다. 분선씨는 5명의 딸들 중 금옥이만 유난히 편애하는 현규에게 그러지 말라고 매일 이야기했지만 분선씨도 금옥 씨가 제일 좋기는 현규와 다르지 않았다. 현규는 금옥 씨를 등에 업고 쌀가게로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그리고 쌀을 사러 나온 손님들에게 우리 금옥 씨를 복덩이라고 말하며 자랑하고 또 자랑했다. 그래서 현규가 금옥 씨 이름을 지을 때 황금할 때 금자와 푸르스름한 옥을 합쳐 금옥이라고 지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금옥 씨가 태어나고 현규네 가게는 커졌고, 금옥씨네 소 외양간에 소들이 열 마리 넘게 들어찼다. 금옥씨네 집은 매일 같이 고기반찬을 먹었고, 금옥 씨와 자매들은 고운 옷을 입었다. 현규네 곳간에 쌀과 돈이 넘쳐흘렀던 때다.


그러던 어느 날  순옥 씨 남편 철은 서울에서 오랜만에 내려온 친구 민수가 반가워 그가 내민 보증서에 떡 하니 도장을 찍준 일이 있었다. 친구 민수는 정말 고맙다고 남편 민철의 손을 꼭 잡은 후 서울로 떠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 순옥이네 집에 보증서와 관련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다. 그렇게 철이 보증서에 도장을 찍고 약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 남편 민철도 2년 전 민수가 내민 보증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을 즈음이다.


 개나리가 노랗게 피던 봄날, 순옥의 집으로 깡패처럼 생긴 패거리들이닥쳤다. 그들은 순옥의 집을 뒤 집에 있는 돈과 패물을 모두 가져갔다. 깡패들을 막으려던 순옥과 민철은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 깡패들은 피투성이가 된 남편 민철과 순옥에게 친구 민수에게 보증 돈 3000만 원이 아직 남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철에게 다음 주까지 돈 3000만 원을 갚지 못하면 민철의 눈과 장기를 모두 가져가 버릴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순옥네 집에는 다음 주에 온다는 깡패들에게 내어 줄 돈이 한푼도 없었다. 순옥은 여기저기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구해 보았지만 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현규가 순옥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현규는 주저 없이 가지고 있던 소 몇 마리를 팔아 순옥에게 3000만 원을 주었다. 그렇게 현규의 도움으로 순옥과 민철은 깡패들에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순옥과 민철은 현규가 주었던 그날의 도움을 언제나 잊지 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못했던 그때 현규가 슬며시 내민 손길을 순옥과 민철은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옥과 민철이 현규에게 고마움을 표시할 때면 현규는 언제나 니들 도운건 내가 아니라 복덩이 금옥이라고 버릇처럼 말하고는 했다.


   


"금옥아, 울지 말어. 그냥 지금처럼 잘 살아라. 그리고 네가 지금 가진 것이 없다고 마냥 포기하지 말아라. 사람 일이라는 거 모르는 거더라. 우리도 니 아버지가 그렇게 도울 거라고 생각 못했다. 분명 우리처럼 또 너를 도울 사람이 있을 거야. 니 아버지랑 네 엄마가 쌓아 놓은 덕이 워낙 많으니 분명 나타날 거야." 고모 순옥이 떨리는 목소리로 금옥 씨에게 말했다.

"고모...." 금옥 씨는 울며 말을 잇지 못한다.

"금옥아, 어서 자라. 밤이 늦었다." 고모 순옥이 다정하게 금옥 씨에게 말하며 전화를 끊는다.  


고모 순옥과 전화를 끊은 금옥 씨가 가만히 창 밖을 바라본다. 집 앞을 막고 있는 까만 콘크리트 벽 위로 하늘 끝 둥그런 달빛이 보인다. 그 좁은 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달빛이 금옥 씨를 노랗게 비추고 있는 있는 밤이다.


* 이미지 출처:pinterest

*다음 주 서울 출장 관계로 연재를 쉬어 갑니다. 다음 주에 찾아오겠습니다. ^^ 감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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