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이테 Oct 30. 2024

싸락눈 위의 발자국

유년의 은채 이야기 - 용제살이 5

하숙집 주인 말로는 낯선 사내가 골목에서 하숙집을 기웃거리다가 사라지곤 한다고 했다.  말대로라면 석민이 경찰에 끌려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 같아서는 하숙집에 몇 달이라도 머물면서 아들 소식을 들을 때까지 기다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만약 석민이 그렇다면 경찰이 다시 들이닥치는 것은 시간문제, 아들 대신 아버지라도 끌고 가는 상황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아줌니, 우리 아덜 석민이 그놈이 보통 자슥이 아녀요. 이날 여지껏 부모 말 한 번 거스른 거 없는 징허게 착한 아덜여요. 천하에 이런 아덜 다시없어요. 흑흑.. 혹시 우리 아덜 그림자라도 보시믄 절대,  경찰들 헌 티 알려주지 말고 곧바로 저헌티 연락 부탁 좀 헙니다."


급히 하숙집을 떠나 성북동 사촌형 집으로 가서 염체 불구하고 며칠을 머물렀다. 매일 하숙집에 전화를 걸고 석민의 거취를 애타게 기다렸지만 상경한 지 닷새가 지나도록 소식을 알 길이 없었다.

 

탱자나무집에 석민의 소식이 전해졌다. 집안의 자랑이요, 기둥이었던 아들 소식에 입암댁은 망연자실 드러누웠다. 날마다 석영이 울며 서울로 전화를 넣었다. 수확철은 점차 다가오는데 농사일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어 원중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서울역을 향했다. 상경할 때와는 달리 서울이라는 곳이 감옥보다 무서운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에 차는 정신없이 달리고 공기는 매캐하니 삭힌 홍어 먹은 것처럼 목이 화끈거리는 데다 사람들은 얼마나 바쁜지 제 갈길 가기 바빴다.


차장에 흐르는 풍경 위로 겹치는 원중의 얼굴은 그 새 강산이 한 번 바뀐 듯 폭삭 꺼진 눈두덩이와 볼우물이 더 깊게 파였다. 석환의 일을 그르치고도 국회의원 황금배지에 눈이 돌아 석민의 진로를 반대하고 욕심을 부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지난 5월에 다녀가고 나서 넉 달을 보지 못했다. 그때도 서울에 급한 일이 있으니 올라가야 한다고 겨우 하룻밤 머물고 상경했었다. 휴교령이 내려진 상태였는데 학교에 급한 일이 뭐가 있었을까?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그때 붙잡아 둘 것을 이래저래 후회되는 일로 원중의 마음이 파헤쳐진 두엄자리 같았다. 경찰에 쫓기다 몽둥이로 맞고 피를 철철 흘리며 끌려가는 석민의 모습이 순식간에 떠올라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녀, 절대, 절대 그런 일은 없을거여. 그래서는 안된다니께. 석민아 지발 살아만 있거라. 그거면 됐니라. '

거친 수염이 희끗희끗한 원중의 볼우물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름돌로 꼭꼭 눌러놓은 은밀한 일이 순식간에 봉인해제되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보릿고개도 넘기 힘들던 원중이 맨 주먹에서 시작해 장화리에서 말마디깨나 하는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약삭빠르고 수완이 좋은 덕었다. 계화도 간척지 사업에 끼어들면서 계화도에 혼자 방을 내서 이태를 머물렀었다. 그때 청상에 과부가 된 여인에게 마음고 그 일로 얻은 자식이 석영이었다. 석민이 태어난 이듬해였다. 석영을 위해 살던 곳을 떠나 수리시설이 잘 되어있는 장화리 논, 밭을 사들이고 새터마을 탱자나무집에 터를 잡았던 것이다. 입암댁 마음에 대못을 박은 원중은 그때부터 가장의 목소리에 힘을 잃고 입암댁의 기세에 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중이 재산을 넘기고라도 지켜주고 싶었던 단 한 가지는 석영의 출생 비밀이었다. 비밀을 무덤까지 지키는 대가로 입암댁 친정 동생들이 줄줄이 학비걱정에서 놓여났다. 이런 비밀을 간직한 원중도 입암댁의 표독스러움에 치를 떨곤 했다. 핏줄이 아닌 석영에게 입암댁이 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원중 앞에서 드러내놓고 구박은 못해도 석영이 어서 탱자나무집 떠나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석영이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는 반갑기까지 했다.


마을 어귀 여장군 같던 입암댁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자리에 앓아누웠다. 인면수심인가 하던 입암댁도 자식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원중은 이게 다 그 죗값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새끼 중헌지 알믄 남의 새끼도 중헌 것인디 그동안 경이를 독살스럽게 구박혔으니 일이 잘 될 리가 있나.'


석환이 그리 됐을 때도 이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으나 입암댁에게 씨알도 안 먹히는 말이었다. 되려 경이를 더 구박했다.  서울에 다녀온 원중은 입암댁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집안에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뭔 이유가 있는 것이여. 석환이 일이 생겼을 때만 혀도 그런갑다 혔는디 석민이까정 일이 이렇코롬 되어부렀고. 이러다가 자식 다 그르치고 말거여? 석영이 저것도 요시 뭔 일이 있나 낯짝이 거무스름허니 어수선혀서. 맴이 여간 상허는 것이 아녀."

"이유는 뭔 이유여요? 나처럼 경우지게 사는 사람이 상천지에 어딨다고. 내 새끼 석민이가 어딨는 중도 모르고 살었나 죽었나도 모르는디 시방 염장 지르는거여 뭐여?"

"내 말 명심혀. 앞으로는 경이 구박 그만 허고 내년이라도 경이 학교 보내야 겄어."

원중의 결심은 입암댁 입에 거품을 물게 만들었다.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석영의 일로 가슴에 대못이 박힌 입암댁이다. 그 일로 책잡힌 원중은 사사건건 입암댁을 맞설 방법이 없었다.




가을 용제들녘에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다 분주했다. 거두는 손길대로, 알알이 꽉찬 열매대로 모두 숨죽이고 제 각각 소임을 하며 가을의 풍요를 만들었다. 햇살이 휘돌아나가는 곳마다 가을물이 뚝뚝 흘러들었다.


추수를 마쳐가는 들판에 서늘한 바람이 가득 찼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대숲이 담쏙 안고 있는 탱자나무집. 그 많은 농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는 식구들 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고즈넉했다. 그러나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구질구질한 한숨이 더께더께 탱자나무집 마당에 굳어졌다. 사흘거리 고주망태가 되어 청춘을 어둠침침한 다방 내실에서 보내는 석환과 생사를 알 수 없는 석민으로 인해 활기를 잃고 적막강산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탱자나무집에는 누구인지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석민을 찾는 전화가 여러 번 왔었지만 입암댁은 여기서도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밖에 대꾸할 수 없었다. 그 전화 뒤끝에는 항상 입암댁의 통곡이 이어지고 통곡이 마무리될 즈음에는 맥없이 경이를 구박했다.


가을이 지나면서 석영의 학교 친구들이 취직자리를 얻어 외지로 흩어졌다. 석영에게도 학교에서 좋은 직장을 소개했지만 번번이 원중이 반대했다. 성북동 사촌 소개로 여의도 증권회사에 줄을 대어 석영의 직장을 마련하고자 했던 애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었다. 석민의 일로 원중은 석영을 서울로 올려 보내지 않을 작정이었다. 집에서 통학할 거리쯤에 있는 도청소재지의 여자전문대학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중과 달리 입암댁은 애초 계획대로 석영이 서울로 올라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탱자나무집 뒷마당 대나무 숲이 겨울을 재촉하는 손돌바람에 서걱거리며 거침없이 흔들렸다. 바지랑대를 위로 치켜세우면 낮게 드리운 먹구름이 바지랑대에 걸려 무겁게 쏟아져 내릴듯한 날씨였다. 빨간 까치밥만 남겨둔 감나무의 몇 잎 남지 않은 앙상한 가지가 거센 바람에 뚝 부러졌다. 금방이라도 진눈깨비가 들썩이고 흩날릴  채비를 서두르는 계절이다.


한 해의 농사가 다 마무리되었지만 경이의 할 일은 끝도 없이 밀려있었다. 자기 키만 한 쌀키로 키질을 해서 콩에 섞인 잡풀을 거르고 밤마다 방바닥에 펼쳐놓고 콩을 골라야 했다. 쪼개진 콩과 온전한 콩을 분리하는 작업이었다. 입동이 지나면서부터는 구들장에 불을 넣어야 그나마 허술한 흙벽틈새로 드는 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소설이 다가와도 입암댁이 창고방 구들장에 불을 넣지 못하게 했다. 땔감을 아끼려는 속내를 바닥이 따뜻하면 콩이 마른다는 얼토당토않은 핑계로 덮어씌웠다. 냉골바닥에서 콩을 고르자면 손이 시려 곱아오고 졸음은 밀려들었다. 까만 콩을 바닥에 펼쳐놓고 고개 숙여 콩을 한참 고르자면 까만 콩 알갱이가 공중에 둥둥 떠다녔다. 부유하는 콩의 허상과 졸음을 고개 도리질로 쫓아내도 어느새 졸음은 엿가락처럼 경이의 눈을 붙들고 늘어졌다. 졸음을 이겨내려 눈을 부릅뜨면 공중에 콩의 허상이, 눈을 감으면 고개가 자동으로 끄덕끄덕 떨어졌다. 돌아오는 용제 7일장에 내놓아야 하니 틀림없이 내일 밤까지 일을 마쳐야 한다고 입암댁이 못을 박아놓았다.

졸음을 이기려 방문을 벌컥 열고 찬바람을 들였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잠을 깨려면 어쩔 수 없이 벌떡 일어나 변소라도 다녀와야 했다. 엉덩이를 까고 오줌을 누고 있으면 찬바람에 엉덩이가 시려올 정도였다. 몸에서 오줌이 빠져나가니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잠이 확 달아났다. 싸락눈이 흩날렸다. 양손겨드랑이에 어긋끼고 서둘러 창고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얼마 가서 잠은 또 쏟아졌다.

추수를 마친 장화리 먼 들판에서부터 이는 바람소리만 휘인 휘인 탱자나무집을 휘감는 밤이었다.

졸음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소리가 끄으응끄으응 어미개가 보고 싶어 안절부절못하는 강아지 소리처럼 들렸다. 삼철이네 개 백구가 낳은 새끼 강아지 장구를 데려온 날 밤에 들었던 소리와 흡사했다.

'바람이 어찌 그런 소리를 내는지 별일이네.' 생각했지만 그 소리는 경이를 더욱 깊이 잠 속으로 불러들였다.

일이 바쁘고 고되니 경이의 한글 공부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가끔 석민이 주고 간 검은 표지의 책을 떠들어서 아는 글자를 찾아볼 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좁쌀같은 싸락눈이 장화리 들판을 다소곳이 덮었다. 김장을 서두르지 않은 여염집 텃밭 푸성귀들의 푸름을 다 덮지는 못할 만큼이다. 작두샘가 양동이에 받아두었던 물에 투명한 살얼음이 졌다. 올 들어 첫얼음이었다. 탱자나무집 식구들이 쓸 세숫물을 데우느라 새벽 댓바람부터 경이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야 했다. 볏짚단을 가지러 행랑채 헛간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싸락눈 위에 난 발자국을 발견했다. 크기로 보아 남자 어른의 것이었다. 석민의 행방이 묘연한 이후 탱자나무집 사립문은 밤낮 열려 있었으니 누군가가 밤에 다녀갔다는 것이다. 경이가 지난밤 변소에 다녀올 때까지는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었다. 더구나 헛간 기둥에 매어놓은 장구조차도 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발자국은 석영의 방 쪽으로 향해 있었다.

물을 데우고 마당의 싸락눈을 쓸어냈다. 경이는 석영이 일어나면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입암댁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입암댁이 알아서 좋을 일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뭐든 알게 되면 집안이 시끄러워졌다. 그 뒤끝이 좋지 못한 결과에 이르면 어김없이 경이의 매타작으로 돌아갔다. 온갖 구실을 다 삼아서 결국 경이가 모든 불화의 원인이 되곤 했다.

다른 날은 벌써 일어났을 석영이 오늘은 늦잠인지 기척이 없다. 방문 앞에서 석영을 불렀다.




이대로 겨울이 시작되는가 싶을 정도로 춥던 날 새벽 석민은 그렇게 마당에 발자국을 남기고 떠났다.

부엌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반대편 방을 쓰는 석영의 방문 앞 작은 툇마루에 하얀 봉투가 놓여 있었다.

"나의 소중한 동생 석영아,
작은오빠다. 그동안 온 식구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을지 미안한 마음뿐이다.
오빠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피할 길이 생겨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단다. 집에 한 동안 신분을 밝히지 않은 전화가 왔을 거다. 이 일은 걱정 안 해도 된단다. 오빠가 집안 식구들 안부가 궁금해 부탁해서 한 전화였다. 그렇게라도 식구들 안부를 듣고 싶었다. 매사에 전화도 편지도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 행여 여파가 장화리까지 미칠까 봐 마음 놓고 연락을 할 수 없었지.

8월에 있었던 서대문 네거리 시위에서 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붙잡혀 갔어. 오빠도 그 자리에 있다가 경찰에 쫓기던 중 백련산으로 숨어들었어. 거기서 간신히 실신 직전까지 숨어 지냈지. 계절이 늦여름이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어. 비렁뱅이나 다름없는 행색에 쓰러져 있던 나를 산으로 기도하러 오신 최목사님께서 발견하시고 도움을 주셨단다.
사실, 서대문 시위 현장에 나가게 된 건 순전히 내 뜻이 아니었어. 결핵으로 몸이 아픈 친구가 시위하러 나가는 것을 만류하다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이고 엉겁결에 경찰에 쫓기게 되었지.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던 친구들에게서 내 이름을 들었을 것이고 경찰들이 나에 대해 샅샅이 조사했겠지. 그리고 하숙집을 급습했지만 다행히 오빠 방에서는 위험한 서적이나 물건이 발견되지 않은 모양이야.
그런데 지금 시국이 죄 없는 사람들도 여차하면 다 끌고 가는 험악한 상황이란다. 신군부가 계엄포고령을 내리고 삼청교육대라고 해서 군대식 정치범 수용소를 설치했어. 이 조치로 연행된 사람들은 깡패, 조직폭력배 외에도 무고한 일반인, 학생들까지 포함되어 있어. 들리는 말에 의하면 민심을 얻으려는 정권 차원의 조치였다 거나 인원수를 맞추려고 억울하게 잡혀간 사람들이 있다는 등의 말이 많아.
이런 세세한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구나. 너는 이런 내용은 알 필요 없는데 말이야.
어쨌건 죄가 없어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인데 더구나 시위 현장에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죄가 될 수 있는 문제였지. 그래서 집에도 하숙집에도 연락을 할 수 없었어. 오빠로 인해 집안 식구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길까 봐 많이 두려웠어.
최목사님께서 사람을 보내 하숙집 골목을 배회하며 동정을 살피셨는데 아마도 하숙집에서는 경찰로 오인하셨을 수도 있었을 거다.
최목사님 도움으로 몸을 치료하던 중에 친구에게 결핵이 전염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8월 28일에 전국 대학 휴교령이 해제되어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데 결핵증세가 점차 심해져서 복귀할 수 없었어. 꽤 심각한 상태까지 진행되었지만 치료 속도는 더뎠어. 다행히 두 달을 넘기고 나니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어.
오빠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지만 정치에는 뜻이 없는 사람이야.
이 문제는 나중에 아버지와 따로 의논하려고 해.
지금 나는 강주로 내려왔어. 최목사님 소개로 강주 외곽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지내고 있어. 지금까지 집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면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 해 안으로 이곳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
이 편지를 읽거든 네가 아버지께 내용을 잘 읽어드려 주기를 부탁한다."


싸락눈이 내려앉은 감나무 까치밥에 마알간 햇살이 새색시처럼 살포시 비추었다. 얼었다 햇살에 풀린 간지러움 때문인지 홍시가 더 이상 나뭇가지에 매달리지 못하고 싸락눈 위로 곤추박질 쳤다. 까치가 화들짝 놀라 푸드덕 날아오르는 그날은 소설(小雪) 아침이었다.


                    





이전 10화 흔적과 기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