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부

by 라이테

마침내,

소복하게 눈이 내립니다.

종아리를 덮는 외투와 털신을 꺼냅니다.

밤 새 속앓이를 들숨으로 머금은 호흡은

어둠 속 날숨으로 체념(滯念)을 풀어놓습니다.

설렘과 한숨이 교차합니다.


새벽창에 닿을락 말락 입김을 올립니다.

손가락을 꺼내 흐릿해진 풍경 안쪽에

곡선을 무겁게 끌어 이름 하나 새깁니다.


첫눈 위 첫 발자국을 찍으며

길을 나섭니다.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엇갈림길 정지 신호등이

심장을 돌고 도는 붉은 피 같습니다.

서늘한 마음을 빠져나가는 이름 하나가

얌전한 눈길 위에 붉게 흩어집니다.


여태 눈을 기다린 것은,

안부를 전하려는 구실일지도 모릅니다.


주인이 오래 비우고

빗장도 풀려있는 대문을 밀고 들어가

수북한 눈을 밟고 방문 하나를 엽니다.

시간이 흘러도 멈춰있는 방,

바래지지 않는 시어 뭉텅뭉텅

동백꽃처럼 흩어져 있는 곳.

폭설, 시가 흘러내리지 않게

가만히 들어 올립니다.

붓을 쥐었던 이의 온기가 희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온통 흑백인데

사운거리는 시인의 잔향이 그리워

돌고 돌아나갈 안부를 하얀 스크린위에


끝내 띄워야겠습니다.



박은주 콘서트 -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몰도바 연주






주)

체념(滯念)-풀지 못하고 오랫동안 쌓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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