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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김장 소식

가을, 계절의 안부

by 체리


얼룩덜룩하던 은행과 단풍 완연히 샛노랗고 새빨갛게 변했다. 얼마 전 아주 짧게 쏟아진 비 덕에 회색빛 거무죽죽한 보도블록 위로 샛노란 융단이 깔렸다. 둔탁한 검정 부츠 아래로 노란색 융단이 깔려 폭신하다. 종종 포인트처럼 빨간 별이 박혀 있어 살풋 웃음이 났다. 열매일 땐 구린 냄새를 풍기던 놈들이, 신기하게도 구수하고 달콤한 은은한 내음을 풍기고 있다.


이번 가을은 참 덥다며 징징대는 인간을 놀리듯 하루 만에 겨울 기운이 가득한 바람이 서울 하늘을 채웠다. 왜 이렇게 마음 쌀쌀한 계절이면 자연스레 엄마가 떠오르는지, 그게 이 공기와 온도 그리고 습도 때문인지 샛노란 은행의 모습 때문인지 모르겠다.


우리 엄마도 가을 단풍 참 좋아하는데-

나는 매 계절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능력이 출중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 매 계절마다 조금씩 변화한 자연에 ‘어머-’하고 누구보다 크게 소리치는 사람 아래 자랐다. 그녀 덕분에 절기의 변화, 자연의 아름다움 따위에 매우 민감한 어른이 됐다. 생각이 이즈음까지 미칠 때면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 한다. 요즘 더 소식 없는 딸에게 자꾸만 서운해하는 엄마가 떠올라 괜히 전화를 걸어본다.


엄마, 오늘 단풍이 너무 예쁘네


단풍을 핑계로 화두를 던지자 나보다 더 새삼스럽게 들뜬 목소리가 돌아온다. 한 때는 엄마의 이런 유별남이 밉기도 했다. 나는 온 세상에 우울과 고민을 다 안고 사는 것 같은데 엄마의 일상에는 그늘 하나 없는 것 같아, 질투가 났달까.


이런저런 이야기로 뜸을 들이다 이번 주말에 집에 내려갈까? 죄책감에 어린 질문을 던지고 만다. 늘 서운하다 말하는 그녀의 표현과 달리, 여전히 그녀의 주말은 약속으로 빼곡했다.



어머, 이번 주말에는 친구랑 김장하기로 했는데-


가서 손이라도 붙이겠다는 나에게 엄마는 됐다고 됐다고, 딸의 고생을 만류한다. 친구랑 해야 더 재밌다고, 대신 올 해는 김치를 부쳐주리라, 얼마나 필요한지 묻는다. 간편하다는 이유로 아침마저 단백질 쉐이크로 대체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일주일에 집에서 먹는 곡기가 세 끼도 채 되지 않는 나는 됐다고 말하려다, 엄마표 김장 김치가 얼마나 귀한지 생각한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엄마가 해준 김치를 먹을 수 있을까. 수키로의 배추를 나르고, 수가지의 제철 과채를 사 소를 담가 묻히고 옮겨 닮고, 그 고된 노고를 할 수 있는 정정함의 유효기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 앞에서 딸을 위해 만든다는 설렘에 가득할 순간을 떠올리며 부러 흔하지도 않은 김치를 요구한다.


섞박지랑 물김치가 먹고 싶네


이 척척한 서울 땅에선 찾기도 힘든 섞박지와 물김치가 먹고 싶다고 말한다. 고향에서나 조달할 수 있는 특수한 군의 김치들. 파는 김치는 영 못 쓰겠다- 덧붙이며 그녀가 조금 우쭐할 여지를 남겨둔다. 도통 뭘 해달라, 뭘 사달라 하지 않는 내가 무언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엄마는 아주 기뻐하곤 했다. 역시나 한껏 올라간 목소리로 그래그래, 섞박지랑 물김치, 한번 해볼게! 하는 씩씩한 답이 돌아온다.


“그냥, 되면 해주고…”

혹여나 엄마가 부담을 가질까 무뚝뚝을 연기하는 장녀는 무던한 목소리로 답하고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여전히 눈앞으론 빨갛게 미처 다 물들지 못한 화살나무의 잎들과 샛노란 은행이 누구보다 아름다운 그라데이션 컬러로 깔려있다.




분명 이 도시에도 매 절기가 동일하게 지날 텐데 이상하게 서울에선 절기의 변화가, 또 그 절기에 맞는 사람들의 일상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스르륵 시간이 지나는 것 같다. 매일 아침 소름 끼치게 멍한 표정으로 모두가 손바닥만 한 핸드폰에 눈을 고정하고 바쁜 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한다. 나도 그 무리에 휩쓸려 지하철과 버스에 오르내리며 사람들의 옷 차림새로 대충 계절의 흐름을 가늠할 뿐이다. 겨우 1시간 반만 달려 달려도 도착하는 지방에선 모두가 절기에 맞는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왜 서울은 항상 그대로일까, 잠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도시엔 제대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들이 없으니까.

정말 편협하고 자기중심적으로 결론짓고 만다. 서울에 사는 우리는, 다들 발바닥 두쪽 붙이고 사는 것도 버겁고 힘드니까. 늘어지게 김장 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배추를 절이고 자시고 할 여유 따윈 없다고 결론을 내버린다.


그럼에도 10년 뒤 나는,
뻘건 방수 돗자리와 다라이를 펼쳐두고
친구와 둘러앉아 도란도란 김치를 만드는
서울의 유별난 인간으로 남고 싶다고 생각한다.



함께 둘러앉아 집 앞마당에 쏟아진 낙엽의 색깔이 얼마나 예쁜지, 또 그중 예쁜 놈을 하나 주워 곱게 말려 건넬 수 있는 종류의 세상에 살고 싶다고 다짐한다. 이 글을 써두고 잠시 고민하는 사이, 가을이라 표현하기 무색한 추위가 찾아왔다. 뾰족하고 차가운 겨울 공기에 폭닥한 패딩을 둘러매며 오가며 두 눈으론 단풍과 은행을 쫓는다. 더웠다, 추웠다 변죽을 부리는 날씨에 단풍과 은행은 나뭇가지를 악착같이 붙잡고 한주 더 제 모습을 뽐내고 있다. 덕분에 ‘아직도 단풍이 예쁘네. 이번주가 정말 마지막일 거야’ 하는 핑계로 엄마에게 자꾸만 전화를 건다.


딸 없이도 씩씩하게 친구와 김장을 마친 엄마는, 본인이 나를 위한 김치를 담가 줬으면서도 미리 미안하다고 했다. 너를 생각한 마음만 봐달라는 엄마의 말에 울컥하고 말았다. 계절에 맞추어 바삐 따라가고 있는 고향의 엄마와 달리, 나는 여전히 이전의 계절을 그리며 서 있다.


IMG_9389.PNG 엄마가 나만을 위해 1:1 맞춤으로 만들어준 김치, 한 해를 얼마나 풍족하고 시그럽게 보낼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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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은 유독 길다. 추운데 여전히 얼룩덜룩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의 모습 덕분에 최애 계절이 가을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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