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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이제 정말 그만할래

엄마를 위해 살아온 수많은 딸들을 위한 편지

by 체리


미래를 그리고 싶은 짝을 만났다. 모두가 식장을 먼저 알아봐야 한다기에 2년 후를 그리고 있던 시점에 식장을 알아보게 됐다. 이 사람과의 미래를 그린 것은 맞지만 어떤 계약의 형태로 확실하게 종지부를 짓는 행위를 하며 덜컥 ‘정말 결혼하게 됐나’하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어차피 내 처지도, 짝의 처지도, 집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태는 아니었던지라 그냥 둘만 씩씩하게 사랑하면 되는거라 생각했다. 벌써 자취방 이사도 4번이 넘도록 홀로 해냈고, 모든 집을 혼자 확인하고 계약 했던터라 이제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결혼 역시,
그렇게 진행하면 되는줄 알았다.


엄마는 늘 스스로 인자한 사람인 것처럼 표현을 했고, 자신이 배우자를 잘못 고른데에 대한 후회로 배우자의 ‘인성’만을 운운 해왔으니까 나의 배우자에게도 동일한 조건과 잣대가 드리워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얼렁뚱땅 누구는 몇 달을 대기해서도 예약하기 힘들다던 홀을 계약하고 여러 미션들을 하나씩 해나가던 중에 엄마의 전화가 왔다. 생각지도 못한 짜증섞인 목소리와 ‘너 정말 결혼할거냐?’는 질문과 푸념섞인 말이 쏟아져 나왔다. 엄청 착한 딸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된 딸도 못 되는 나는 엄마의 목소리에 몇 일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체 왜?

기어코 엄마는 짝을 고향으로 데려오라고, 다시 한번 단단히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엄마는 부러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며 ‘자네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노라고’, 남인 내가 들어도 상처가 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짝에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다. 워낙 힘들게 날 키우셨으니까, 엄마 마음을 이해해보려 몇 밤을 뒤척이며 고민했다.


대체, 엄마가 왜 그랬을까?

엄마의 객관적인 표현들이 그른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조건들이 사랑과 마음이 가장 큰 무기가 되는 결혼 시장에서 받아들여 질만큼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불편한 마음으로 짝을 도로 올려 보내고 엄마와 대화를 해볼래도 영 대화가 안 되니 답답했다.


늘 속으로는 음흉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직접적으로 나쁜 역할을 자처하지 못하는 엄마, 그러고는 몇년동안 그 일을 곱씹게 해서는 딸 마음에 작은 못을 수차례 박아대는 엄마. 어릴 땐 막연히 모든 것이 좋고 아름답게 느꼈던 그녀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많은 것이 부끄럽고 싫어진다. 떨어져 산 기간이 얼마인데도 소름끼치게 어떤 부분을 그녀와 닮아가고 있는 내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문득 지난 10여년간 그녀가 늘 애매한 어깃장을 놓아 내 마음에 얼마나 많은 가시를 꽂았는지 떠올렸다. 꽃분홍색 꿈 속에 살아가는 동안, 그녀의 그런 모습들을 한동안 잊고 있었다. 잊을래도 일에 집중이 안 될만큼 일상이 휘청였다. 그러다가도 한번도 조건에 대해 떠올리지 않았던 짝에 대해서도 반문하는 마음이 싹 텄다. 맞아, 얘 이런 부분은 아쉬운데- 이런 생각이 싹 틔울 때 알량하게 뒤집히는 내 마음에도 실망이다.



곱씹을수록 억울했다.


이 짝을 만나기 전, 내가 얼마나 수차례 선이든 중매든 알선하라고 말을 했던가. 그렇게 본인이 원하는 조건이 있었다면 본인이 다리를 이어주면 될 것이 아니었던가. 한번 더 채근하는 엄마에게 이렇게 쏟아내자, 엄마는 그제야 본 마음을 말했다.


어디, 지금 네 조건이 좋기나 하니?

좋은 대학을 나왔으나 대기업에 다니다 때려친 사람일 뿐이며, 사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직업이라 하기 모호하게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는 것 등의 이유를 대며 내 존재를 깎아 내렸다. 다시금 마음이 와장창 무너졌다. 엄마는 항상 내 도전을 그저 실패로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내가 나로 사는 것을 엄마는 늘 부정하고 있었구나, 싶어 피붙이라 떼어낼 수도 없는 존재인데 항상 날 그렇게 생각해왔다는게 비참하고 울적했다.



아, 내가 끊어내야 할 존재가 엄마였구나.


많은 이들이 성인이 되면 가장 끊어내야 할 존재가 엄마라고 말할 때에도 나는 ‘나와 엄마의 관계는 공고하니까’라는 말로 애써 나의 관계를 정의하려 해왔다. 그 시간에 대한 엄청난 배신감.


어떻게든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 한참을 고민하다 이제 더 이상 나의 삶의 결정에 엄마를 넣어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오은영 박사님을 포함해 많은 육아 관련 전문가들이 말했듯 나는 이 세상에 나와 온전하게 자란 것만으로, 부모에게 해야할 효도를 다한 것이라고. 여전히 그녀의 인정과 그로부터 존재감을 찾는 내가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정말 마음으로도 철저히 독립해야 할 때가 진작에 온 거였네.



엄마, 난 이제 인정받는 딸,
당신을 위해 사는 삶은 그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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