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4년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며

다가는 2025년에게 통보하는 바!

by 체리

많은 일이 있었다는 전형적이고 진부한 표현으로 미처 담아내기 힘든 한 해가 드디어 갔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나, 달별로 사건 하나하나를 켜켜이 살펴보지 않는 이상 나도 다 기억하지 못할, 그런 해였다. 하나하나 깊게 파고들자면 감상적이게 눈물이라도 흘려주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IMG_2431.HEIC 그래서인지 2024년 12월 31일 기어코 몸이 무너졌다. 와인이나 사케 따위의 기념주 대신 테라플루를 따뜻하게 마시고 자야했다.


그렇다 보니 어느 해보다도 홀가분히, 미련 없이 보내주고 싶은 2024년이다.

참으로 이상한 회사 한 곳을 찍먹 하듯 빠르게 경험했고,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을 미처 시작하기도 전에 이런저런 제안이 물밀듯이 들어와 되려 '어떤 일을 고를 것인가' 배부른 고민도 했다. 그 덕에 제법 먼 미래라고 생각했던 내 브랜드를 만들고 가지는 일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언제고 무언가 막연한 생각 덩어리를 실체를 가진 어떤 물성의 것들로 끄집어내는데 그 뜻과 제법의 재능이 있던 나는 최근에도 일련의 출산의 고통 같은 것을 겪었다. 작은 브랜드를 하나 시작한 것이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어떤 브랜드의 형태를 세상에 끄집어내 보여주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니, 이제부터가 본 경기다. 늘 나는 시작만큼은 손쉽게 해내니까 이걸 지속한 어떤 동력을 찾고 지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가정을 꾸릴 채비를 마쳤다.

요즘 식장 잡기가 어렵다던데...
행복주택 따위의 (전혀 행복하지 않은) 보금자리 지원 사업에 지원이라도 해보려면...

이런 변변찮은 이유로 얼결에 시작한 결혼준비가 얼추 마무리되었다. 작년 3월 즈음부터 막연하게 오가던 결혼 이야기는 스-드-메 따위의 결정 과정을 과제처럼 하나씩 해내다보니 5월, 6월, 7월... 시간을 빠르게 지나 이제는 몇몇 피날레 같은 순간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런 중대사 결정이 이렇게 쉬울 수가 있던 거였나? 반쯤 물음표로 뒤덮인 생각 속에서 시작된 미래에 대한 준비. 그 덕에 나와 나의 미래 동반자는 서로에 대한 의심과 확신을 거쳐 더욱 단단한 사이가 되어간다. 어둡고 막연하게만 보이던 덤불 사이를 두 손으로, 아니 네 손으로 더듬거리며 헤쳐나왔다. 돌아보니 덤불은 아름다운 화원이었다며 회고하고 싶다.


무제 2.jpg 2025년 1월 1일, 짝꿍과 나는 일출을 보러 월드컵대교로 달려갔다. 해는 끝끝내 구름 속에서 떠올랐지만 마음 속은 반짝였으니 됐다.


지금까지 다룬 두 가지의 사건만 하더라도 큰 변화였는데, 이 외에도 이를 둘러싼 많은 인간관계들이 새로 생겨났거나 소멸됐다. 이러니 보내주는데 섭섭함이 없을 수밖에...!


이 모든 사건을 겪으며 나에게는 큰 깨우침이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메타인지가 보다 성숙해진 것, 그리고 어떠한 모습의 스스로든 받아들이며 더 잘 활용할 수 있는 이성적인 방법론이 생긴 것이다. 과거에는 '어떤 사람이 싫어지면 일단 피하던' 스스로를 인지하기만 했다면 이제는 '싫은 감정은 그대로 두고 일로서 다가가는 법'을 깨우친 것이라던지, '사람의 정에 끌려 상처받곤 했던' 스스로를 인지하기만 했던 나는 '상처는 잠시 꾹 참고 받아내고 다음 날 바로 일어서는 법'을 알게 됐다.


이런 말을 싫어하는 나지만, 아프고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성장한다. 때로 이런 종류의 성장은 긍정적이기만 한 여정보다 더욱 깊게 각인된다. 이런 말들을 내뱉던 선인들은 결국 삶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아픈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체념과 자기 긍정의 과정을 겪어본 이들 아닐까.


이런 변화 때문인지 나는 언젠가부터 새해를 맞이하며 더 이상 스스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자' 따위의 인사를 하지 않게 됐다. 나의 지인들이라면 눈치챘을지 모른다. 대신 당신이 한 만큼 해낼 수 있는 - 일종의 평등한 대우라도 받을 수 있는 한 해임을 빌거나 '복' 같은 요령 대신 '행복'을 받으라는 인사를 건넨다. 우리는 더 이상 산타의 선물 따위를 바랄 수 있는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그저 어떤 경험을 겪더라도 그 속에 숨겨진 작은 행복들이라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IMG_2462.HEIC 이제 새해의 첫 날이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그저 새로운 한 날일 뿐, 다만 새로운 마음을 담은 계획을 세웠다.


그러니까 2025년을 맞이하는 나에게 하고 싶은 말도 바로 이 정도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노력한 만큼 그만큼만
돌려받을 수 있는 한 해이길.

그래서 그 안에서
충분하게 행복해하는
한 해이길 - 진심으로 바람!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