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건강검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일교차가 커질수록 내 몸은 신호를 보내온다 미리 검진을 받으려 했으나 추석 무렵의 연휴 동안 ‘모든 한국인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괜한 안도감과 더불어 길디긴 웨이팅 리스트라는 것에 내 이름을 올려놔야 했다.
2년여 만의 만남.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쿠! 또 오셨네요. 이 먼 곳까지. 그쪽 병원 선생님도 추천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가보셨어요?”라는 긴 질문을 말이다.
나는 씩 웃으면서 “아니요! 그냥 선생님께 진료받으려고 왔어요.”
“그래요. 고마워요. 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왔어요?”
“일교차가 심해지다 보니 소화가 또 안 되고 있어요.”
“운동은 하시죠?”
“아 그게.......”
“검사한 지 2년이 넘었으니 검사를 해서 총체적으로 봅시다.”라는 말과 함께 일상적인 질문이 오고 가는 다른 병원에서는 보기 어려운 문진이 좀 오고 간다
이런 문진들은 환자가 편안한 상태를 보여줄 때 환자의 컨디션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거라면서 이번엔 빈혈이나 영향 불균형의 상태는 안 보이는 것 같다는 안심 멘트도 더불어 해주신다.ㅋ
길 것 같던 검사들이 끝나고 결과를 보러 다시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
궁금하지 않은 나의 장기들 사진을 짚어주시면서 컨디션을 조목조목 설명해주신다. 더불어 피검사를 통한 전체적인 결과까지. 그리고 2년 후쯤 봐도 될 것 같다고 하신다. 이번엔 가까운 병원을 가라고 해주시지 않는다. 아무래도 그렇게 얘기해도 안 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겠지.
나는 인사를 했다.
“조만간 다시 저희 동네로 컴백하시길 빌어요.”
내가 굳이 이 먼 곳까지 오는 이유는 선생님의 의술보다는 인술 때문인지도 모른다.
의사도 사람이니 감정의 기복이란 게 있겠지만 자신의 감정을 잘 컨트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의술도 훌륭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려운 직업이고 훌륭하다는 의미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선생님과의 관계-의사와 환자-는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2교시 이후 쉬는 시간에 식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허겁지겁 먹은 탓인지 새로운 시간의 음식물 섭취여서 그런지 위경련이 발생했다. 위급하다고 생각한 친구들은 나를 부축하여 양호실로 옮겼으나 10여분이 지난 후 경련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친구들은 뭐 한 것이냐고 뭐라 했고, 나 역시 나의 이상한 컨디션에 놀라 충격으로 오후 수업은 엉망이 되었다.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갔더니 - 지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 신경이 예민해서 그런 거란다.
끝?
규칙적인 식사와 식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약 대신 처방해주셨다. 그 후 나의 위는 성장하면서 집이 아닌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나 때가 아닌 때의 식사, 야식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결국 나는 이런 나의 몸과 타협을 해야 했다. 타인이 독하게 다이어트한다며 힐난할지라도 그 위경련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기에 마음이 무너지지 않는 한 지켜보려고 오래도록 그렇게 살았다. 물론 눈앞의 음식으로 절제가 무너지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했지만.
이런 예민한 나의 위가 그나마 이렇게 건강한 것은 멀리 있는 병원으로 옮기셨지만 당신을 보기 위해 찾아와 준 환자를 살뜰히 챙겨주시는 선생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이 병원에는 우리 동네 병원에 계셨던 호흡기 내과 선생님도 계시는데 아버지의 폐를 10년 넘게 관리해 오신 분이시며, 이분도 우리 집에서는 명의로 통한다. 선생님은 폐 사진이 안 좋게 보이는 아버지께 조직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피검사의 따끔함 정도를 생각했던 나는 조직 검사로 인하여 아버지 생명이 위독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폐의 조직을 떼어내기 위해 폐 근처에 구멍을 내고, 조직을 떼어내며 그 부분이 잘 아물지 않으면 폐에 공기가 찰 수 있다는 것이다. 조직검사를 의사가 권한다는 건 아마도 암을 의심해서겠지 하는 마음에 큰 병원으로 가서 추가적인 진료를 받고 나서 판단해보자고 말씀드렸으나, 아버지는 조직검사는 우선 이 선생님께 받겠다고 하신다. 하는 수없이 조직 검사를 위해 절차를 밟았다. 검사 후 아버지의 폐 근처 부분은 구멍에서 나오는 끊임없이 나오는 피를 뽑아내기 위해 호스가 연결되어 있다. 호스 하나에서 나오는 피만으로도 아버지의 통증이 가늠된다. 밤새 쏟아져 나오는 저 피는 대체 언제쯤이면 멈출 것인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가고, 아버지는 기관지 폐포암이라는 나에게는 낯선 진단을 받으셨다. 통상 암이라는 진단을 받을 경우 여러 곳의 병원을 가보는 것은 암묵적 상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국인이 말하는 유명한 병원을 가서 다시 진단을 받아보자고 말씀드렸으나 끝끝내 마지막까지 이 선생님만의 관리를 원하셨다. 결국 우리는 어쩌면 아버지의 마지막 바램이 될지도 모르는 이 의견을 존중해드리기로 했다. 선생님은 수술보다는 항암치료를 먼저 하자고 하셨고, 아버지는 잘 버티시는 것 같았다. 폐암을 식이요법으로 다스렸다는 분을 만나서 그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버지 체질에 맞춘 식사는 준비를 해야 하는 엄마조차도 너무 힘들 만큼, 건강식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만큼의 음식이었다. 점점 말라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본래의 식사를 권해드렸으나 아버지는 의지를 보여주셨다. 결국 항암과 식이요법 병행이 결국 몸에 무리를 일으킨 것 같다. 한 숟가락도 못 드시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가마보꼬와 에그타르트를 사들고 병원으로 갔다. 이틀째 식사를 못 드시고 계셨던 터라 난 뭐라도 드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맛있게 드셨던 아버지는 "나 누군지 알아요?"라는 내 질문에 "지금은 기억하고 싶지 않거든?"라는 농담 같은 말씀과 함께 미소만 지으셨다. 아버지는 벌써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시고 계신 것 같았다.
결국.
돌아가시기 전날 밤 아버지의 숨소리는 평소와 너무 다르게 들렸다. 그런 위급해지신 아버지를 보기가 우리가 너무 괴로워 당직 의사 선생님에게 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요청했으나 주치의 선생님의 오더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만을 말해줄 뿐이었다. 규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누구를 위한 것인가로 밤을 새워야 할 때는 '지옥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심정이었다. 다음날, 토요일이었으나 선생님이 오셨고, 호흡기를 떼어주면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신 후 사망 선고를 해주셨다. 우리의 오열에 아버지는 남겨두고 가는 가족이 걱정되셨는지 눈을 잠깐 뜨셨다.
의사 선생님은 선생님의 어머님 49제를 하고 오시느라 늦었다며 환자의 고통을 너무 오래도록 견디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셨다. 49제임에도 환자의 마지막을 잘 보내려고 급히 오셨다는 이 분, 무슨 일이 생기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도 좋으니 언제든 연락을 해도 좋다는 이 의사 선생님이 명의가 아니면 누가 명의일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의사도 진단할 수 없는, 그래서 치료할 수 있는 영역의 병을 가질 수 있다. 그들은 신이 아니니까.
그러나 의사들이 놓치는 한 가지가 인해 치료할 수가 없는 병이 되는 경우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이다. 병원을 갈 때면 이렇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이 어디에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예약 시간은 9시인데 진료를 9시를 딱 맞춰서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대학병원에서 지극히 낮다. '그러니까 누가 대학병원으로 가래?'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예약 시간이 동일하게 되어 있는 환자들을 볼 때면 왜 이런 시스템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인가? 싶다. 5분 단위? 1분 단위인가? 그 짧은 시간에 환자를 관찰할 만큼 의사는 신인가??
엄마의 심장 혈관 삽입 수술 검사를 하기 위해 7시 예약이 잡혔다. 아무 생각도 못 하고 나는 6시 45분에 도착해서 예약실 앞에 55분쯤 앉았다.
늦었는가?
5분이나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검사자들 중에 제일 늦게 와서 검사를 제일 마지막에 받아야 한단다. 검사 시간은 얼마 안 걸릴 수 있으나 내시경으로 판단컨대 삽입해야 할 경우 바로 할 수도 있다는 내용과 함께 교육을 받았다. 많은 검사자들, 보호자들과 함께 말이다. 앞의 검사자들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들이 스텐트를 삽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엄마의 대기 시간은 한없이 늘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난 엄마께 미안해졌다. 이런 상황인 걸 알았으면 6시부터 와서 기다리는 건데 말이다. 또한 '왜 모든 검사자들을 같은 시간대에 불러 기다리게 하는 것인가?'가 기다리는 내내 궁금해졌다.(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뭘 모르는 소리 한다고 힐난할 것 같다. 그러나 엄마 병원을 같이 다녀보면서 관찰해보니 환자들은 대략 2~30분, 길게는 1시간 먼저 와서 기다린다. 그래서 진료 시간이 늦어질수록 더 화가 나는 것이다.)
결국 검사실은 11시를 넘어 들어갔다. 다행히도 스텐트는 삽입 안 해도 될 것 같다며, 원인을 모르겠단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이 병원으로 옮긴 이유는 이전 병원 의사 선생님의 태도 때문이었다. 나름 명의라고 인터넷에서 나오길래 집에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병원에 예약을 했다. 엄마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선천적으로 높은 타입이다. 그래서 약을 드셔야 하는데 심장의 두근거림의 발생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어 나름 명의에게 현답을 들으러 온 것이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심장의 두근거림은 모르겠고, 동맹경화 초기 증상이 있는 것 같으니 약을 복용하면서 추이를 보자고 하신다. 2년 정도를 기다린 것 같다. 부쩍 두근거림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보건소에서 당뇨 수치가 올라가니 병원 가서 확인하고, 약을 복용하라고 한다. 여러 가지 약을 받으러 다양한 진료과에 다녀야 하는 것은 나이 든 엄마께 더 힘든 일이 될터라 이 선생님께 의뢰를 했다. 자기 진료과목은 아니지만 처방 가능하다고 하신다. 당뇨약을 드시면서부터 엄마의 밥투정(?)이 시작되었다.
"밥 그만 먹고 싶어!"
"입맛이 없네!"
"생선도 싫어!(우리는 고기를 안 좋아하는 모녀다 ㅠ.ㅠ)"
하루하루가 식사하시라고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기력이 떨어지니 밖으로 나가서 운동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심박수가 상승하는 빈도는 점점 자주 찾아오고 집에 누워계시는 횟수 또한 늘어난다. 이럴 때는 의대를 못 간 것에 대한 엉뚱한 후회가 밀려온다. 전체적으로 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의사 선생님과 내가 상담을 해야 할 것 같다.
"엄마가 밥을 잘 안 드시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주기가 점점 더 자주 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요?"
"환자분이 말씀하세요."
"아니 엄마가 기력이 없고, 처방해주신 약으로는 심장 박동수가 정상으로 빨리 안 돌아와요. 어떻게 해야 하냐고요."
"환자분이 말씀하시라니까요!"
"...."
엄마는 설명을 하셨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이 이해했을까? 약 처방을 받아 들고 나올 때 내게 남은 건 분노와 오기였다. 의사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의학 지식을 찾아보고 오는 환자들이라고 했다. 전문가 영역에 어설픈 지식을 들이대면 기분이 언짢을 것 같다. 잡다한 지식 주워 모으기전에 알려주면 되는데 그럴 수 있는 시스템인가?? 또한 보호자는 다를 수 있다. 환자를 옆에서 지켜봐 왔고, 환자가 통증을 잘 설명 못하면 보호자라도 의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통역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면허가 없지만 면밀한 관찰과 기록으로 엄마의 백내장도 알아맞혔고, 대상포진도, 그 외에도 아픈 통증에 대해 어느 병원을 가야 하는지 정도는 판단할 만큼 잘 들여다 보고 경청하고 있다. 엄마가 약을 드셔야 하지만 이 선생님과는 아닌 것 같았다.
심장 박동수 문제는 어느 분야로 바꿔야 하는지 잘 모르겠기에 고민의 시간이 길어졌다. 더불어 엄마 주변의 아주머니들이 신경정신과를 제안했다. 예민해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마는 그래야 하는 거냐고 재차 내게 물었다. 예민함으로 오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힘든 운동 후에도 증상이 나타나고 하는 터라. 그래서 나는 생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러다 동네 내과가 생각났다. 친구도 말해줬고, 엄마에게도 여쭤보니 환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단다. 나이 든 환자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 선생님일 것 같다. 고민이 끝났다.
"엄마, 다른 대학병원으로 바꾸려 해도 의뢰서가 있어야 하니까 우선 내과를 가서 우리 상담받아봐요."
엄마는 동의하셨고, 그렇게 해서 동네 내과를 갔다.
아!!! 1시간을 기다린다. 그러나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니 상황이 이해가 된다. 내가 말하는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엄마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나면 복부가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뛴다고 했더니 그쪽으로 대동맥이 지나가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요? '면허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구먼 ㅋ!'이런 생각에 잠시 나도 모르게 나의 무식에 피식 웃어버렸다. 췌장을 찍어봤으면 좋겠는데, 이 병원은 CT가 없으니 방사선과에 다녀오면 좋겠다고 한다.
췌장?
그래 일단 가자. 췌장을 찍어 다시 내과를 가니 조금 더 큰 병원을 가서 진료받기를 권해보며 병원에 예약까지 해주시라고 하신다. 그리고 심장이 두근거릴 땐 꼭 그 상황에 대한 심전도를 촬영해보라는 말씀도.
'인기 있는 이유가 있네'라는 생각에 감사 인사 표시를 했다.
나의 회사 일정으로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가기로 했다. 언니는 심장도 쿵쾅거리니 심장내과(외과)를 예약했다. 결국 그래서 스텐트 삽입 여부 검사를 하게 된 것인데, 스텐트 삽입할 필요 없고, 소화기 내과에서는 췌장에는 혹이 있으나 1년 뒤에 추이를 봐도 될 것 같다고 하신다. 심장 두근거림에 대한 다른 진료과 추천을 부탁드리니 다른 심장 내과 선생님으로 예약을 해 주셨다.(심장내과 선생님마다 분야가 약간씩 다르다) 그러나 그쪽도 별다른 진단이나 치료를 못 주셨다. 췌장쪽 선생님이나 심장쪽 선생님은 더 물어볼 여지조차 주지 않으셨다고 한다.... 의사쌤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다행인 것은 내분비내과까지 다 접수했는데 엄마의 당뇨는 다른 사람과 다른 당뇨란다.
다른 당뇨? 긴 설명을 들었으나 기억으로 주워 담지를 못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녹음인데 그마저도 놀래서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들었다. 통상 식욕을 억제하는 약을 쓰나, 엄마는 적정한 당 유지가 필요한 당뇨라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3Kg 정도 살을 찌우라고 말씀해주셨다. '처방이 지난번과 다르네?' 식욕을 억제하는 당뇨약 대신 다른 약으로 바꾸니 엄마의 본래 식사량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엄마의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된 즈음, 계절이 바뀌는 탓인지 엄마의 심장은 더 빈번하게 쿵쾅거리고, 급기야는 1주일이 넘도록 누워 계시는 상황이 발생했다. 엄마는 최대 버틸 만큼 참아보신다. 응급실을 가자고 해도, 응급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으신지 싫다고만 하신다.
결국, 어느 날 출근하려고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 내 앞에서 또 심장이 쿵쾅거려 힘들다고 방으로 들어가셔서 누워버리셨다. 온 기력 쇠진.
'이 시간에 응급실을 가면 받아줄 것인가?' 코로나 때문에 난리인데 싶어 가까운 응급실로 전화했더니 다행히 심전도 촬영 가능한단다. 난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차를 몰았다. 뛰어가면 더 가까울 듯한 그곳을.
발열 체크하고 응급실 당직 선생님은 바로 심전도 체크하고 나를 호출한다.
"지금 하트 레이트가 170이 넘어요. 거의 100미터 달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인데, 저희는 심장 전문이 없어서 일단 응급 처방약 드릴 테니 심장 전문병원으로 가세요."
그러고 보니 나는 양치도 못 한채 밥 한 숟가락을 먹다 말고 뛰어나온 것이 생각났다. 양치는 해야 할 것 같은 너무 어이없는 이유에.
"집에 들렀다 가도 될까요?"
"아니요, 그냥 지금 바로 가세요. 대학병원 아니어도 상관없고, 그냥 심장 전문 병원을 가시면 돼요. 소견서 써드릴게요"
나머지 응급조치를 받는 사이 조사 빼고 영어로 적혀있는 소견서를 받아 들었다. 응급실 선생님의 신속한 대처가 너무도 고마운 시점이다. 조금 멀긴 하지만 얼마 전 모든 검사를 시행했던 대학병원을 갔다. '피가 철철 나는 것도 아닌데 받아줄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앞섰지만, 엄마의 기록이 대부분 다 있기에 일반적인 검사를 안 해도 되는 이 병원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가지 문진과 심박수 체크하고 나니 응급실로 들어와 졌다. 많은 의료진들이 기계와 함께 등장.
기계를 끼우고 보더니 슬기쌤의 김준완쌤 같은 느낌의 선생님이
"어머님, 심장에 가는 혈관에 하나가 더 생겨서 그래요, 어머님 지금 저희가 약을 투입할 건데요, 나락으로 뚝 떨어지는 느낌이 나실 거예요. 그러고 나면 괜찮아지실 거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 그 느낌 왠지 나는 알 것 같다. 어릴 때 자주 떨어지는 그 꿈, 안 떨어지려고 발버둥 하느라 킥을 날리던 그 꿈 아닌가.
몇 가지 처치 후 다시 나타난 슬기쌤
"통상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약을 드셔도 되는데, 계속되면 위험하니 심장내과로 예약을 해드릴게요. 상담받아보세요."
거.짓.말처럼
엄마는 20여분 만에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이렇게 명쾌하게 내려준 진단을 왜 그동안 선생님들은 몰랐던 것인가? 통역자였던 나의 잘못된 통역인가? 아니면....
다른날, 심장내과에서 문의하니 이 혈관은 이렇게 아플 때만 발견된단다. 그래서 시술 날짜를 잡았는데 시술 당일 검사부터 한단다.
'검사? 검사가 또 필요한 질병인가?'
일부러 심박수를 높게 나타나게 해서 혈관이 보이게 하는 거라고 반응이 안 나타나면 나타날 때까지 할 수 있으며, 환자가 극도로 긴장해서 반응을 안 보이는 경우 테스트만 하다가 시술 못 받고 끝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환자를 시술실에 들여보내고서야 듣는다.
뭘까? 실패가 발생할 수 있다면 취소할 수 있는 상황 전에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치료를 해야 하니 이런 상황으로 만들고 설명을 주는 걸까?
경과를 보기 위해 얼마 전 병원을 다시 찾았다.
"현재의 상태를 보니 앞으로는 괜찮으실 것 같아요. 앞으로는 다시 뵙지 않기를 바랍니다."
유쾌하지 않은 문장이다. 그러나 의사쌤으로부터 들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인사가 없는 것 같다.
명의란 무엇인가?
병원은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정보를 환자가 찾아보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환자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의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이다. 경청,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지만 명의가 되고자 한다면 경청과 관찰이 먼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