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주 차 병원 정기검진에 갔다. 드디어 성별이 정확해지는 시기가 되어서 오늘 차차의 성별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두근두근하며 병원을 향했다. 나는 태몽과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남자일 것으로 예상했고, 직구해서 해본 GenderBliss 성별 예측기는 여자로 나왔다. 내가 제일 우려되는 점은 남자친구의 반응이다. 남자친구는 친구들의 딸을 보면 그렇게도 이뻐하곤 했다. 게다가 차차가 딸일 것으로 강하게 예상하며 며칠 전부터 밤에 차차 대신 내게 말을 걸며 톤 높은 목소리를 내곤 했다. 혹시나 남자애로 나오면 남자친구가 실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진료가 시작되었고, 초음파를 보며 전체적으로 차차가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발달을 해왔는지를 설명해 주셨다. 머리에서부터 내려오며 갈비뼈, 심장, 팔에 대해서 설명을 하시다가 하반신으로 내려오며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적어지셨다. 하반신 관찰을 열심히 하시기에, 혹시 성별을 보시는 것인가 싶어서 넌지시 ‘혹시 성별을 알 수 있을까요?’ 하고 조심스레 물었고, 가만히 보시던 의사 선생님께서는 ‘딸이네요’ 하셨다. 나는 휙 눈을 돌려 남자친구를 쳐다봤고 그 어두운 초음파실 안에서 순간 환하게 웃는 남자친구의 얼굴을 봤다. 나는 안심했다. 됐다, 내 할 일을 했다!
성별을 알자마자 성별 복권을 구매했다. 성별을 알릴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아이의 성별 부분이 은박으로 감싸져 있는 복권이었다. 나의 세 조카들에게 해보고 싶은 마음에 호다닥 조카들을 만나러 사촌 언니네 집에 갔다. 언니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 안에서 놀고 있는 조카들에게 가서 문을 닫고 조용히 이야기했다. 이제 차차의 성별이 나왔다고, 맞추는 사람은 엄마 몰래 이모가 5,000원을 줄 테니 한 명씩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아들, 딸, 아들인 세 조카는 각각 남자, 남자, 여자라고 예상했고 결론적으로 막내 아엘이만 성별을 맞췄다. 그러나 내가 놀랜 부분은 둘째인 미엘이었다. 못 맞췄다며, 혹은 용돈을 못 받았다며 아쉬워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해사하게 웃으며 내 손을 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본인은 여자 아기가 좋다며 자기가 열심히 놀아줄 거라고 조잘조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미엘이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나조차 울컥했다.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미엘이가 또 이렇게 차차에게도 사랑을 가르쳐주겠지.
미엘이는 여간 신나는 게 아닌지 나랑 보드게임을 하며 놀다가도, 책을 보며 이야기를 하다가도 차차에게 무엇을 해줄 건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차차가 태어나면 케이크를 만들 거라며 본인의 요리책을 뒤져 브라우니를 만들지, 바나나 케이크를 만들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내 두 눈에 벌써 미엘이를 졸졸 따라다니는 차차의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했다. 늘 상상만 해오던 행복한 광경들이 점차 또렷해지는 느낌에 벅차올랐다. 차차가 얼른 건강하게 세상에 나와서 미엘이와 만났으면 좋겠다. 아마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울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어 집에 가려는데 미엘이가 급작스럽게 본인이 만든 영어책을 내게 건네주었다. 차차가 태어나면 꼭 보여주라며, 그리고 5살쯤 한번 더 배워야 할 거라는 조언도 덧붙여줬다. 응, 미엘아. 차차가 태어나자면 꼭 이 책을 보여줄게, 차차의 첫 영어책.
아직 ‘차차’가 아기의 태명이라는 걸 모르는 조카들이 이름이 특이하다고 이야기했다는 카톡에 나와 남자친구 둘 다 모두 빵 터졌다. 내가 아는 세상 사람들 중 가장 이름이 특이한 세 명이 차차의 이름이 특이하다고 웃는다. 며칠 내내 툭하면 이 대화가 떠올라서 피식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