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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Mar 06. 2023

후배들이 찾아왔다

내 경험담이 그대 가는 길에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를

   일하다 보면, 퇴직을 앞둔 직장 후배들이 종종 안부전화를 한다. "선배님, ○○○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내가 혹시 놀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우선 궁금한 케이스다. 한 번 이상 통화를 한 사람이라면 묻는 버전이 약간 달라진다. "지금도 거기 계시죠...?" 그러면서 종종 법령집이나 사례집 등 유용한 자료를 보내주며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들이다. 누군가로부터 내가 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연락하는 눈치들이다. 어느 쪽이건 퇴직하면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며 길을 모색하는 모습들이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 생각해 봐도 별 차이는 없었다. 다만, 나는 이미 정년퇴직 사람들보다는 주로 퇴직을 코앞에 둔 현직 선배들을 대상으로 안부전화를 돌렸던 기억이 많다. 그간 긴 세월 수고하셨다며 위로전하는 한편, 이른바 인생 2막의 설계를 들어보싶은 마음이었다. 사실 위로와 축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위로가 맞을 것 같아 그쪽을 택했었다. 30여 년 동안 직장 다니다가 정년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었으니 어딘가 허전한 구석이 있을 것 같다는 추측에서였다. 유감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반응은 나의 일방적 예상을 사정없이 빗나갔다. 정년까지 무사히 근무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같이 축하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아 오히려 위로를 돌려받는 기분이었다. 그들의 밝은 표정을 떠올리며 도리어 안도할 수 있었다. 전화의 말미에 앞으로 뭘 하며 어떻게 살아갈 생각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여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당분간 여행이나 하고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는 대답 다수였다. 장래에 대한 염려와 대비가 요즘 사람들보다는 더 여유 있어 보였. 제일 궁금했던 답을 전혀 들을 수 없어 아쉬웠다.




   재직시절 가까이 지냈던 직상선배가 들려준 퇴직 후 재취업한 이야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다. 분당 정자동에서 만나 그 선배가 좋아하던 맥주에 마른안주 노가리와 땅콩을 으며 나누던 추억담이다. 선배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고 느껴 절망하던 차에 여차저차해서 아파트 경비원으로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다. 기술직은 오라고 하는 데도 많고 갈 데도 많다지만, 행정직은 불러주는 곳이 없고 갈 곳도 없으니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더라는 소회를 털어놓았다.  역시 같은 행정직인지라 듣고 있자기분이 짠하고 덩달아 씁쓸해졌다. 그나마 몇 달 만에 쫓겨나고 말았다며 쓴웃음을 었다. "저런~!" 하늘 같았던 직장선배가 기껏 - 실상을 알고 보면, 결코 '기껏'이라고 얕볼 일이 아니다 - 경비원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아니, 근데 왜 쫓겨났어요?" 어느 날 회장이 잠깐 보자고 해서 찾아갔더니 다짜고짜 말할 도 주지 않고서는 그만 나오라고 하더란다. 왜냐고 물었더니 "당신은 너무 뻣뻣해!" 하고서는 아주머니 회장뒤돌아서 가버리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선배와 같이 일했던 옛날의 찬란했던 생각이 떠올라 탁자를 치며 목이 꺾이도록 웃었다. 그때 그 자리는 퇴직 후의 세상이 그렇게 냉혹하고 비정하더라는 선배의 체험담을 귀담아들은 교훈의 시간이기도 하였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행정직 퇴직자 중에는 주택관리사 자격을 따고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하였다. 일이 고단하고 힘든 건 사실이지만, 직책이나 급여 수준이 그만한 일자리를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몸 담았던 직장 관점에서 보면, 과거 관리감독의 대상이었던 자리다. 그때는 이런 방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불과 수년 사이에 일자리 환경과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밖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거저 쉽게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규제와 감독에 관한 사회 분위기 역시 그만큼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발주처라는 전 직장의 배경이 취업 과정에서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는 예가 적지 않다. "아이고, 그 좋은 회사에서 간부까지 하신 분이 뭐 하러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까." 그리고 무소식. 내가 직접 겪어본 경험담의 한 조각이다. 작년에는 나보다 앞서 진출한 선배 중 벌써 고희에 들어선 사람들도 생겼다. 소장은 정년이 없다지만, 아무래도 나이로 인한 부담감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편, 이 나이에 아직도 일을 한다는 것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사정이 서글프게 느껴질 때도 없지는 않다. 그만큼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제일 크다. 그것 말고도 하고 싶은 다른 일들을 보류하고 미뤄둬야 하는 이유도 있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자신감과 활력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 느끼는 보람은 자못 크다. 똑같이 퇴직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동료가 안부차 전화를 걸어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며 답답한 마음을 호소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뭐가 됐든 나가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무슨 일에 종사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가능한 계속 활동하고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이 복이고 의미 있게 사는 길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비롯한 우리들의 그런 모습이 괜찮아 보였던 것일까. 사례에 비교적 자주 포착되는 때문일까. 작년 연말을 전후하여 후배 몇 사람이 개별적으로 나를 찾아왔다. 지금 하는 일이 어떤지, 할 만한지, 궁극적으로는 재취업의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비결은 없는지 등등 제각기 많은 관심사를 쏟아내 놓기 바빴다. 그중에는 퇴직하자마자 곧 관리소장으로 나가게 되었다는 실력자도 있었다. 주택관리사 자격뿐만 아니라, 전기, 소방 등 기술분야 자격증까지 챙기는 등 사전에 꼼꼼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방증일 것이다. 



   재취업도 갈수록 장벽이 높아지고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더군다나 정년퇴직을 한 사람들은 60이 넘은 나이에 초보로 시작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넉넉하지도 않다. 일자리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한정된 상황에서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기다려주는 곳은 없다.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어영부영 1~2년 허송세월하고 나면 사정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설자리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아, 너무 일하는 얘기로만 흘렀다. 그것이 전부가 아닐 텐데, 인생 말년까지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사는 게 답은 아닐진대 말이지. 그렇더라도 바야흐로 100세 시대를 맞아 퇴직 후에도 너무 많이 남아있는 여백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기왕에 재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경우라면, 실기하지 않고 기회를 잡아 건강을 유지하며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Bravo, your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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