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어느새 가을의 초입에 들어섰다. 맞이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금세 아침저녁으로 싸늘한 추위마저 느껴진다. 유독 이 계절은 그렇게도 성급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젖어있을 여유도 없이 선뜻 추운 겨울부터 떠올라서 참으로 유감스럽고 못마땅하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이 예전에 비하여 확실히 더 짧아졌다. 세계적인 기후변화의 영향 때문이다. 매번 그러하듯 이번 가을 역시 천고마비(天高馬肥) 네 글자를 다 읽기도 전에 홀연히 가버릴 기세다. 무슨 쫓기는 숙제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늦더위 끝에 찾아온 가을날은 잘 익은 대추 맛처럼 상큼하고 달콤하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꼽아 헤아릴 만큼 짧아진 하루하루가 마치 희귀한 자원처럼 소중하고 아깝다.
높디높고 파란 하늘 아래 조용한 아파트단지에도 가을의 기운이 물씬하다. 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겸해서 서서히 단지를 한 바퀴 돌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소나무, 두충나무, 느티나무, 목련, 메타세쿼이아 등등 가릴 것 없이 온통 세상의 나무들이 이제 막 노란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모양이 마치 검은 머리숱 여기저기에 세치가 번지듯 골고루 퍼져가는 형국이다. 이럴 즈음에는 일부러라도 그렇게 밖으로 나가지 않고는 배기기가 어렵다. 혼자서라도 가을을 흠뻑 들이마시고 싶은 은근한 유혹을 감히 뿌리칠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머릿속이 확연히 환기되며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계절이야 어떻든 나름 유쾌한 날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작성 중이던 회의자료를 마저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마음이 바빠졌다. PC 앞에 앉아서 다시 자료정리를 시작하였다. 미리 스마트폰으로 찍어둔 견적서와 시설 보수 장면 등 근거용 사진을 적재적소에 올려 배치하느라 손이 가장 많이 가야 했다. 내가 만드는 회의자료에는 어지간하면 별도 첨부물이 없다. 자료를 정갈하게 다듬으며 한참 일에 몰두하고 있던 차에 갑자기 코끝에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왠지 기분이 이상하였다. 혹시 콧물일까 하고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봤더니 웬걸 선명한 피가 묻어 나왔다. 순간 아내 생각이 났다. 옆에 있었다면 무슨 일이냐고 놀라서 나를 바로 보며 외마디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재빠르게 움직였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웃었다. 누구보다 아내가 가장 먼저 떠오르다니,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지긋이 나이가 들면서 모르는 사이에 벌써 그렇게 아내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코피가 날 때면 언제나 생전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코피를 자주 흘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지며 겁도 났다. 황급히 티슈를 꺼내 콧구멍 속으로 밀어 넣으며 지혈을 시도해 보았다. 그래도 피는 그치지 않았다. 저만치 떨어져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경리 우 주임이 눈치를 챌까 봐 얼른 의자를 뒤로 돌려 앉았다. 이 청승맞은 모습을 직원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티슈로 연신 코를 쥐어잡기를 몇 번이고 반복하였다. 고개를 뒤로 쳐들기도 하며 -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게 잘못된 거라는데도 - 한참을 허둥대던 끝에 다행히 피가 멈췄다. 재빨리 피 묻은 휴지더미를 한 줌에 쥐고 건넛방 화장실로 뛰어갔다. 휴지를 즉시 변기에 던져 넣고는 물을 내렸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실 과거에도 몇 번 코피가 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것까지 아버지를 닮았냐며 전화기 속에서 혀를 차며 속상해하였다. 내 나이 어느덧 육십 대 중반에 이르러 이런 일을 다시 당하고 보니 예전과는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인명은 재천이라 했으니 나의 목숨이 언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평생 죽음을 의식하며 살았다던 몽떼뉴와 클림트의 생각이 스치기도 하였다. 약간의 불안감이 엄습하더니 이내 곧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를 찾아가서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더니 점막이 약해서 그런 거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을 하였다. 걱정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 그래요...?" 안심해도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개운하지는 않았다. 잊을 만하면 이렇게 코피가 난다는 기억의 반복 때문이었다. 아, 일을 언제까지 더 해야 하나. 병원을 나서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럴 때는 왠지 쉬고 싶어지는 까닭일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나는 다시 진한 가을을 타고 있었다.
벌써 5년 전, 나는 법적 정년 연령이 60세로 연장되는 혜택을 보고 퇴직을 하였다. 생각지 않은 행운이었고 나라에 감사했다. 그렇지만 나는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막상 지나고 보니 노후대비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고서도 그 후의 삶이 걱정스러운 엄연한 현실 앞에서 순순히 무릎을 꿇어야 했다. 누구나 그렇게 느끼듯이 국민연금은 턱없이 부족한 액수여서 자신이 없었다. 허황된 꿈에 지나지 않는 말이지만, 예상 수령액 보다 두 배 정도는 되어야 안심이 될 것 같다는 농담을 늘어놓기도 하였다.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충하기 위해 더 분발해야 한다고 다짐하였다. 고심 끝에 불쑥 장기 저축성보험을 가입했더랬다. 정년퇴직을 하고서도 매월 수십만 원씩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불입할 각오와 계산을 하고 난 결과였다. 무모하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일찌감치 쐐기를 박아놓은 셈이다. 퇴직하기 수년 전에 저지른 일이었다.
바야흐로 올해로 어느덧 11년이 지났다. 지나고 보면, 언제나 세월의 흐름은 참 빠르기도 하다. 이제 마지막 납입일까지 1년 남짓 시간이 남았다. 마치 장거리 레이스를 뛰는 기분이다. 골인지점을 통과하고 나면 후련한 한숨을 쉴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중도에 포기할 수 없는 과제를 스스로 내걸었던 것이니 만큼 사실 압박감도 적지 않았다. 일부러 사서 한 고생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의무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만사 내려놓아도 되는 진정한 나의 은퇴시기는 언제쯤 일지 그려보곤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어쨌든 일자리를 찾았고 숙제를 푸는 도구로 삼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매일 집을 나서는 일상의 반복은 생각보다 큰 기쁨과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돈에만 매달릴 일이 아니었다. 일을 하며 느끼는 단맛과 쓴맛을 고스란히 기록으로 모아두고 싶었다. 기왕에 나의 발자취를 한 권의 책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또 있을까. 내 인생에 한 번쯤은 그렇게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더딜지라도, 언젠가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일이 고달파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다. 달리 말하자면, 일하기 위하여 글을 쓰고, 또한 글을 쓰기 위하여 일을 한다. 사람들은 정년퇴직을 쉽게 말해 은퇴라고 말하곤 하지만, 나는 그 단어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칫 무료하고 무기력에 빠질 수도 있는 퇴직 이후의 삶.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느 모로 봐도 지금은 여유부리며 노후를 즐기기에는 너무 빠르다. 적어도 60대는 조금 더 움직여도 좋을 때다. 오늘도 그럴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