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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비 Apr 30. 2023

그것 참 새옹지마

아직 일을 더 해야 하는 60대

   우여곡절 끝에 관리소장으로 일을 시작한 지 꼭 2년이 지났다. 바로 며칠 전이었다. 처음에는 들어갔다가 열 달 열흘 만에 그만뒀다. 절대 휴식이 필요해 두 달 스무 사흘을 쉬었다. 한겨울이었다. 그리고 다른 곳, 지금 이곳에서 두 번째 이력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내가 말하는 2년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온전히 실제 소장으로 일한 시간의 총합이다. 업무노트 달력에  2년에 도달하는 날을 표시해 두고 손꼽아 기다렸다. 어딜 가더라도 무시당하지 않고 대접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경력이자 스펙이라고 생각하였다. 때로는 나이만 많이 먹은 초보라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저 나의 부족함을 메꾸기 위해 묵묵히 보낸 인고의 시간이었다. 값지고 뿌듯한 나의 업적이다.




   든든한 초석 하나 놓았다고 해서 이 일을 마르고 닳도록 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관리소장은 정년이 없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이냐는 스스로의 한계와 회의감은 지금도 날마다 되뇌는 고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해보고 싶고, 기꺼이 프로가 되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기왕 시작한 일,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러고 싶않다는 것, 무엇보다도 자존감을 지키자는 . 그동안 60 넘은 나이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아픈 상처를 뒤늦게라도 두텁게 감싸충분히 만회하고도 다. 그리고 훗날, 시점을 잘 골라서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떠나싶은 바람이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속한 베이비부머(baby boomers) 세대는 확실히 특별한 데가 있다. 6.25 전쟁 후 약 10년에 걸친 궁핍의 시대에는 한 해에 보통 1백만 명 가까이 태어났던 인구확장 붐이 일었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주역이었고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노후의 재취업 시장에서 유독 관리사무소장직의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상은 주목할 만하다. 2022년 4월 현재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 등록된 현직 소장은 1만 4538명이다. 그 가운데 91%가 50대 이상이어서 그와 같은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년퇴직 연령 이후에 해당하는 60대만 보더라도 39.5%, 70대도 3.8%나 된다. 60대 이상의 점유율이 45%에 육박하고 있는 것이다.(2022.4.18일 자 아파트관리신문).




   얼마 전, 이웃의 형님 뻘 되는 두 사람으로부터 공교롭게도 청탁 아닌 청탁을 받은 일이 있었다. 각각 상황이 다르고 개별적인 얘기였다. 강 형(兄)은 소장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쉬고 있는 중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급해 계속 놀 수는 없고 가급적 빨리 다시 일을 시작하고 싶다며 - 아니 돈을 벌어야 한다며 - 꼭 좀 힘을 써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아담한 건물도 한 채 가지고 있다고 직접 들은 적 있는데 대체 어찌 된 사정인지 의아했다.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다른 한 사람 고 형(兄)너무 힘들다며 제발 기전직으로 바꿔 일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다 나보다 나이가 한두 살씩 더 많은 사람들이다. 굳이 공교롭다고 말하는 것은 과거에 내가 오히려 그 두 사람에게 각각 모종의 부탁을 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어느 쪽에서도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내가 관리소장으로 재취업해보고자 노심초사하던 시절의 지나간 이야기다. 지금 와서 이런 뒤바뀐 상황에 맞닥뜨리고 보니 그것 참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형님들을 돕기 위해 주변의 가까운 동료 소장님들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관리업체 사장님 등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보았다. 내가 남에게 부탁을 잘하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도움이 될 만한 소득을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다행히도 그들은 나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각자 새로운 자리를 찾아 다시 일을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숨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였을 것이다.




   소장을 뽑는 일은 사실상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비롯한 동대표들의 몫이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실무경력 외에도 동대표와 입주민들과의 소통능력, 그리고 직원들을 잘 이끌고 통솔할 리더십이다. 일반적으로 나이는 그다지 큰 장애요소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반면, 일반 직원의 경우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지난달, 우리 사무실에서 같이 일할 기전과장과 기전주임 채용을 위해 내가 직접 면접할 기회가 있었다. 일반직원에 대한 인사권은 소장에게 있다. 그때는 특히 60대 이상인 사람들의 예민한 관심사인 연령에 대하여 새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구직자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중요한 판단기준이기는 하지만, 그가 기존 직원과 손발을 잘 맞추며 조화롭게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나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경우든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대개는 이렇게 사정이 달라진다. 일반직원들의 연령분포에 관한 통계자료를 아직 보지 못해서 뭐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베이비부머 세대 등 고령자 그룹이 관리소장직을 주도하는 데에는 채용단계에서도 그들에 대한 수요와 선택이 일정 부분 기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덧 내가 그 주도층의 일원으로 한가운데에 다가 선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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